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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조원

2013. 1. 29. 18:21 from yS 2010▷2013

강의실에서 공부할 때야 다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으니깐 착한척 하지만

병원실습하다보면 결국 자기 힘든 상황에서 본모습, 바닥이 드러나게 된다고

이런얘기들은 이번주에 막 실습을 시작한 3학년들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해당 조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니미랑 내미랑 하다보니 서로 감정골이 생기고

결국 실습자체의 부담보다는 친구들.. 그러니깐 조원들간에 생기는 감정적 스트레스가

가장 큰 문제가 된다는 거.

 

학생일 때는 그나마 가장 최소한의 힘든일들이 닥치는 거지만

나중에 인턴 레지던트를 하게 되면 그 분담해야 하는 일이라는게 점점 커지고

서로 적정선에서 도움을 받고는 다시 안 도와주거나 하면 서로에게 나쁜놈이 돼버리니

 

전에 누군가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련을 할 경우 안 좋은 점 중에 하나로 지적했던게

업무에 대한 책임 영역이 확실해서 누가 대신해준다든가 하는 그런

훈훈한 정은 절대 기대할수 없다는 점이랬는데

그게 사실은 더 합리적이라고도 생각했다. 단점이라기보다는...

 

아무튼 예전에 학부때는 실습조원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는데

이번 3학년 한해 동안 필수실습과에 대해 실습을 돌면서 가장 힘들었던건

나역시 그 착한척의 가면이 벗겨진 우리 서로간에 대한 스트레스였다.

사실 별 기대를 안했다.

난 실습성적에 바득바득 기를 쓰지도 않았고

그냥 중간만 가자 주의였기 때문에,

내 성적을 위해 다른 조원들을 다그치며 몰아세울일도 없고

그냥.. '난 나한테 로딩이 느는건 괜찮은데, 제발 다른 조원들이 지각같은것만 안하면 좋겠다' 정도가

내 기대치라고 말하고 다닌거다.

 

근데 내 행동을 봐

 

 

외과실습조는 나랑 남자애 한명 이렇게 두명이었는데

이녀석이랑은 그닥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얘가 말하자면 외모가 그럭저럭 번듯한  '뭐, 나쁘지 않은걸~'이라는 호감상이라서

첨엔 인상만으로 괜찮은 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근데 이녀석 같이 실습을 돌아보니 굉장히 뺀질한 스타일.

어떻게든 요령을 부려서 해야 하는 일, 시간을 줄여내고야 마는데

자기혼자 요령잘부려서 실습 편하게 도는거야 나 알바 아니지만

이 외과실습이라는 파트가 결국 수술실 참관을 조원이 나누어 하는 거라

한명이 편하게 실습을 돌면 다른 한명은 죽어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녀석이 요령을 피우는 만큼 내가 수술실에서 추위에 더 떨어야되는 거지.

그와중에 스크럽(서는 것 따위 이제는 전혀 하고 싶지 않지만)을 설 기회가 생기거나 하면

그건 또 눈치좋게 미리 알아가지고선 그럭저럭 해볼만한 기회가 있는 수술은 자기가 들어가는 등.

한번은 논문두편 발표를 배정받았는데

발표순서상 먼저 발표하는 사람이 일반적이고 전반적인 내용을 발표하고

나중에 발표하는 사람이 세부적인 주제를 발표해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발표순서였다.

근데도 발표순서가 앞쪽이었던 내가 세부적인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게 된 건

순전히 그 논문이 훨씬 길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전임의가 자기 메일로 보내준 논문을 자기 멋대로 그렇게 나눈거다.

아.. 정말로 얄미운 녀석이었다.

 

그래서 같이 실습을 도는 동안 이녀석이 얼마나 싫어졌냐면..

같은 조니깐 같은 수술을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한번은 둘이같이 참관하는 걸 보던 수술실간호사가

(아마도 녀석의 언뜻 번듯한 호감외모때문에 괜히 더 관심을 가졌을 그 간호사가)

'둘이 사귀는 거 아니예요? 맞는거 같은데' 라고 농담같은 말을 던졌는데

그렇게 오해로라도 엮이는게 열받아서 수술실을 당장 박차고 나오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또 이 녀석이 얼마나 싫어졌냐면..

언뜻 번듯한 호감상으로 인해, 이녀석의 원래 실루엣은 어딘지 '서태웅 80%'정도였는데

같이 실습을 돈 이후로는

잔머리 굴리는 게 뻔히 보이는 눈만 보인달까.

중국고전만화에 나오는 눈 땡글땡글굴리는 동자 캐릭터의 그 영악한 눈빛

으아...

 

뭐 첨엔 좀 많이 깬다 싶었지만

그래도 나름 적응하다보니 나 스스로도 방어력(?)이 생기고 그럭저럭 공평하게 실습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외과 마지막날..

이녀석이 참관해야 할 수술이 하나 있는데

그걸 나한테 대신 해달라고

내 입장에선 '이 뭐 병'스런 어이없는 부탁이라

단칼에 거절을 했다.

그때 마침 옆에 다른 친구들이 있어서 내가 굉장히 옹졸한 사람이 돼 버렸지만

아무런 꾸밈음없이 곧바로 '노노 절대 노노'라는 대답을 화살같이 쏴버린 걸 보면

결국 얘가 그만큼 미웠던 거지.

자기시간 챙기는 것만 중요하고, 자기 몸 챙기는 것만 중요한 이기적인 자식...

 

 

근데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치를 떨고 있는 이 녀석의 이기적인 행동이라는게..

내가 맨 처음 실습을 돌 때 실습조원에 대한 내 기대치에는 또

전혀 떨어지지가 않는다.

사소한 지각같은거도 절대 한적 없고

오히려 지각이라면..

나야말로 외과실습 첫날 대박 지각을 해서 녀석을 곤란하게 했지만

근데도 또 신기한게 그런걸로 트집을 잡거나, 뒷담화를 하거나 하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랬거나 말거나

이녀석때문에 내가 외과를 피곤하게 돌았다는 그런 피해의식에 찌들어있던 나는

2학기 남은 다른 과 실습을 도는 동안

이녀석이 다른 조에서 어떻게 미움을 받는지 은근히 주시하고 있었고

흠잡히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니가 그럼 그렇지'라며 고소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기말 실기시험에서 이녀석 결국 유급을 당했다.

들어보니 실기시험도 요령껏 그동안 하던만큼만 하고 나온거 같은데

평가가 상대평가라서

'유급'의 공포에 긴장해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시험을 봤을

다른 '초식동물형'학우들에 밀려

이 요령좋은 녀석이 유급을 당한 거다.

 

실기시험에서만 낙제한거니깐 올해 실습을 다시도는 녀석을 병원에서 보거나 하는일은 없을거고

말하자면 앞으로 거의 볼일이 없을 건데

근데도 그냥 계속 이해가 안되는게

그렇게 아끼고 재어둔 시간과 체력으로 대체 뭐하려고

그리 요령을 피웠을까, 그리 대놓고 염치없이 굴었을까 하는거

딱히 성적에 집착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는데

 

 

암튼 같은 조원으로 겪은 후 미워했던거 사실이지만 유급같은거 당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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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197 壽

2012. 11. 14. 21:45 from yS 2010▷2013

고등학교 때 친구하나가

당시 학생들의 저조한 한자실력에 비해서 굉장히 한자를 많이 알았는데

할아버지 한테 배웠다며 한자 한자한자를 의미를 새겨가며 쓰는게 그렇게 재밌다던 그 친구...

목숨 수에 대해 숫자로 외워 쓸 수 있는 글자라며

士 一 工 一 口 寸7

이렇게 헤아리며 칠판에 쓰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목숨 수는 원래 대부분 저렇게 숫자로 헤아려가며 외우는 한자인가?

ㅎㅎ

 

 

 

몇주전 외부병원 참관을 나가 과장님 따라 병동회진을 돌던중,

보자마자 이 壽가 떠오른 환자분을 만났는데...

그러니깐 그 할아버지는 연세가 무려 95세셨다.

의무기록지 나이는 만으로 헤아리는 거니깐 민증상의 한국식 나이는 96,97세정도 되실거고

그나마도 옛날에는 늦게 출생신고를 많이 했을테니

이 할아버지가 실제 살아오신 햇수는 거의 100년에 육박하지 않을까..

그래서 옆에 보호자 여자분이

딸인지, 아니면 나이차가 서른살은 날법한 부인인건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튼 할아버지 모습을 본 순간 뭔가 굉장한 '감동'이었다.

길게 흘러내린 눈썹과 맑은 표정 곧게 세운 등..

이런 눈에띄는 세부적인 요소를 굳이 살피지 않더라도

마치 학처럼 고고해 보이셔서

물론 나는 학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감동은 할아버지의 고고한 외모에서만 비롯된건 아니다

할아버지의 연세를 확인한 순간 내머릿속에서 순식간에 계산되던 나와의 나이차이.. 혹은 세대 차이

그러니깐 이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무렵 이미 60대셨다는 말인데

 

20대 중반부터 그후로 꽤 오랜시간

사는건 그다지 재미가 없는 거구나 대체 어떻게 남은 생애를 채워야 하나 따위의 생각에 맨날 사로잡혀 

어떤때는, 죽기전까지 40,50개의 여름만 더 지나면 된다고 굉장히 순식간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때는, 죽기전까지 견딜시간이 이만일 곱하기 이십사시간 50만 만큼 너무 멀어서 참을수 없기도 했던

내 입장에서 

60이라는 나이는 이미,,,

하루가 백년인듯 백년이 하루인듯 더이상 별다른 변화도 없고,

심지어 모든 감각에 곰팡이가 피다못해 더 필 자리가 없어 아무 변동이 없을지경일 것이라

여겨지는 때도 분명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다르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혼자 아둥바동 이놈의 세상 지겹다고..

그런 난리를 피우는 시간보다 훨씬 전에 이미 60대 이후로써의 삶을 충실히 살아오셨던것이다.

 

 

충실히...

충실하다고 하는 건

이 분의 표정이 맑고 눈빛이 또렷하시니깐..

살다보면 진정한 삶의 의미가 없는채로 그냥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될때가 있는데

그후 정말로 자기를 놓고 껍데기로써만 살면

그런 무너진 마음이 얼굴에 흔적처럼 다 그려진다.

얼굴을 보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가 보인다고.

그래, 이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노인이셨고

그럼에도 내 전 생애보다 더 충실(대체 어떻게 충실하셨는진 모르겠지만)한 매일을 살아오고 계셨던 거다.

 

이런것도 어느 정도 집안내력,, 유전이겠지.

 

그래도 그렇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은은한 저력이 궁금하다.

대부분 다른 노인들, 혹은 자신을 버려놓고 와일드하게 삶을 던지고 사는 많은 젊은이들, 중년들..과는 다를

어떤 부분을 확인해 보고 싶다.

 

오래사신 분들은 정말 그 자체로 감동이다.

백살가까이 오래사신분들은 그냥 오래살았을 뿐이 아니라

마치 40년을 산 독수리가 자기 부리를 깨부수고 새로운 40년을 살듯이

나서자라 청년기를 보내면서 자연스레 생겼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아우라가 외양의 한부분으로 자리잡는거 같다. 

 

 

나는 과연 몇살까지 살 수 있을까.

내 또래가 다 죽고 나 혼자 살아남아있을 때도 나는

다른 세대의 사람들 속에서 여전히 평정을 누리고 일상을 즐거워 할 수 있을까.

 

 

근데 할아버지...

호흡기 증상으로 입원하셨고

가슴 엑스선 정도에서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서 과장님께서는

'어쩌구 저쩌구 암의 가능성 어쩌구 저쩌구 더 자세한 검사'라는 얘기를 줄줄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그 설명을 듣고계신 걸 보니 이 상황이 뭔가 웃음이 나올거 같았다.

그러니깐

할아버지의 건강상의 문제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계시는 과장님은

나를 포함 대다수 사람들처럼 결코 이 할아버지만큼 오래살지 못할텐데도

이렇게 장수하고 계신 할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위협적인 말을 막 늘어놓고 있는 상황..

게다가 다른 모든 병실의 회진이 끝나고 다시 병동 복도를 따라 걸어내려가는데

이 할아버지가 기린처럼 훤훤한 모습으로 병동을 편하게 거닐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아무렇지 않은 편안한 모습이 과장님의 과한 질환 설명과 대조가 돼서

그래서 재밌었다.

 

부디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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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본건지는 모르겠는데,,

여러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모이는 대학에 가 보면

서울학생들은 보통 뒤에서 일이 어떻게 돼 가나 관망하는 경우가 많고

지방 출신 학생들이 학과 일이나 동아리 일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어떤 교수님이 썼던 글이었는데

 

뭐,, 요즘도 저런진 모르겠지만 난 당시 저 말에 공감을 했었다

서울애들은 대부분 자기 집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신입생이라고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도

그다지 들뜨고 불안정해 보이는 구석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집이 서울이고 과학고출신인 동기에게서

'아무것도 아닌게 왜 나대냐'라는 말까지 들어본 입장이라서

더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그건 결국

뭘 몰라서 나서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라는

건축가의 서울 에세이를 읽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고 조선 500년의 수도여서

지방사람들이 서울에 딱 오면 찾게되는 서울타워나 고궁들, 한강...

이런곳 다니다보면 나름대로 감상에 빠지기도 하는데

나도 그랬고..

근데 뭐라고 해야될지..

이런 감정들이 별로 정당성도 신뢰성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정에 무슨 정당성이며, 신뢰성이겠냐마는...)

깊이 파고 들지는 못하겠다고 미리 포기하고 또 주저하게 되는 면이 있었다.

내가 감성폭발 한번 해봤자 포인트 제대로 못잡고 웃는 사람처럼 이상한 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치 한번밖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

공시성만으로 표출된 감각은 얼마나 얄팍한가

 

한편으론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은채 야구나 축구를 볼때는 재미가 꾸준하지 않은 것과도 비슷한거 같다.

 

결국 소속감이 없다는 게 서울을 깊이 좋아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아무리 서울을 좋아해봤자 토박이들이 서울의 변화를 체감하며 산 만큼의 내면화를 난 못이룰테니까

아무리 이곳저곳 찾아다니고 그래봤자 서울역 주변길이 어떻게 바뀌었고 도시고속도로가 어떻게 하나씩 생겨났으며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북악 스카이웨이 한바퀴를 어떤 얘길 하며 돌았는지에 대해 그냥 그냥 그냥 알고 계실,

수십년간 서울에서 운전하신 택시기사 아저씨만큼도 서울을 모르는 거니깐.

(물론 택시기사님들은 도시와 그 도시의 사람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아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내 목표치가 굉장히 높은 것이긴 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도시의 토박이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도 있다.

서울만큼 옛날의 우아한 유적이 많이, 잘 남아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도시가 한국에 얼마나 더 있을 것이며 변화를 처음으로 받아들여 생긴 우후죽순의 혼란과 그 혼란이 정착되고 균형을 이뤄서 세련된 도시환경을 갖추는 이런 도시가 한국에 어디에 또 있냐고.

 

하지만 토박이라고 이 도시가 하는 말을 다 받아들일 감수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전에 경주에 가서 시내버스를 탔을 때

'다음 정차역은 신문왕릉입니다' 와 같은 안내멘트가 나오는 걸 보고 굉장히 흥분했는데

한 1주일쯤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다보니 그런 흥분도 가라앉고 아무렇지 않아져버렸다.

경주사람들이라고 매일 1000년 전을 기억하며 사는 건 아니고

첨성대도 그냥 돌기둥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지나치는 나날이 대부분일것이다. 어쩌면 평생.

마찬가지로 서울 사람들 대다수는 서울타워도 안가고 고궁도 찾지 않으며 한강에도 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이 도시의 특별함에 아무런 관심도 없이 일상을 보내는 토박이들만 넘쳐나는 탓으로

더이상 서울에 흥분하고 설렐일 없이 그냥 그저그런 도시중 하나 일 뿐이야 라고

마음을 추스리고 접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이 책이 재밌다는 말을 막 못하겠다.

내가 서울 토박이가 아니라서 이런 별 스럽지도 않을 내용들이 재밌는 걸수도 있으니까

난 그저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건축가로서, 그리고 서울 사람으로서 다시봐준 작가가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으며

한편으론 그동안 잊고 있던 서울토박이들에 대한 '시기심'도 다시 머리를 들었다.

'도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가지고, 게다가 그걸 기술할 권리_서울토박이_를 갖고태어난 당신은 행운아' 와 같은 질투 ㅎㅎ

 

 

생각해보면 서울과 서울주변에서 살던 10년보다는

서울을 뜨고난 후에 서울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된 거 같다.

실제로 나다닌 곳도 더 많고, 나다닌 곳들이 좀 덜 공식적인 곳들이기도 하고.

 

 

저번 주말쯤인가

시간도 남고해서 잠실대교부터 동호대교까지 걸어봤는데

나처럼 낮은 레벨의 서울친숙도를 가진 사람입장에서는

좀 힘들어도 '보행' 정도의 속도로 한강을 접하는게 좋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낚시'같은 장시간 체류도 별로고, '자전거'정도의 빠른속도로는 놓치는게 너무 많을거 같아서.

 

 

 

 

 

경희대에서 용산행 탔을 때 보이는 중랑천이 어떻게 한강으로 합류되는지도

성수대교에서 동호대교까지, 지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멀리 돌아가면서 잘 확인할 수 있었따.

 

그리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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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evil

2012. 10. 21. 23:17 from yS 2010▷2013

5주간의 과 실습이 끝날 무렵 학생들에게 설문지 작성 미션이 떨어졌다.

설문지... 어차피 누가 쓴건지 다 아는 설문지따위 귀찮으니 대충하자 싶었는데

아.. 교수님께는 완전 익명이 될 것이며

질문 내용도 'worst 레지던트'라든가 '개선에 필요한 점' 처럼

속에 쌓인 말을 다 털어놓을 데가 있어서 그래서 신이 나서 작성하려고 하는데

 

카톡방에 'worst 레지던트는 당연히 B선생님이죠' 라는 글이 불쑥 뜨는 거다.

B선생님...

B선생님은 이 과에서 완전 문제전공의인데

어떤 점에서 문제냐면...

완전 무능하다..

 

레지던트가 하는 일은 주로 병동관리업무다

입원환자를 평가하고 치료 계획 세우는데

이게 처음 입원할 때만 하는게 아니라 SOAP라고 해서

매일매일 환자 상태를 재평가하고 치료계획을 세워가는 거다.

물론 전공의는 아직 수련단계이므로 방향이 안 잡히는 환자에 대해서는 담당 교수님이 조언을 해주면서

그런 과정이 환자를 보는 training 과정인건데

따라서 SOAP는 매일 잘 써야 된다.

기록 작성 자체가 로딩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작성을 함으로써 환자상태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그걸로 자기 업무를 더 잘 정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무기록이니까 꼭 작성해야 하는 거기도 하고.

 

첨에 B선생님에 대해 PK들이 수근대기 시작한 건 이 SOAP기록을 일주일씩 계속 안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PK가 환자 의무기록에 관심을 가지는 건 배정받은 환자에 대한 케이스를 작성하려는 건데

환자를 맡는 기간은 일주일이 채 안되고 환자 입원 기간은 그보다 길거나 짧거나 해서

결국 PK가 직접 환자 문진을 하고 피지컬과 같은 신체검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적다.

따라서 담당 전공의 선생님들의 의무기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되는데

이 중요한 의무기록을 안해주는 선생님이었던 거다 , B선생님이..

대학병원 의무기록은 열심히 근무하는 전공의들 덕분에 굉장히 잘 채워져있기 마련인데

완전 텅빈 의무기록지만 주루룩 나오는 전자차트라니 보고 황당했을 거다.

 

그래서 우리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B선생님..

SOAP를 안 쓰는 건 환자 관리이 너무 과중해서 도저히 SOAP작성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환자 관리 기록을 하는게 오히려 현재 상태를 더 명료하게 정리해줘서 일이 더 원활해질텐데

뭔가 상당히 일에 치이고 버거워하나보다 싶었다.

아직 수련중이니깐 버거울 수도 있고

정말 적성이 안 맞아서 고생하고 있는 걸수도 있을 일이었다.

 

또다른 소문으로는 쿨하고 사람 좋기로 유명한 중환자실 담당 교수님이 B선생님에게

다음부터는 니가 중환자실 안 돌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는 거다.

환자 관리 정말 못한다며, 중환자실 맡으면 안되겠다고...

 

그래서 그냥 '아,,, 저선생님은 일을 좀 못하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근데 학생들도 이 일 못하는 선생님이야말로 당연히 worst 레지던트라고 대놓고 말하다니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이렇게 이 과의 교수님이나 높은 연차 선생님들에게 한심한 사람 취급당하는 사람을

학생들마저 worst레지던트랍시고 이름을 잔뜩 적어올리는 거 정말 싫었다.

설문지는 결국 '학생 입장에서'의 worst인데

이 선생님의 무능에 대해 왜 학생들마저 worst라고 지적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B선생님이 제대로 기록안한 환자 경과때문에 학생 누군가들이 피해라도 봤나

그래서 B선생님을 worst라고 찎었나

이런저런 생각들..

 

첨엔 이 매정한 세계, 정말 별로다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진정하고 다시 생각하기론...

 

일단 '당연히 B선생님이 worst죠'라는 녀석의 말에 대해 큰 호응은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학생들 각자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평가할 때, 어떤 사안을 볼 때 사람마다 참 다른 기준이 있는 거라는 걸...

이럴테면 '각자의 입장차'라는 말은 굉장히 쉬운데 그런 쉬운 말로 정의되는 게 아니라

아예 기본적 세계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론들에 대한 증거같아서

그래서 좀 흥미로워졌다.

 

그러니깐 동의수세보원에 보면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은 각각  선악, 근타, 지우, 능부로 사람을 평가하는데

B선생님의 SOAP기록 미비에 대해서 worst라고 평가하는 학생은

뭐랄까... 근타 즉, 게으름이라든가 혹은 능부 즉, 무능하고 싹수가 없어보이는 그런점이야말로

몹쓸사람이 가지는 최악의 속성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을 본다고 할 수 있을 거다.

그에비해 내 입장에선 적어도

뭔가를 성실하고 열심히 해왔다고 해서 그걸로 다른 면을 용납할 수 있거나 그렇진 않은편이니

B선생을 worst로 뽑은 녀석과는 사람이나 세상을 보는 입장이  많이 다른 거지.

 

아무튼...

이worst 레지던트...

난 써낼 사람이 딱 정해져있어서 첨엔 신났지만

막상 B선생님 이름이 학생들 사이에 거론되자

더불어 학생들에게 확인 싸인점수를 100% 0점줘서 PK괴롭힌다고 소문난 K선생님

그 선생님이 혹시 또 누군가들의 worst명단에 오를까 걱정이 돼서

막.. K선생님이 과일도 주셨고 콜라도 주셨고 참 좋은 분인거 같다 와 같은 말을 카톡에 떠들어댔다.

어떤 학생들은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R샘 이름을 차마 적을 수 없으므로

자기한테 아무것도 안해준 R샘 이름을 쓴다고 했으니깐

0점 싸인으로 피해를 준 K선생님도 worst명단에 오를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게 되는 거다.

K 선생님은 좀 뭐랄까, 세상에 좀 치인 느낌이 있고

B선생님만큼 일 못해서 SOAP제대로 안쓰고, 약간 사차원으로 의국에서 따돌림을 받는 거 같아서

그냥 좀 안쓰러웠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0점주면서도 자조적으로 '나는 나쁜 레지던트'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worst라고 몰아대면 그 선생님의 내면은 점점 더 삭막해질 거 같아서 싫음.. 

 

그리고 내가 뽑은 worst..

흥...

나도 레지던트에게 확인 싸인을 받았다

다들 쉽게 쉽게 받는 만점싸인을 나는 그 R때문에 계속 반토막만 받고 있었는데

그래 사실 점수 받는 거야 결국 여러 상황이 맞물리는 복불복이니깐 별 불만은 없다.

케이스라든가 다른 평가에서 점수 팍팍 깎인것도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고.

문제는 마지막 날 이 레지던트가 나에게

'내가 왠만하면 만점주는데 선생님은 도무지 안되겠네요'라고 환자 제대로 안본다며 빈정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쉽게 만점 받은 다른 친구들은 환자 아예 안보고 SOAP베껴 적어 냈지만

반토막 점수가 적힌 사인을 매일 매일 감사하게 받아온 나는 이 R때문에 환자를 매일 봤다는 거다.

점수 반토막은 상관없지만 도무지 안되고 어쩌고 비난은 정말 못 받아들이겠다

눈이 대체 어디 달려있길래 내가 '도무지 안될 사람'이 되는 거냐고.

이부분에서 기분이 팍 상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 레지던트를 레지던트evil 넘버원으로 신나게 적어낸 거다.

익명 설문지 만세..

사실 마지막날 사인받으러 가기 훨씬 전에 교수님과 이 R과 학생들이 함께 하는 회진 일정이 있었는데

그날 교수님이 이 레지던트의 이번차 마지막 일정이라며 오붓하게 돌테니 학생들은 오지 마세요 라 했었다.

말이 좋아 오붓하게지... 학생들 있는데서 전공의들 야단치기 힘드니깐 오지말라고 하는 거지

내 예상으로 이 레지던트는 분명 회진 때 교수님한테 된통 까였고

그 스트레스를 나한테 푼거겠지. '도무지 안될 사람'이라며.

다들 그냥 SOAP베껴 싸인 받는거 자기도 PK해봤으면 뻔히 알것이며 자기도 분명 그렇게 했을 거면서

 '도무지 안될 사람'이라니

 

그래도 이 정도로 구는건 귀여운 거다.

worst에 이름한번 적어내고 퉁치면 될 사안이다 ㅋㅋ

 

 

전에 여자의사 펠로우와 짝짜꿍이 맞은 그 과의 의국장 여자레지던트는

인신공격 받고 나가는 내앞에다 '조에서 제일 미움 받는 사람이 발표하나봐요 낄낄'이랬고

다음날에 조 일정 보고 하러 갔을 때도 '사과하러 왔냐'며

지난밤 여자의사 펠로우와의 뒷담화 짝짜꿍을 과시하길래

밤새 쌓아놓은 분노를

'지적하신 부분이 정말로 죄송해서 말인데, 교수님에게 직접 사과하겠어요'라고 본뜻은 

'니네가 핑계대고 있는 바로 그 교수님한테 나 괴롭힌다고 일러바치겠다'의 뜻으로 해석되는 말로써

 집어던졌다.

그랬더니 교수님 화를 돋굴 것이라며 날 뜯어말렸고

자기 눈에 보이지 말라고 했으며, 결국 조장 갈아치우라는 말까지 했는데

이걸 또 학생들이랑 친분이 있는 1년차를 통해 다시 전달하면서

조장은 확실히 바꿔야 되고 불만 있으면 찾아오라고 그랬다네.

날 무슨 조원들 고생시키는 고문관 같은 존재로 만든 셈인데

끝까지 가볼까 하다가 걍 관뒀다.

애들이 워낙 바보같이 레지던트들을 두려워하길래,

내가 결국 걔들에게 피해를 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의사펠로우-여자레지던트 의국장 콤비의 만행이야말로

설문지 피드백으로 교정될 필요가 있는데

분명 그 콤비의 선수로 내 이야기를 주워들었을 그과의 다른 교수님이

구두로 과 실습 피드백 요청을 하셨다. 전혀 익명이 아닌상태로.

그때는 피드백이랍시고 좋게 좋게 돌려말하면서 속으론

'다음에 학기 말에 성적 나올 때 교수평가서에 악플을 달아야지' 라고 맘먹었는데

막상 학기말이 되면 귀찮기도 하고 까먹을 거 같다.

 

 

아..

그 여자의사펠로우가 교수님 복강경수술 어시스트 하는 걸 참관한 적이 있는데

복강경은 모니터가 시술자 시야쪽에 하나씩 있으므로 결국 한 필드당 최소 두개의 모니터가 있다.

교수님과 어시스트 펠로우가 각자 환자 반대편에 서서 수술이 진행됐고

난 교수님 쪽에 서 있었으므로 그 펠로우가 모니터를 보다보면 나와 시선이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근데 복강경수술이고 근무연수1년도 안돼서 그런지 펠로우가 굉장히 못하는 거였다. 

앞으로 가라고 하면뒤로 가고 그런식의 초보적인 서툰 모습인거지.

서툴면 서툰대로 하면 되는데 이 사람이 우습게도 자기 앞의 모니터를 안보고

자기 뒤쪽의 모니터, 즉 교수님이 보셔야할 쪽의 모니터로 등을 돌려 힘들게 보면서 서툰 수술 어시를 했다

그래서 나랑은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

난 '그간의 모든걸 이해한다'는 느낌의 굉장히 따뜻한 시선으로 펠로우의 몸짓을 주시했는데

왜 그렇게 편한 모니터를 안보고 힘들게 허리를 돌려 뒤를 보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귀여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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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 이름

2012. 10. 7. 22:41 from yS 2010▷2013

2학년 소아정신과 수업때 조별로 프리제테이션을 한적이 있는데

그때 조원명단을 보며 발표자 선정을 하시던 교수님이 우리조명단을 보다가

이슬비(가명,,대략 이런 느낌으로 성과 함께 감성적 단어가 되는 이름이었음)는 너무 미성숙하니깐

더 머츄어한 주리(가명,,대략 이런 느낌으로 초성에 ㄹ이 있어서 서구쪽 이름을 흉내낸듯한 이름이었음)가 발표해볼까 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시대별로 유행하는 이름이 있고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는것이다

소아과를 돌면 내과의 모든분과 뿐아니라 신경과 유전대사질환 파트까지 다 보게되니깐

여기가 대체 무슨과인가 가끔씩 지남력에 장애가 올때도 있지만

그래도 회진때 받아드는 환자현황표를 보면 소아과라는걸 마음속 깊이 느끼게된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식이름 리스트 소아과 말고 대체어디서 이런 환자명단을 보겠는가

여기는 틀림없는 소아과다

 

이슬비같은 성을 이용한 예쁜 명사화

주리같은 서구스타일 이름

다솜 소담같은 순 한글 분위기의 이름

기존에 잘 안쓰던 단어인 율 이나 흔 같은글자를 넣어 신선해서 세련된 느낌이 드는 이름

 

이런 요즘이름들 하나하나는 대개가 21세기 한국어 사용자에게 현대적이라는이미지를 주는데

근데 막상 이름 `리스트`를 받아든입장에서는 뭔가 유들유들 흘러가기만 하지

전혀 각이, (각이라고 하니 뜻이 잘 전달이 안되는데) `엣지`가 없는거다

멈춰서서 돌아보게 할만한 이름이 없달까

그냥 단어의 각이 빳빳하게 살아있고 한자를 듣기전까진 언뜻 무슨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릴수없는

고전적인 한국이름이 그립다

고전적이라곤 하지만 사실 한자가 사용되기전까지 한반도에서 사용되던 이름은

예를들면 해오녀나 아라처럼 각이서지 않은 이름이긴했다

한국인이 한자로 단단하게 조여진 이름을 통상적으로 쓴건 대략 고려시대부터가 아닐까

그 이전에는 한자명이 있어도 그걸 풀어읽기도 했을거 같다 그냥 내생각,,,

 

다시 소아과 환자명단으로 돌아와서...

2012년의 어린이 환자 이름을 보면서 보람어린이 리아어린이 라고 중얼거리다보니

한 60년전 소아과병동에 는 틀림없이 미자어린이 순자어린이가 있었겠구나 싶어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물론 그런 이름은 식민지시대의 시대상이 반영된 이름으로 단순히 옛날이름은 아니다

예를들어 그 이름들의 주인들보다 더 옛날사람인 명성황후의 이름은 자영이였다

보통의 한국인이 듣기에 예쁘다 생각하는 이름

요는 이름을 지을때 성의를 가졌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일것이다

 

그래서 성의를 가지고 이름을 지어본다면

난 요즘어린이들의 날개달린듯 하늘거리는 이름 말고

단단한 한자이름인데 좀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예를들어 은호

연애시대의 손예진과 황진이에서 장근석이름이 은호였는데

여자입장에서 은호는 남자이름 같으면서도 감성적이라 참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었다

뭐 생각해보니 나도 예ㅅ날에 열살이전에 아빠에게 하늘거리는 이름,

정신과교수님이 이슬비보다는 머츄어하다고한 주리스타일의 이름으로 바꿔달라고 졸라댄적이 있다

 

그러게 아무리 성의를 가지고 작명을 해도 당사자에겐 시시때때로 부족한 부분이 생기는게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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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2012. 9. 29. 17:40 from yS 2010▷2013

평생 한 도시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과

평생 그 도시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예전에 이 질문을 보곤 막연하게 다양한 것을 보고 놀러다니는 것이 더 좋은 것인 거 같아

깊이 생각안하고 후자쪽을 선택하리라 했다.

말이 주는 이미지때문에 보수보다 진보가 좋은거라고 여기며

그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그저 취향의 문제에 지나지 않게 만들어버리던 사람들처럼.

 

간단하게 사는 건 좋은 거다.

이사준비 때문에 짐을 정리하다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도모르는새

이끼끼듯이 내 일상에 피어나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그제서야 그것들을 다 털어내고 짜낸후 다시 좀더 가벼워진 자신에게 안도하는데

그렇게 주변에 여유를 두는건 참 좋은 거다

스펀지에 물 배어들듯 스며들어서 날 꼼짝못하게 일상에 묶어두는 그 생활의 찌꺼기들은

매일매일 청소와 정리라는 걸 해도 부지불식간에 내 주변을 메꿔버려서

이사라든가 뭔가 그런 큰 변동으로 힘차게 털어내주지 않으면 도대체 없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집을 나와살면서 이렇게 이사를 다닐때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버렸는지.

그래서 이삿짐을 싸는 동안은 매번 새삼스럽게

'언제죽어도 문제없을만큼 내 주변을 가볍게 단촐하게 하자..'고 다짐했던거 같은데.

 

 

올봄인지 초여름인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우리 동 쓰레기 분리수거하는곳, 그러니깐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는 곳에서 아기고양이를 발견했다.

희동이랑 비슷한 털무늬를 가진 노랑이코숏이고 정말 작았는데 아마 태어난지 한달 정도 됐으려나..

어미를 잃은건지 버림받은 건지

아무튼 벌써부터 사람을 무서워할 줄 알아서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울지 않고 조용해지면 또 울기시작하는데

우는 고양이 달래려면 먹을걸 주는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서

그래서 우리 고양이들 사료를 물에 불려서 쓰레기통 주변 잎파리 위에 좀 얹어두고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든가, 아니면 누가 거둬가든가 하겠지,,

그러면서 크게 마음을 안 쓰려 했는데

 

한달 두달 만에 가끔씩 녀석이 눈에 띄었다.

조금씩 커가고는 있는데 영양이 결핍돼서 그런지 머리도 별로 크지 않고 몸은 말랐고

어떤 느낌이냐면 아기고양이가 몸만 길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사람도 잘 피하고 차도 잘 피하면서

아파트 건너편의 우체국과 상가건물 쪽까지도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거 같았다.

먹으면 배탈날거 같은 더러워보이는 음식을 고양이들은 찾아먹는데

그래도 녀석들이 먹은 역시나 더러운 음식의 영양소에서 만들어진 여러 면역물질들이

또다른 더러운 음식에서 유발될 감염이나 위해를 막아줄것이다.

그렇게 거리에 흩어진 음식 찌꺼기와 쓰레기가

녀석의 몸과 털과 눈과 고양이 몸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을 채워갈것이다.

거리의 고양이의 삶이란 그런거니깐.

 

그리고 얼마전 밤에 쓰레기 버리고 오는 길에

검정망토 털무늬를 가진 다큰 고양이가 주차된 차 아래에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어두웠지만 다리의 흰 털때문에 고양이란 걸 알수 있었는데

이녀석... 보니깐 앞다리 한쪽이 휘어있었다.

아마도 다리가 부러지거나 한 걸 뼈를 고정 못시킨 채 그대로 접합이 돼서 그렇게 돼 버린거 같은데

혹시나 아직 다친지 얼마안돼서 교정의 여지가 있을까 싶어서 녀석근처에 조심해서 다가가보니

휘어진 한쪽 다리도 그럭저럭 잘 움직이면서 더 깊은 곳으로 피해버린다.

그냥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몇달전부터 봐왔던 그 말라깽이 노랑이 코숏이 냐~ 하고 나타나선 검정망토쪽으로 오는 것이다.

나를 보곤 멈칫하더니 결국 검정망토 쪽으로 다가갔고 결국 둘이 같이 저쪽으로 건너가버렸다.

 

뭐랄까... 둘이 같이 돕고 사나보다 싶었다.

그 꼬마고양이가 몇개월동안이나 동네에서 살아남은 것도 이 어른 고양이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둘이 만난건 어른 고양이가 다리를 다치기 전이였을까 후였을까.

사람들이 고양이한테 관심을 가지든 말든 동네고양이들끼리는 이렇게 교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깐 그때 굳이 내가 그 아기고양이를 거둬주지 않아도

녀석은 말라깽이로나마 잘 자랐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사람인 내 입장에서는 그냥

고양이에 대한 괜한 혐오감과 증오심, 그리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만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

적은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면 되는거구나 싶었다.

 

근데 이 고양이들의 동네에 사람들의 공격(쥐덫,학대 등등)외에 다른 위험이 닥칠수가 있는데

그건 동네를 허물고 새로 짓게되는 경우다.

그때 고양이들은 자기들 영역과 터전을 완전히 잃고 다른 곳으로 쫓겨나게 된다.

그래서 뭔가가 그자리에 오랫동안 꾸준히 있다는 건 굉장한 거다.

그자리에 있음으로써 생명을 키워낸다.

그곳을 지키는거다

 

지금까지 혼자 여러곳을 이사다니면서 동네 고양이들을 많이 만났다.

먹이를 주며 얼굴을 익힌 적도 있었고,

익명(이라기보다는 익面..)의 고양이에게 먹이만 공급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계속 있어줄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결국 고양이녀석들의 생활력만 떨어뜨려놓은채 그곳을 뜬 일이 많았다.

제멋대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다가 제멋대로 끊은 것이다.

지금처럼 어딘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상태로 일때문에 계속 이동해야한다면

그 와중에 만나게되는 고양이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해 난 항상 갈등할 것이다.

그자리에 그대로 계속 있는다는 건 그래서 정말 좋은 것이다.

 

중학교때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처음 읽었을때 ..이거다! 라고 생각했는데

무소유는 결국 쿨하게 사는 삶이라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는 참 맞는 삶의 자세다.

근데 그렇게 삶을 가볍게 하는 간소함도 필요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은 훨씬 다채로운 것이라

애착과 집착과 소유

보듬어주고 키워주고 그렇게 집착해주는 것 역시 소유하지 않는 쿨한 삶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고 끈질기게,

트로이 땅 아래에 아홉층이나 되는 유적이 생멸한 것처럼 하나씩 쌓여가는 삶

 

 

평생 한도시에서만 살 것인지 평생 떠돌아다닐 것인지 이제는 이 질문에 정말 답을 못하겠다.

어느쪽이나 의미있고 필요한데

지금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절대적으로 전자가 마음에 든다.

지금 이삿짐싸는 게 너무 힘들어서ㅠ

물건을 솎아내고 버리는게 정말 힘듦 ㅠ

 

천연의 상태에서 아름다웠을 원소들이

인간들의 경제활동을 위한 재료로 이용되며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고

서로 섞이고 이젠 어찌 분리돼야 할지도 모를 애매한 형체가 돼 버린채

나한테 구매돼 왔다가

오늘 내 삶에서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버려지고 있다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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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외래참관

 

다섯살쯤 된 남자어린이를 어른 두분이 데리고 들어왔다.

들어올 때부터 울고불고 소리지르고 난리라서

대체 어찌된 앤가 궁금해서 교수님 뒤쪽으로 얼굴을 빼고 보니깐

어른들이 직접 걷게 하면 애가 안 걸으려고 발버둥치고 바닥에 드러눕고

그냥 안겨오고 싶은데 걷게해서 그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었다.

 

 

보호자분들을 보니

남자분은 아버지처럼 보이는데

여자분은 엄마라기엔 연배가 좀더 높아보이고

그렇다고 할머니라기엔 남자분이랑 별로 안 친해보이고

외할머니 정도쯤 되려나

대체 어찌된 가족구성원인가 좀 이해가 안됐는데

 

알고보니 시설에 있는 아이라고 한다

생모가 있기는 한데

원래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지금도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 어떤지는 알수 없지만

어쨌든 분명 아이를 돌볼만한 상태나 상황이 아닐것이다

노래방에 도우미로 일을 나간다는데 아이를 만나러 시설에 올 때는 항상 술에 취해있어서

아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를 임신했을 때 술도 좀 마셨다고 하는데

그것이 지금 이 어린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쳐서 문제가 생긴것일지도 모른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애가...

계속 우는게 보호인들에게서 떨어져 걷지 않으려고 그러는건데

그냥 걷지 않으려고 떼쓰고 고집부리는 것일수도 있지만

뭔가 많이 결핍되고 그래서 계속 그... (첨엔 아버진줄 알았던)시설의 아저씨에게

안겨있으려는 걸거라는 그런 그런 내위주의 흔한 감상에 빠져들어서

어린이가 참 안스러워보였다.

 

그냥

아이를 잘.. 제대로 잘 키울 수 없다면

좀 안 낳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애가 생기고 그래서 낳게 되고

그렇게 자기가 원했던대로만 생각한대로만 뭔갈 하며 사는 건 아니겠지만

완전 인권이란 거 무시하고 극단적으로 비인간적 발언을 하자면

제대로 잘 키워주지 못할바에야

임신 못하게 하는 수술이라도 시켜서 애를 함부로 못 낳게 하면 좋겠다

국가는 인구감소에 대해

국가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양적으로만 어떻게든 늘려보려고 기를 쓰지만

원래 생명체에 있어 생식이란건 환경과 여건이 좋을 때 일어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뭔가 결핍이 있어선지 어때선지 몰라도

지금 저렇게 아저씨 품에서 죽어도 안 떨어지겠다고 보채는 애를 보라고..

 

애를 망쳐놓은건 바로 제멋대로 애를 낳기만 한 부모다...라는 식으로 비난하려고만 하는 말은 아니다

당장 나만해도 스스로에게 자신이 별로 없다

포유류가 자식을 키워가는 과정을 보면

어릴 때 애착관계를 잘 형성한 개체는 자식과도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만

제대로된 애착관계를 배우지 못한 개체는 자식과도 제대로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런 후천적인 결함을 후대로 계속해서 물려주게 된다.

이런 내용을 보고 나니깐 스스로의 정서상태에 대해서 뭔가 검증을 받고 싶고

검증되기 전까지는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것이다

내 인격적 결함을 그대로 똑같이 찍어줄까봐 하는 불안감

난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니깐 스스로를 너무 나쁘게 평가하는 걸수도 있지만..

암튼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다면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양육을 맡기는게 더 좋을수도 있는거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별 탈없이 자라겠지만

이 병원이란 곳에서 어린이의 대부분을 접하면서 보면

아픈애들이 참 많고

그래서 그런 어린이들을 보고 있다보면

자식을 낳고 키우는 건 정말로 온 정성을 다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태어난 후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도 

내가가진 가장 좋은 걸 다 모아서 줄수도 있는 그런..

 

옛날에 본 사극에서 애를 못낳아서 맘고생하는 중전이

흡월정(달의 정기를 빨아들이듯이 달을보며 기절할듯 숨을 깊이깊이 들이삼키는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하는 걸 보고 정말 웃겼는데

생명 하나를 만들고 키우는데

그렇게 하나에서 열까지 할수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한주였다.

 

 

아 혼자 딴생각하느라 정작 그 어린이 환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거 같다는 종류의 얘기가 오간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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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세계

2012. 9. 3. 12:02 from yS 2010▷2013

 

 

 

전에 외부병원 나갔을 때 화상환자를 봤었다.

병력기록지를 직접 보지는 않았고 중환자실 회진 때 과장님께 정황을 듣기만 했는데

그 환자는 특이하게 상반신, 그러니깐 몸통의 앞과 뒤, 양쪽 팔,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가피절제술과 피부이식을 한 후 중환자실에서 매일 드레싱을 하면서 경과를 보고 있는 상태였다.

드레싱을 할 때 보이는 몸의 아래쪽은 굉장히 젊은 사람의 피부로

피부에서 추정되는 연령대 때문에 이 사람의 화상이 더 안타까웠는데

과장님께 들어보니 이 분은 원래 고온 작업장에서 근무하던 사람인데

고온에서 일할 때 입는 쿨자켓에 실수로 산소가 채워지는 바람에

작업장에서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서 상반신만 화상을 입게 된거라고 한다.

flame burn은 기도의 화상도 살펴야 하는데,   

이 환자는 상반신 flame burn이라 당연히 기도쪽도 손상이 심할테고

보기에도 심각해 보이는 상반신의 피부 화상뿐 아니라 기도쪽 화상 때문에라도

앞으로를 장담하기가 힘들것이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느나란지는 잘 모르겠던 외국인 환자였는데

이 환자는 증례발표 담당환자라서 병력기록지를 볼 수 있었다.

83년생 린XX씨, 폭발로 전신화상을 입은 후 병원으로 실려왔다.

가피절제술 수술하는 걸 참관했는데

수술 중에 의료진들의 이야기..

자기 나라에서 결혼한 후 우리나라에 일하러 혼자 왔고, 일해서 번돈을 매달 송금하는 외국인 근로자

한국 사람들은 폭발위험이 있는 작업장에선 근무를 잘 하지 않으려하니깐

그래서 대신 그일을 맡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렇게 폭발로 화염화상을 입는 일이 잦아지는 거 같다고

앞으로 이런 사고로 실려오는 환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지 않겠냐는 등

 

난 사실,

외국에 놀러나갈 때 조차도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나 무슨사고가 있어도 내가 감수해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한국에서도 완벽한 치안 같은 건 보장할 수 없는데 외국까지 나가면서 무슨 그런걸 기대하냐 싶은거다.

그래서 소위말하는 위험지역에 선교를 나가거나 사업하러 가는 사람들이 불의의 사건에 휘말리게 될때도

최소한 사건의 희생자&피해자 본인 스스로는 자신을 동정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물며 외국인 노동자..

어차피 다른 나라에서 막일하는 거 감수하고 들어오는 거 절대 평등한 조건일 수 없고

남들보다 위험한 환경에서의 근무를 떠맡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자신에게 전혀 친절하지도 않고 오히려 여러가지 차별의 시선으로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의 나라를

밑에서 떠받쳐주는 일따위를 하게 될수도 있다. 

이런거 정말 슬픈일이다.

그래서 난 외국인 노동자같은 거 허용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사회를 위해 남보다 월등하게 위험한 일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별로 감사하지도 않는데도, 그 근로자들과 같은 사회에 있다는게

참을수없이 불편하다.

어떻게든 노동장벽을 넘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의 절박한 사정도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이 '자유로운' 세계는 대개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인 세계니깐

애초에 그 장벽이 굉장히 엄격해서 자유롭지 않으면 좋겠다.

 

수술하던 날 아침 회진 때는 그래도 화상부위의 심한 통증을 호소하던 린XX환자가

수술하고 이틀째 되는 날까지는 계속 sedation 상태로 아무 호소도 없이 누워만 있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

린XX씨의 예후가 어찌될런지 등에 대해서도 과장님께 여쭤보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잠시 마주치는게 전부인 환자들에 대해 이런 질문은 과도한 오지랖이다.

(이 외부병원은 실습기간은 2틀이다)

내가 걱정한다고 예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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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야기

2012. 9. 2. 22:13 from ETOCETORA

 

 

그러니까 때는 1996년 여름방학

하픈가 뭔가 하는 이상한 단체를 통해 지역학생들이 일본으로 캠프를 가는데 나도 거길 참가하게 됐다.

일정은 4박5일

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서 큐슈지역을 놀러다니는ㅋㅋ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처음 외국이란데를 나가보는 것이었으므로 정말 설렜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는데

 

그때 좋아하게 된 다른학교 남학생이 있었다.

집은 우리집 근처고 우리학교 근처인데 정작 학교가 굉장히 멀어서 버스로 한시간은 떨어진 곳..

캠프기간동안 '수줍은 마음에' 말한마디 제대로 못해봤던 게 굉장히 아쉬워서

그래서 때마침 여름보충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기회로 삼아

보충수업 끝나고 나오는 걸 혹시 볼까싶은 마음에

그 멀리 떨어진 남학교까지 맨날 찾아가선 정말 얼굴에 철판깔고 학교앞에서 기다리는 걸 일주일이나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학년은 이미 보충수업이 끝나서 그래서 학교에 등교를 아예 안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혼자 안달복달 하고 있던 걸 주위 친구들이 알게돼가지곤 남학생 이름을 알려줬더니

이름이 좀 특이해선지 친구 중 하나가 자기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바로 알아본 것이다.

지금 걔 우리학교 바로 밑에 있는 학원다닌다고 며칠전에도 거기서 봤다고 알려줘서

그래서 당장 학원에 주말반 하나 주중반 하나씩 수업을 신청을 하고 이제는 학원에서 얼쩡대다가

며칠 지난 후 겨우 학원복도에서 만나게 됐다.

우리학교 축제 언제냐고 나한테 쭈뼛 쭈뼛 물어본게 전부고 뭐 결국 아무 일도 안생기고 그렇게 지나갔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냥 뭔가 '성취감'같은 게 있어서 그걸로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어릴때의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건 이렇게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라서

따지고보면 좋아하는 감정에 빠진 자기 모습에 도취되는 게 전부인 것이다.

그러니깐 그 좋아하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될지 사람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야할지 모르고

기껏 사냥후 느끼는 '성취감' 비슷한 걸로 끝나는게 전부인거지

열정만으로 진심인 척 하지만 지속력은 1초(이경우엔 대략 2,3주?)밖에 안되는 얄팍한 진심이랄까.

 

그래도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를 돌이켜보면 수줍음과 서투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절이다.

1996년의 내가 조금만 덜 자기위주였다면 어른스러웠다면 뭔가 다른 이야기가 생길수도 있었겠지.

 

 

여기까지는 내가 친구들한테 마치 '나의 성공담'이라도 되는양 많이 떠들어댄 이야기고

그후의 이야기가 또 있다.

 

 

대학졸업 후 사회생활이란 것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시작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지나간 시절의 사람들을 돌아봤던 시기가 잠시 있었는데

그때 이 흔하지 않은 이름의 남학생도 내가 흝어내리던 그때 그시절 사람들의 리스트에 올라있었고

쉽게 찾아낸 남학생의 싸이에 로그인 하지 않은 상태로 실명을 밝히고 방명록을 남겼다.

'지난 10년간을 돌아보려는 것 뿐이며 절대 스토킹은 아니니 불쾌하게 생각하진 않았으면'이라고 

아무 의도도 없고 그저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만 글을 남긴 것일 뿐인데

며칠 뒤 피드백(이럴테면 답글)이 있나 싶어 다시 내가 남긴 글들을 흝어보다보니

이 남학생이 자기 싸이 배경음악을 그새 유리상자의 '사람찾기'로 바꿔놓은 거다.

나 자신이 그 남학생에게 있어 그시절의 누군가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나로인해 지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전염돼서 생긴 복합적인 향수로 그런걸수도 있고

아니면 그무렵 그 남학생이 어장관리하는 누군가들에게 그리움 컨셉처럼 보여주려고 한짓일수도 있지만

혹시나 내글때문에 그런 티나는 청승오글 선곡을 했다 하더라도

그래..

난 이런 일로 다른 사람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로 없다

나도 그런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고

또 그런 감정을 꾸미고 감추는 것보다 그냥 터는게

촌스럽지만 순수한 거니까.

난 그냥..

방명록을 남길 당시의 나나, 지금 이런 글을 쓰는 나나

전혀 심각하지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은채 그 시절의 이야기를 쉽게 떠들고 있는데

그게 또 당사자에게는 굉장히 아름답게 채색돼서 기억되거나 혹은

자기기준으로 아름답게 포장된 기억을 누군가에게 얘기해서 이용하거나

이런거...

이런거 살면서 너무 듣고 봐서 조금은 시시했다.

자기위주의 추억으로 아련돋는 것도 참 시시하고...

아니..

그래도 어디까지나 사는 건 자기 위주니깐 아무리 시시해뵈도 본인의 기분은 소중한 거다.

게다가 내가 혹시나 누군가의 기억속에서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면 그자체로 감사하다고도 생각한다.

대체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는지도 궁금하고 기억을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시시하다는 말은 아무래도 취소.

 

그 이후로도 호기심에 가끔 찾아들어가 봤지만

그 이후로 전혀 업데이트도 없고 노래는 그이후 계속 '사람찾기'로 돼 있는

그 남학생의 싸이.

부산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이제 신경과 레지던트를 끝냈을 테고 

지금쯤은 어디선가 공보의를 하고 있을텐데

분명 좋은 사람이고 좋은 의사일듯 함.

 

 

 

 

 

지금 이 얘기를 떠올린 이유는 DJ DOC의 여름이야기 앨범때문이다.

1996년 우리팀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버스를 타고 단체로 이동했는데

그때 한창 유행하던 DJ DOC의 여름 앨범이 계속 흘러나왔고

당시의 내 기분때문에선지 노래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고 호감도가 상승해서

그래서 캠프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당연히 그 테이프를 사서 열심히 들었다.

산걸 버리지도 않고 모아두는 내 습성상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름이야기 테이프는 남아있고

요전에 라디오에서 DJ DOC노래 얘기가 나와서야 다시 꺼내 들어봤는데

최소 10년은 안 들은 거 같은데 지금도 테이프 늘어지지도 않고 잘 나온다.

 

정리정돈의 습관이라는 책에는

사람들이 과거의 낡은 물건을 쌓아두는것에 대해 악순환을 부르는 집착이라고 하며

물건에 유효기간을 두고 버리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거 나한테는 별 의미도 없는데 그만 정리하고 버려야겠지.

하지만 부산에서 카멜리아호를 밤새 타고 후쿠오카 가보는 건 

부산 사는 동안은 한번쯤 다시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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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응칠

2012. 8. 31. 18:37 from ETOCETORA

 

 

여름내내 1박2일 보면서 은초딩과도 꽤 친해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청순해지신 모습과 함께 드라마 새로한다는 것도 의식은 했었지만

에쵸티랑 제키 빠순이 얘기라고 홍보하는 바람에

절대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우리 학번 서버에 올라오는 걸 보니 그래도 볼만은 한가보다 싶어서 보게됐다.

보게돼서 다행이다 정말.

 

90년대에 대한 회상이라는 면에서 건축학개론이랑 비교하기도 하던데

사실 건축학 개론을 '복고'라며 같이 묶기에는

응답하라가 그 시절을 깨알같이 소품으로 활용하는데 반해 건축학 개론은 그런 측면이 약하다.

게다가 건축학개론은 학번으로 따지면 90년대 초중반 학번이고

학창시절을 서태지와 함께했을  세대의 이야기다.

 

1997..

저 애매한 숫자가 대체 왜 드라마의 배경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응답하라는 정말로 내 친구들이 주인공이고 내 고등학교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난 드라마 속에 나왔던 모든 것들, 모든 에피소드들에 대해 공감을 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며 내가 이질감을 느끼는 건 오직 윤제같은 이성의 '불알친구'가 없었다는 점 뿐이다ㅋㅋㅋ

(이게 있냐 없냐가 이런 이야기가 되냐 안되냐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겠지만....)

 

 

 

내친구들 역시 나처럼

열심히 힘들게 재밌게 어떻게든 각자 따로따로 지난 10년간 자기 인생을 살아오는동안

가끔 지나간 90년대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게 되거나 잠깐 동안 돌아보게되거나

그럴 때가 파편처럼이라도 분명 있었을 건데

그런 기분을 같이 나누고 그러는게 참 쉬운듯해도 사실 굉장히 청승맞아지는 면이 있다

게다가 우리또래는 아직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말이

스스로에게나 주변에 내세우기에나 어울리는 시기라서

자신의 경험과 스침들을 내안에서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도 모르고

마냥 앞으로 걸어가도록 떠밀려진다는 기분이 있다.

소화안된 기억들만 뱃속에 그득한채로

 

 

아무튼 드라마를 보면서

몇명이나 될지도 모를 내 또래들 친구들과 거리낌없이 편하게 옛날얘기 나누면서 즐거운 기분이다.

시원이의 성장기라는 내용 자체가 우리세대에 대한 위로가 될수도 있겠지만

그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기분만으로도 이미 힘이 난다.

우리세대를 주인공으로 삼아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고..

 

막상 주변의 어린친구들도 이 드라마 참 좋아하는데

이런걸 보면 단순히 복고라는 게 인기포인트는 아니고 역시나 이야기가 재미가 있긴한가보다

어린 친구들이 우리또래 이야기를 보면서 느끼는 기분은

내가 옛날에 클래식 같은 영화 보면서 6,70년대에는 저랬구나 아~ 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일테고

그중에서도 내가 겪지못한 그 시절이 자기 취향에 맞아서 그시절 노래를 잠시 즐기기도 하듯이

지금 어린 친구들도 응답하라가 보여주는 시절이 그저 자기 스타일에 맞아서 노래도 찾아듣고 할지도..

 

 

 

 

사실 요 몇년간 솔베이지의 노래라든가 오디세이아라든가에서 누군가를 수십년씩 기다린다는 거,,

인생이 짧은 듯해도 그 짧은 인생동안 온갖 추잡한 유혹에 넘어가는 인간이란 존재를 보면

누군가를 수십년씩 기다린다는 게

지고지순하게 그저 기다리는 건 도대체가 말이 안되고

자기 혼자 몇번씩은 배신에 준할법한 짓도 하고 갖가지 치정에도 휘말리면서

그렇게 풍파를 겪고 난 후 어쩌다보니 난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

이런게 진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응답하라에서 보여준 1997년부터 (이번주 분량까지보면) 2005년까지

인천공항, 월드컵 4강, 노무현대통령 당선,태풍 매미 등등의 사건을 쭉 흝다보니

내가 만약 1997년에 15년 후까지 누군가를 기다리겠다고 약속한다면

그건 정말로 긴 시간이라 느꼈겠지만

지금 생각으론 그래도 그 정도쯤이야 기다릴법도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태풍 매미...

그러니깐 며칠전 볼라벤때문에 혼자 집안 단속을 하는 동안에도

9년전 추석때 집에 내려갔을 때 매미가 오는 바람에

엄마랑 같이 집주변 단속하고, 정전됐을 때 함께 집에 있고 그러던 것이 생생하게 떠올라

지난 9년간 정말 별일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온 거 같아서 

인생 참 별볼일없이 지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러니깐 난 응답하라를 보면서 아련... 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들 굉장히 순식간에 어느 시간을 살아가버리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뭔가 얘기하고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같다.

 

 

아,, 난 옛날에 강타좋아하는 척했다.. 

척이라는건...당시 반에서 잘나가던(?) 조금 껄렁대는 친구들이랑 어울려 보려고

걔들이 좋아하는 에초티 중에서도 강타를 이용한 듯한 약간의 가식이랄까.

요즘처럼 인터넷도 없는데 당시 팬클럽들이 어떻게 소통을 했을까 하는 문제는

아마도 전화 사서함 같은 게 있었던 듯.

친한친구가 넥스트 팬클럽이었는데, 그 친구가 전화로 알게된 다른 팬 언니한테 자료를 얻으러

대구에 간다는 걸 따라가줬다가 엄마한테 정말로 혼난적이 있다. (고담)대구가 어디라고 거길 가냐며..

우리학교 근처에 연세대 농구팀(이었나?)이 와서 거기 싸인 받으러 친구들이랑 쫓아갔었다.

피씨통신으로 밤새 채팅을 하다가 전화비만 40만원 넘게 나와서 완전 집에서 쫓겨날 뻔한 적도 있다.

다마고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디디알은 재밌지만 잘 못했다.

1997에 나오는 90년대 노래들..

그 당시에 일본노래랑 중국노래에 빠져 있어서 우리나라 노래 거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브금으로 나오면 아,, 이노래!! 하고 알아듣는 걸 보니

정말 그 시대를 살았다는 건 이런건가보다

시시하다고 대충 지나쳐서 결코 내것이 아닌거라 생각했음에도 

(드라마에서 나온 말마따나)몸으로 이미 기억하는 거.

 

근데 우리때 여자애들 교복 양말이...

루스삭스랑 검은색 양말(검정단화랑 같이 신으면 부츠처럼 보이게끔 ...)의 과도기였던거 같은데

그부분은 놓친듯한..

놓칠만큼 세세한 디테일도 아니고 너무 뻔한 건데도 모르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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