試 間

2013. 2. 4. 02:15 from yS 2010▷2013


예전에 어느 블로거가

'치과에서 예약시간에도 진료를 안 해주고 기다리게 한다'며

치과가 모모의 회색신사들같은 시간도둑이라고 분개해댄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글쎄... 이건 좀 아니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예약시간 밀린걸로 시간도둑 타령이라니,,

치과에서 시간 조금 잡아먹힌 것쯤은 비교도 안되게

애초에 인생이 시간도둑들에게 저당잡혀 사는 분이시군 이라고 한심하게 생각했다고..

대체 어떻게 이 소설을 이런식으로 받아들일수가 있지?

이런 소설 읽어봤자 사람들이 빠듯한 시간에 스스로 묶여 사는 건 변하지 않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선택실습 동안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학교에서의 강의가 진행된다.

그래서 며칠전에 개강 후 첫 강의시간,, 첫교시에서는

학생교육스케줄을 담당하시는 D교수님께서

전반적인 수업&시험일정,,그리고 1년뒤의 국시공부, 지금부터 준비해야한다고 잔소리를 하러 나오셨다.

화면에 올해 시험결과에 대한 분석표를 띄워놓고 이것저것 설명하시더니

전에 어떤 서울대 교수가 출간한 바쁘니까 청춘이다 라던가

그런 제목의 책에 나온 내용을 예로 들어놓으셨네

그 책에 나온,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교한 그림을 보여주고선

나도 아직 네다섯시밖에 안됐으니 할일이 굉장히 많고

그보다 더 이른 시간인 여러분은 말할 것도 없다며

대학초년생이나 한번 읽고 버릴법한 책에 나온

역시나 대학초년생들끼리나 할법한 소리를

국시 닥달하는 강의에 써먹으려고 수업자료로까지 만들어가지고 오셨던거다.


세상이 할일로 꽉 차있다고

앞만보고 열심히 가야 한다고

사람의 시간을 어떤 절대량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보면

개인의 지극히 개별적인 시간은 결코 겪어본적이 없는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인생의 모든측면이 굉장히 평탄하고 순조로웠나?

D교수님도 살아오는 동안 뜻대로 안되고 힘든 시간이 있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시간조차도 사적인 사유로 견뎌낸게 아니라 공적인, 공통적인 어떤 방어막으로 견뎌낸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이상

모든 순간, 모든 연령에서 같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순 없는거 아닌가

아니 기계라 해도 연식이란게 있는데..

그래서 사람 나이를 24시간 시계에 비유하면서 '당신도 아직 할 수 있다'고 선동하는 그런말은

세개쯤 연달아 켜져있는 교통신호의 파란불을 통과하기 위해

일단 무조건 액셀을 최대로 밟게끔 몰아세우는..

사실 코앞의 신호등도 언제 색이 바뀔지 모르는데

그딴 고민하지 말고 최대의 속력을 뽑아내게끔 매순간 몸을 혹사하라고 주문하는

가혹한 사고방식같다.

 


노인 환자들을 보면서 줄곧 의문을 가졌던 부분이

사람은 몸이 닳기 때문에(치매라든가 그외 다른 건강상 제반문제 다) 정신이 약해지는 건지

아니면 어떤 연령을 거치거나 어떤 연령에 이르면서 정신적으로 지치고 닳기 때문에 몸도 쇠잔해지는건지

하는 점이었다.

물론 양쪽다 영향을 미친다고 언뜻 인정들 하고는 있는듯하지만

현재 사회는 대개 전자의 문제로 보고 다들 안 늙으려고 열심히 몸을 단련하는데

후자의 경우,,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그 정신적으로 늙어가는 것과 지쳐가는것에 대처할 수 있을까


젊게 산답시고

무작정 최신의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기를쓰는 게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도 애잔하고

그렇게 어거지로 젊은 척 해봤자 그런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에반해 모모에서 시간 관리자 박사님이

즐겁고 의미있는 일을 할 때 젊어지고 반대의 우울한 상황일 때 늙어버리는 모습은

미하엘 엔데씨 방식의 젊은 정신의 표현이었을거 같다.



좀 다른 듯 비슷한 얘긴데

김용옥씨 논어강의에 나온 봉혜라는 닭이

나이가 들어 분명 더이상 알을 품을 수 없게 됐는데

어느날인가 알을 품는 다른 닭들을 지켜보다가

다시 회춘하여 알을 품고 부화시키게 됐다고...

그런 얘기가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닭은 사람이 아이를 낳는 의미와 유사하게 알을 부화시키나 보다)


사실 우리 환희도 11살이었던 작년 한해 동안

발정도 많이 줄어들고(여름~가을 무렵에는 아예 한번도 발정을 안하기도 했다)

살도 너무 빠지고 해서

이녀석이 이제 정말 할매냥이 되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작년겨울부터 무슨 조화인지 살도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12살이 된 최근에는 일주일넘게 요란한 발정을 하는 바람에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을까봐 내 속을 조마조마하게 한편으론 흐뭇하게 하기도 했다.


봉혜닭이든 환희냥이든 분명 나이가 들어 몸이 늙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회춘비슷한 현상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젊음의 근원이란 건 그래서 어쩌면 어떤 존재이유같은 것일거다 라고 생각했다.

존재의 문제,, 존재하는 삶을 사는 것의 문제일거라고.

그에 반해 시간의 절대량으로 노력을 이끌어 내는 건 소유방식에 치우친 행태같다.




암튼 D교수님의 별 의미도 없는 뻔한 잔소리가 싫었던 나는

수업끝나고 '저 교수님 완전 변태, 애들 은근히 괴롭힌다'는 다른 동기들의 말에 동조하며

즐거워했다.

아... D교수님 정말 변태같아서 싫다라며


근데 사실 시시한 베스트셀러의 시시한 구절까지 열심히 베껴가며 강의자료 만들어오신게

학생들 위한답시고, 1년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잘 설득하려고, 나름 노력하신거란거 나도 알고

별스럽지도 않은 말에 내가 택도없이 삐뚤어지게 반응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 D교수님이 나한테 재시를 주셨고

겨울방학내내 내 목에 쇠고랑을 걸어서 양산에 묶어 두셨으니

정말 싫을 수 밖에 없다.

진짜 이유는 결국 내 호불호 감정인거다 흥..



쇠고랑이란,,,

무려 3주간이나 재시 준비기간을 주고선 그 준비기간 동안 아침 저녁으로 출석체크를 하게 하셔서

그래서 12월 말부터 평일 아침 10시 오후 5시마다 학교에 가서 사인을 하고 와야한 걸 말한다.

12월 말에 굉장한 한파가 몰아쳤는데

그 추운 아침에 학교까지 타박타박 걸어가면서

'내가 정말 학교 졸업하는 날에 D교수님 앞에 항의 편지를 던져줄거라고' 

'정신차리라고 재시준건 알겠는데 그때 내 문제는 체력이었지 절대 정신상태가 아니었다고'

'필기는 공부를 하고 실기는 공부를 안해서 두개가 100등차이나 나는줄 아냐고'

'준비못한건 매한가지지만 결국 표준화환자들을 끝까지 물고늘어질 힘이 없어서 실기를 망친거라고'

'그래도 몸핑계로 시험 피하는 짓 따위 안하고 학교나와서 시험도 다 봤는데 어떻게 재시를 주냐고'

'재시주면 시험이나 다시 보게 할것이지 매일매일 출석체크하게 하고'

'아침마다 저녁마다 학교왔다갔다하면 제일 혈당떨어져 있는 시간에 얼마나 울렁거리는지 아냐고'

'어떻게 이렇게 임신으로 애국하는 사람을 학대할 수 있냐고'

'매일 아침 추위에 떨며 학교까지 걸어갈 때 걸음걸음마다 이를 갈았다고'

그런 내용을 편지에 써서 던져주고 나올거라고 생각했었다.


뭐,, 3일정도는 그런 생각을 한거 같다 ㅋㅋ


근데 한 며칠 그러고 다니다 보니 몸도 안 좋은데 그냥 양산에 계속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고

아침에 사인하러 가려고 일어나다 보니 생활도 억지로 규칙적으로 유지돼서 끼니도 챙기게 되고

무엇보다 실제로 10시부터 5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1월부터는

'재시때문에 후달리느라 실기시험준비를 꼼꼼하게 해볼 기회가 생겨서 좋은거 같다'

라고까지 생각하게됐다.


이렇게 좋게좋게 생각하는 와중에 D교수님으로부터

재시보는 학생들을 위협하는 문자메세지가 종종 들어왔기 때문에

그게 정말 싫었던 거다 변태같다고...

첨엔 분명 재시만 보면 다들 통과시켜줄거라고 말했으면서

'성적이 안 좋으면 자르겠다' '반드시 유급시킬것이다'

이런 문자를 대체 몇번이나 받았는지...


난 첨에 그게 아침에 출첵하고 하루종일 내 할일 하다가 다시 저녁때 출첵하고

그렇게 출석체크만 하고 학교에서 공부는 안하는 나같은 학생들 보라고 보내는 문자인줄 알고

'아무리 쪼아대 봐라 12월에 얼마나 할일이 많은데, 내가 학교에 남아서 공부할 줄 알고'라며

계속 출첵만 하러 왔다갔다 하면서 소심한 반항을 계속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애들이 지각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별스럽지 않은 이유를 들면서 결석까지 해서

그래서 학생들의 반항인건지 아무생각이 없는 행동인건지

그런 무덤덤함에 약이 바짝 오른 교수님이 그런 문자로 위협을 했던 거였다.

아무튼 열심히 출첵하고 핑계같은 거 대면서 결석하거나 하지 않았던

순종적인 재시생인 나는 변태D교수 라고 시험 전날까지 맘속으로만 욕을 하고 있었던 거다.



어찌어찌 교수님의 위협이 지나가고 재시가 지나가고 이제 개강을 했는데

지금으로선 1월에 실기공부를 열심히 한 걸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뭔가 꼼꼼하게 체계적으로 꾸준히 잘 못하는 내 성격에

학생들을 후달리게 한 교수님의 위협문자는 (비록 소심한 반항은 했지만)내게 적절한 채찍이 돼줬으므로

그래서 재시 앞두고 10흘동안 제대로 2,3번은 전체 실기시험 내용을 살필 수 있었던 거 같다.



국시까지 11개월가량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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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