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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3.09.18 자전거
  5. 2013.09.02 謀議 고사
  6. 2013.07.26 식상
  7. 2013.06.30 우산
  8. 2013.05.23 신경전
  9. 2013.04.15 謎 惑
  10. 2013.03.25 여자들의 지하드

트리조미21

2013. 12. 8. 01:08 from yS 2010▷2013

필기모의고사에서 병변을 보여주기 위해 환자 사진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 얼굴이 나올경우 거의 대부분 눈이 가려져있다.

시험자료로 사용되는 환자사진이 어떤 경로로 게재되는지, 환자본인에게 허락은 받는지

그런 윤리적인 면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뭐, 눈만 가리면 그래도 크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근데 가끔 눈이 안 가려져 있는 환자 사진이 나올 때가 있다.

예를들어 염색체이상의 경우 얼굴을 봤을 때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야 하니깐.

 

시험증례가 아니라 교과서에서도 이미 눈 안가린 환자가 나오긴 했는데

교과서의 사진은 인권이고 뭐고 별 개의치 않고 질병치료와 의학연구라는

'대의'가 우선시 되던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을 것이므로

혹시나 당시에 당사자에게 허락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은 아마도 오래전에 이미 세상을 달리했을 것이므로 뭐 괜찮겠지, 막연히 안심하고 있다.

 

그에 비해 시험 증례에 나오는 환자사진은 정말,,

대체 어디서 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시대의 인물들임에 틀림없어보이는데

 

 

이번 모의고사 때는 아나필락시스 맥관부종으로 눈을 안가려도 누군지 결코 알아볼 수 없는 분이 나왔고

저번 모의고사 때는 트리조미 21 신생아가 나왔다.

 

맥관부종이야 그렇다치더라도 트리조미 21문항이 이뤄지려면 특징적인 외모가 중요하긴 한데

그 사진 속 아기가 워낙 신생아라서 그런지

내가 보기엔 당시 우리집에서 울고 있던 6주된 우리 아기랑도 언뜻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그냥 보통신생아 얼굴로 밖에 안 보인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던거다.

사실 신생아들 얼굴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래서 그 문항으로 시험을 본 학생들은

그 아기얼굴에서 의사의 소양으로 직관적으로 찾아내야 할 트리조미21외모의 특징을 봤다기보다는

'아, 아기얼굴을 보여준걸 보니 외모에 뭔가 이상이 있긴 있다는 의미네'라는 사실만 인식했을거다.

그리고 고작 그런인식을 주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기는 시험을 본 학생들 모두에게 

흠(欠)으로서의 자기얼굴을 팔린거다.

 

 

 

 

TS실습때 증례로 받은 환자가

(당시엔 아직 염색체검사결과는 나오지 않긴했지만)

병력기록상

임신 중에 초음파로 확인된 심장질환이 트리조미21을 의심할만한 드문질환이며

출생시 외모도 트리조미21로 의심된다고

돼 있는 생후 4주된 아기였다.

 

심장수술을 해도 괜찮을 시기를 기다리면서 중환자실에서 care중이었는데

그나마도 수술할 무렵에는 이미 생후4주나 된 'old baby' 였기 때문에

(분만실로부터 이송돼 온 후 내내 치료받으며 지냈을) 신생아중환자실에는 더이상 있을수 없었고

일반 중환자실, 성인들이 쓰는 그 큰 침대 위에 혼자 덩그라니 누워서

이것저것 온갖 line을 달고 있는 상태였다. 

 

 

난 잘 모르겠다.

심장기형때문에 출산하자마자 이렇게 중환자실이란 공간으로 멀어져 간 아기에 대해

엄마는 대체 얼마나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

더구나 수술이 무사히 끝난다 해도 유전적인 문제가 이미 결정돼 있는 아기인 것이다.

 

나로말할것같으면

아침에 출산한 직후 아기를 안아보고 점심 때 수유실에 내려가서 다시 아기를 안았는데

안고 있으면서도 내가 과연 이 아기를 낳은건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으며

그렇게 2주간 조리를 하고나서 집으로 돌아간 후

직접 아기를 돌보며 고생하고서야 아기에 대한 실질적인 애착이 조금씩 생겨났다.

 

이 아기의 엄마는

하루에 두번쯤 있을 중환자실 보호자 면회시간에 맞춰서 30분 정도 아기를 보고 나가는게 고작일텐데

아기에 대한 애착이 과연 얼마정도가 될 수 있을지 난 정말로 모르겠다.

어쩌면 아기를 직접 키울지 어떨지에 대한 결정도 아직 안내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면회시간에도 아예 보러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비난할 수도 없는게,,

출산후 한달이나 되는 시간동안 아기와 떨어져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가고 있을것인가..

 

 

 

 

어떤 임산부가 임신중의 기형아 스크리닝 검사 후 블로그에 올린글에

아기가 만약 다운이라면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것 같다고

그런 아기를 키울 자신이 없다고 써 놓은걸 임신 중일 때 봤었는데

그건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철도 없고 인간미없게 보일거 같아 대놓고 말을 할 수가 없었을 뿐이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날 좋아한다는 이유로 날 미워했던) 나보다 여섯살 어린 여자로부터

나이들어서 애 낳으면 다운 ... 이런 얘기까지 들었던 상태에서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증명하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노산으로 인한 출산문제에 대한 걱정은

딱히 저렇게 악랄한 혀를 가진 사람의 입을 통하지 않더라도

당장 성별싸움난 인터넷게시판만 들어가봐도 되새기고 의지를 다지게 되는 일 아닌가.

아무리 다른 외국에서는 트리조미21로 인한 장애를 극복하고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다해도

2013년 대한민국의 인식은 아직 요정도다.

 

 

그래서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면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우라나라에서 트리조미21은 합법적인 낙태사유는 아니지만

고위험군에 대한 양수검사라든가 융모막 검사를 하고 문제가 있다면 결국 어떻게든 낙태를 하겠지.

이때문에 대부분이 임신 기간 내내 정기적으로 산전검사를 받는 요즘은

예전과달리 고위험군 보다는 오히려 고위험군이 아니어서 스크리닝 검사만 받은 임산부들이

트리조미 21인 아기를 실제 출산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증례환자아기의 엄마도 나이가 많은 산모가 아니었고 아기의 이상도 임신 3분기에 와서나 확인됐을테니깐.

그리고 이때부터 준비되지 못한 엄마, 부모의 갈등이 시작되는 걸거다.

물론 모든걸 극복하고 잘 키워내는 부모도 있지만

이상이 있는 아기는 어쨌든, 유기비율도 높고, 학대비율도 높다.

 

 

 

 

내가 낳은 아기를 통해 나를 증명,, 운운이나 하는 수준의 나는

'증례문제에 출처불명의 신생아 얼굴을 그대로 내는게 껄끄럽습니다'

'부모에게 허락은 받고 사진 찍은 건가요'

'아무리 허락했다 해도 이렇다할 의미도 없이 아기를 이렇게 대하는거 괜찮은건가요'

이런 정도의 말밖에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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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맞았어요

2013. 10. 29. 22:28 from yS 2010▷2013

요즘 한창 실기 준비를 하느라 꼬박꼬박 등교를 하고 있다.

같은 날에 시험을 보는 동기들과 맞춰보며 역할극을 하는게 중요해서

임상술기지침보다는 진료수행지침을 하루에 8,9개씩 하고 있는데

진료항목은 그냥저냥 할만한데 상담위주의 항목들이 좀 어렵다.

진료는 패턴과 감별진단, 신체진찰만 하면되니까 왠만하게 하던 가닥대로 하면 할수가 있는데

상담은, 각 상담마다 적절한 패턴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항목마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굉장히 지루하기도 하고 말하느라 목도 아프고 앉아 있느라 좀도 쑤시는 이 실기준비를

되지도 않는 드립을 날려대면서 즐겁게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상담 항목중에 가정폭력항목이 그렇다 좀..

 

그렇잖아도 요즘 한창

세상이 쓴맛일 어떤 아기들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픈데

자기가 데려온 아들을 재혼한 현재남편이 때린다는 그런 설정의 가정폭력 상담 항목을

감정쏠리는대로 징징댈수도 없고 시시덕거리며 말하고 있자니

괜시리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항목에서는 계부의 폭력으로 설정돼 있지만, 실제 가정폭력은 친부모에 의한 경우가 가장 많다.

친부모랑 사는 애들이 훨씬 많을테니 당연한 거겠지.

몹쓸사람은 계부모 친부모 가리지 않는다는 거다.

 

그와중에,,

같은 병실에 팔 골절로 입원한 1살 반짜리 아기가

간병인에게 험하게 다뤄지고 있는데도 한마디도 뭐라 못해 속상하다는 어떤 아줌마 글을 읽었다.

아기가 부모가 아닌 간병인과 병실에 있는 이유는

애초에 골절이 부모가 자행한 학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며

그렇게 계속된 부모의 학대로 인해 신고를 통해 병원에 들어온 아기라서

행여나 아기를 소중히 대해주지 않는다해도 그 아기를 지켜줄 그 누구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간병인도 아기에게 전혀 간병의 정성을 보이지 않고 있고

수술후 아파서 끙끙대는 것에 대해서조차

'니가 누구에게 응석부릴 처지냐'따위의 말을 하며 아파 우는 아기에게 호통을 치고 있는데도

혹시 같은 병실에 입원한 자기아기에게 해코지 할까봐

뭐라 말을 할 수 없어서 속상하다는 그런 답답한 내용이었다.

 

세상의 많은 아기들은

아무리 보채고 찢어지게 울어대고 밤새 칭얼대며 자길 재우라며 호령하고

어떠한 의존을 해도 결코 자신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을 거두지 않을 양육자의 품에서

세상에 대한 신뢰를 키워가고 있을텐

겨우 1살 반 밖에 되지 않은 이 아기는

최초 양육자였을 부모에게서 팔이 부러질 정도의 물리적인 학대를 받았고

그 외에도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는다거나 밥을 제때 챙겨주지 않는다거나

혹은 아픈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식의 '방임'이라는 학대도 분명 꾸준히 당했을 이 1살 반짜리 아기는

사회안전망을 통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 조차도 왜 따뜻한 보살핌을 못 받고 있어야 하나

1살반짜리 아기는 아직도 자라고 있는 미완의 인지범위에서

자기가 느끼는 고통이 '어찌할 수 없는 고립무원감' 이란 것도 인지 못한채

공포와 무력감으로 결국 울음조차 사그라들게 될거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다.

그 간병인에게 징계가 내려질리도 없겠지만

징계가 내려진다 한들 어른들끼리의 싸바싸바가 대체 아기가 입은 상처를 어떻게 다독여줄수 있을까

 

아기를 보듬어주지 않는 사람은 잠재적인 범죄자다.

사회구성원의 정서적 정신적 건강을 훼손해서 사회 전체의 건전성을 망치는데 일조한거니깐.

 

아동학대 신고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직군 중에는 당연하지만 의료인도 포함되는데

그런 의무적인 이유에서라도 좋으니깐, 좀 더 학대라는 것에 대해들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나도 지금 아기가 없었다면 가정폭력같은거 아무렇지 않게 힝힝 농담이나 하며 넘겨버렸을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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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나

2013. 10. 14. 10:40 from yS 2010▷2013

 

볼품없이 마른채 태지로 덮혀 있던 팔다리, 몸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가장 작은 사이즈 양말은 벌써 작아졌고 그 다음 사이즈 양말도 곧 못신을 거 같다

고사리처럼 오그라든 채 꼭 쥐고 있던 손은 이제 통통한 불가사리처럼 펴져 있다.

바야흐로 신생아에서 아기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육아라는 과정이 너무나 낯설고 힘들었다.

밤에 배고파 깨서 울어대는 애가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졌다.

낮에 몸을 비틀어대면서 칭얼대며 어떻게든 어른 하나를 자기 옆에 보초 세워두는 아기가

마치 예전에 인턴할 때 들고 있던 호출기처럼 무서웠다

그당시와 마찬가지로, 쉴틈이 생겨도 마음으론 쉬어지지가 않았다.

얘가 언제 또 울까.. 이게 언제 또 울릴까 하는 긴장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아기보는 게 전혀 수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득 정신차려보면 애가 조금씩 달라져 있고 커 있는게 신기하다.

그리고 애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그전의 모습이 사라져 가는것, 그걸 내가 대충 흘려보내는게

아쉽다

육체적으론 힘들지라도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혼자 여유부릴만한 짬이 생기면 그 시간에는 공부를 해야 하니깐

몸도 조급하고 마음도 조급하고

그래서 우리 아기의 많은 순간을 놓치게 되는게 슬프다.

 

아기 낳기전까지는

내년에 바로 수련을 받게 되면 아기를 떼 놓고 나오는 문제만 마음 아플 줄 알았는데

근데 그렇게 아기를 떼 놓고 나오는 것 뿐 아니라

아기를 직접 키우는 동안에도 그 많은 순간을 열심히 함께 해줄수 없어서 맘아파질 줄은 몰랐다.

아기들이 그렇게 많은 변화의 순간을 지나가면서 커갈줄을 몰랐던 거다.

난 아기들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깐

 

 

우리아기를 보면서 세상의 다른 아기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다 대개 슬픈쪽으로.

아기들이 울 때는 배가고픈지, 기저귀가 괜찮은지, 덥지는 않은지 를 살피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기저귀의 경우..

생후 한달이 지날 무렵부터, 준비해둔 천기저귀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천기저귀가 아직 덜 부드러워져서 그런지 소변 흡수가 썩 잘되지 않았던 거다.

아기가 오줌을 누면 이게 바로 흡수가 되지 않고 엉덩이 쪽으로 흘러가서 흡수되는 바람에

바로 누워서 소변을 본 후에는 엉덩이와 허리쪽으로 소변이 자꾸 닿게 되고

그래서 그 더운 여름날에 아기는 소변을 볼 때마다 엉덩이와 허리가 쓰라렸을 건데

둔한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바로 눕히기만 하면 등센서가 작동하는 건지 칭얼대네'라고 짜증을 내다가

며칠이나 지난 다음에야 소변이 닿는게 쓰라려서 그랬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손도 못 뻗고 몸도 못 트는데 엉덩이와 허리가 얼마나 쓰라렸을까..그래서 그렇게 울고 보챘던 건데

이사실을 발견못했으면 '애가 예민'해서 라든가 '엄마 괴롭히려고' 라는 등 말도안되는 소리를 해댔겠지.

아무튼 이렇게 아기가 우는 이유를 알아냈으면 '알아서 다행이다'라고 안심하면 그걸로 충분한데,

'오줌 흡수가 잘 안돼서 쓰라려서 우는 거라는 걸 엄마가 알아채지 못해 우는 다른 아기들이 또 있을텐데'

이런 아무 쓸모없고 오지랖 넘치는 소모적인 걱정을 하면서

우리 아기가 우는 이유를 알아낸 다행감을 왠일인지 항상 슬픈 감정으로 마무리 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나처럼 둔한 엄마들보다 세심한 엄마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아기들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별로없다.

이제 아기들을 키우는데 생기는 어려움에 대해 검색하다 보면

끝없이 우는 아기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부모가 아기를 (무려)집어던졌다는 등의 글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렇게 아기를 던지는 건 '학대' 수준이 아니라 '살인미수'다.

학대는,아기들이 불편한 걸 눈치채지 못하고 눈치채는 노력을 안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학대라고 해야 한다.

배가고프거나, 기저귀가 눅눅하거나, 얼굴이 가렵거나 덥거나 등등..

아기들한테는 바로 그 불편함이 자기의 모든 감각이며 모든 세상이 될테니깐.

아기를 돌본다는 건 아기들이 뭐가 불편한지 계속 지켜봐주고 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일 텐데

대부분 '애가 보챈다'라든가 '손을 탔다'라든가 '계속 운다'라든가 등의

'예민한 아기' 탓에 양육자 역시 예민해졌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건 미숙한 양육자인 나같은 사람, 나같은 엄마들 편들어주는 위로에 지나지 않고

실상 아무 해결도 못해주는 쓸모없는 말이다.

누구 말마따나 '엄마하나 믿고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잘못할게 뭐가 있겠으며 예민할게 뭐가 있을까

그냥 그런게 아기인거고 그런 아기를 보살피는게 육아인거지

 

현재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도 같지만

이 고생도 어느정도 균형을 이룬거 같고

지금으로선 좀더 우리아기를 사랑해주고 싶다. 사랑한다는 티를 많이 내고 싶다.

육아를 고생이라고만 여긴 나머지

해줘야 하는 최소의 것만 하고 어떻게든 아기 피해서 쉴 생각만 하고 그렇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참 이상한 건

아기 보는게 힘들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러니깐 보채는 아기와의 전투(?) 때마다 아기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

귀여운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을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시험보러 갔을 때라든가, 요즘 낮에 공부하러 밖에 나가있는 동안 이라든가

그럴 때는 시시때때로 아기모습이 아른 거린다는 거다.

아기가 엄청 집중을 하며 고작 젖을 빠는 그 표정이라든가

요즘 한창 웃으면서 옹알이 하는 모습이라든가 그 목소리라든가

그게 생각이 나서 얼른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어지곤 하는 걸 보면

 

아기가 요물은 요물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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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2013. 9. 18. 14:08 from yS 2010▷2013

 

대학원 합격하고 일 그만 둘 준비를 하면서

직장에서 주는 복지포인트로 자전거를 한대 구입했었다.

시내가 거의 평지로 돼 있어서 자전거를 타기 좋은 환경이라 그런지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산 이 자전거를 근 3년 참 유용하게 타고 다녔다.

등하교 길에 병원쪽으로 다니기도 했지만

봄 가을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는 택지쪽으로 풀을 밟고 다니기도 했고

하천 옆으로 나있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자전거산책을 하기도 했었다.

주말이나 강습이 있을 때 테니스를 치러 갈 때도 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사실 부산까지 자전거로 한번 가봐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건 결국 해보지 못하게 됐다.

 

 

작년 10월

평소 잘 안다니는 길 쪽의 병원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실습을 하다가

우연히 한번 자전거를 안 챙기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그 후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임신도 하고 해서 자전거를 가져올 수가 없었고

4학년 개강을 하고 부터는

자전거를 잠궈둔 열쇠만 버리지도 치우지도 않고 계속 책상위에 둔채로 다니면서

'자전거 주차 관리하는 분이 알아서 자전거 치웠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에서 굴러다니던 열쇠는 아기낳고 저번달에 방정리를 하면서 그제서야 버린거 같다.

 

어제 우연히 그 잘 다니지 않는 길 쪽으로 지나게 됐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내가 자전거를 두고간지가 얼마나 됐나 헤아려 보니

무려 10개월이 넘었다.

그리고 내눈앞에 10개월간 길바닥에 낡은 티가 역력한 그 자전거가 딱 나타났다.

그렇게 오랜기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자전거가 방치돼 있는데

어떻게 아무도 치우지도 않고 내버려져 있을 수가 있는 걸까

그것도 여러사람들이 자기가 맡은부분의 일을 해나가고 있어서 병원 곳곳 관리가 잘돼고 있을텐데..

싶었지만

행여 그 자전거를 탐낸 사람이 있었다해도 거치대에 묶여 있어서 가져가지 못했을 것이고

그나마도 자전거의 처음과 자전거와의 함께를 머리에 담고 있는 나한테나 한때 소중한 자전거였지

이런 싸구려 자전거가 열쇠없이 버려져 있었다 한들 대체 누가 가져가겠는가

 

10개월간 자전거 거치대에 묶인채로 비바람에 시달려서인지

금속부분은 거의 녹으로 덮혀 있었고, 천으로 덮힌 부분의 색은 바래 있었다.

가방을 넣어다니던 바구니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버린 쓰레기가 가득 들어 있었고

그래서 원래 자전거 주인이 아닌 사람 눈에는 

그냥 낡고 녹슬어서 내다버린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자전거.

 

당장 거치대에서부터라도 일단 떼어내고 싶었지만

어떻게 일이 안되는대로 맞아떨어졌는지 지난 9개월간 매일 눈도장 찍던 자전거 열쇠를

최근 얼마전에야 버린건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자전거가 팽개쳐져 있는 걸 보니 좀 속상하긴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작년 10월에 내가 자전거를 두고 집에 갈 때부터

자전거는 버려진 거였다.

아무리 이것저것 고치고 챙겨가며 탔다고는해도

타고다닌지 3년 다돼 가서 색도 점점 바래가고 있었고, 녹도 조금 슬기 시작했던 것도 같다.

본전 생각나서 오래 타야 할만큼 비싸게 산 것도 아니고

어차피 없어질 포인트로 싸게 산 자전거

이제 버려도 될 법하니깐, 슬슬 마음이 떠나가니깐

그날 병원에 내버려두고 집에 갔고 다음날 서둘러 챙기지 않았던 거겠지.

그래서 결국 그렇게 버려진 자전거라면 그냥 그 자리에서 삭아 없어져버리든가 할 것이지

대체 왜 버릴 때보다 더 낡은 모습으로까지 남아서 여전히 그자리에 묶여 있는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감정생활에서도 서로 버리고 버려지고 하는 와중에

여전히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감정은 자기가 알아서 추스려야지

상대방들은 어차피 대개 남의 감정 살펴주지않을 뿐더러

게다가 그런건 이미 마음이 떠난 상대방들이 어찌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니

치정어린 마음에 뉴스에 나올만한 짓을 하는 어리석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가면 버린것도 버려진것도 알아서 잊고 털고 회복하는게 사람들인데

이 자전거는 그냥 하염없이 낡아만 가고 있으니

그냥 그게 속상했다.

 

가까이 가서 자전거 핸들을 잡아봤지만

서정주의 신부에서처럼 그제서야 폭삭 재로 주저앉아버리는 그런 독하고 매운느낌도 없으니

자전거가 날 기다리며 원망하고 있었을거라는 그런 애니미즘스런 걱정은 하지말자.

애도 아니고 '버려진 자전거의 저주' 같은 거 신경쓰지 말자고 ㅋ

 

 

 

어제 자전거 보고 기분이 안 좋아져서 구구절절 뭔가 많이 써놓긴 했지만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면

자전거를 공공장소에 버려두면 남들이 알아서 치워줄 줄 알았는데 

실수로 열쇠를 묶어둔 바람에 불법투기에 실패하고

10개월이나 지나서야 회복된 시민의식으로 대형쓰레기 제대로 버릴 방도를 궁리하게 됐다는 거.

 

 

예전에 어떤 아저씨가 10년넘게 타고다니며 가족들의 추억이 서린 자동차를 결국 폐차시키게 됐을때

폐차전날 자동차 안에서 오래 앉아 있기도 하고

(그러면서 남들에겐 차마 창피해서 그랬다고 못할 '대화'라는 것도 했겠지. 범블비도 아닌 고물자동차한테)

폐차당일에는 가족들까지 폐차될 차에 태우고 가서는 폐차장까지 자동차를 마중했다는 둥

그런 궁상스런 짓을 했다는 기록을 어떤 인터넷 기사를 통해 남겼던데

 

난 그런 주책맞은 사람은 아니니깐

일단 이렇게 낡아빠지고 녹슨 자전거가 잔뜩 쌓여있던 동네 자전거 가게에 가서

이 자전거를 어떻게 처리해야되는지, 잠긴 자전거 열쇠를 어떻게 뜯어 가져올지 등을 물어보고

그리고 이 낡은 자전거가 폐기돼야 하는대로 잘 폐기되게끔 그렇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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謀議 고사

2013. 9. 2. 14:14 from yS 2010▷2013

모의고사에서 문제가 생겼다

같은 날짜에 동일문제로 시험을 보는 실기시험에서

누구도 의도치 않았음에도 시험문제가 유출되는 바람에

전원 재시험을 보게된것이다.

근데 문제가 유출된 것을 학교에서 알게된 것이

어떤 학생이 제보를 했기 때문이라는 점

 

이때문에 다들 제보자가 누군지 색출해야 한다고 분개하고

무엇보다 그 제보자가 문제유출로 피해를 봤을 법한, 즉 유출 전에 시험을 봤을 거란 확신도 없음에도

학교에 꼰질러서 재시험을 대체 얼마나 잘 보는지 두고보자는 둥

그렇게 다들 그 학생을 비난하면서 결국 재시험 일정은 무사히 끝났다.

 

내 경우에 이번 실기시험은 중요한 시험이었다.

작년겨울 입덧때문에 실기를 망친이후

실기시험자체에 뭔가 두려움이 생겨버렸고

그나마 1학기 실기시험도 불안불안하게 시험을 보고 몇개 항목에서 페일이 떴으며

이번에 출산후 며칠만에 본 실기시험도

체력적으로 또 정신적으로도 자신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조리 기간 내내 책과 동영상으로나마 준비를 하고

꾸역꾸역 몸을 추스리고 가서 시험을 보고 온거였는데

근데 그 결과가 어땠냐면

완전 엄청나게 안 좋은 결과가 나온것이다 2/3에서 페일이 떴으니깐..

 

처음에 문제 유출사실을 모른채 저 결과를 확인하고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몸 상태를 핑계댄다손 치더라도, 앞으로 실제 시험까지 더이상 내 실력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깐.

그리고 몸핑계 대는 것도 한두번이지,,

작년 겨울 시험부터 해서 벌써 세번째 시험이 아닌가

그렇게 자신감도 잃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도 떨어져서 자포자기하고 있을 무렵

학년 공지방을 통해서 문제유출 사실을 알게됐고

전원 재시험을 보게됐다는 사실에 굉장히 안심했다. 또 감사했다.

 

그래, 다들 여행계획, 공부계획 등을 세워뒀을 건데 그게 깨진게 싫긴 하겠지

그리고 학생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문제가 유출되는 등

시험관리에 문제가 생긴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학교측의 잘못(휴대전화 수거를 안했다)에서 기인한다는 것도 사실이지 

근데 그것에 대해 조목조목 항의하면서 어느정도 적절한 선에서 합의해볼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까봐'라는 이유로 제보했다는 제보자에 대해서는

완전 극악무도한 놈으로 매도하면서 한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성적밖에 안중에 없는 '이기적인 놈'때문에 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본다고..

 

 

정말 이해가 안된다.

학교에서는 1학기 성적 유예상태의 학생들에게 이번시험으로 유급자를 결정한다고도 했고

그렇다면 문제유출로 인해 생기는 선의의 피해자가 받는 타격은

그냥 낮은 성적정도가 아니라 무려 1년간의 졸업유예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걸 다들 정말로 모르고 그 제보자를 비난하는 걸까?

도대체 누가 일이점 점수를 더 받자고 재시험을 쳐야 한다고 나설까,

훨씬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깐 무려 '선의의 피해자'운운하며 제보를 한거겠지.

 

나의 경우도 이번시험이 재시험없이, 혹은 시험문제 파동(?)이 쉬쉬하면서 덮인채 끝났다면

문제를 알고 시험을 치룬 사람과의 상대평가라서 훨씬 더 낮게 평가됐다는 걸 모른채

자신감 상실과 내가 가진 핸디캡으로 내 상태를 변명하려는

구질구질한 심리상태로 불안하게 몇개월을 보내야했겠지.

 

즉,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험을 공정하게 보는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걸 전혀 이해못하고 자기가 받은 손톱만한 피해를 가지고

그 제보자를 비난하는걸 보고 있자니

미래에 우리모두가 속할 이익단체(..)에서 

그때 뭔가 손해가 날만한 상황이 생긴다면

전체적인 정의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당장 나자신 전후좌우 1미터 이내의 손톱만한 이해타산을 따지며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이 될것같아

그럴것같아... 라는 생각을 했다.

 

제보자가, 자기를 비난하는 학생들 예상대로

자신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제보를 했다 해도 잘못한 건 없다.

더구나 시험결과로 심각한 상황이 생길수 있기 때문에 그런거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지

하지만 제보자가, 제보자를 비난하는 다른 학생들이 예상과는 달리

자신은 피해를 받은 수험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선의의 피해자'를 염두에 두고 학교에 제보한거라면 더 좋겠다.

집단적으로 이기적인(이기적이다) 의식상태를 보이고 있는 동기들 때문에 기분이 꿀꿀한데

그 중에서도 이런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한명쯤 숨어 있는 거라면

그러면 그래도 좀 균형이 잡히고 자정작용이 있는 집단인거 같아서 안심할 수 있을거 같다고.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아닌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지.

 

 

재시험 결과는 만족한다

체력적으로도 다소 회복된 상태였고...

이렇게 공정하게 다시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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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

2013. 7. 26. 20:20 from yS 2010▷2013

사주에서 식신상관, 식상은 자기가 키워내고 뽑아내는 거니깐 여자에서는 자식을 뜻하기도 한다.

식상이 어떤 건지 명료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뭔가 표현을 해내는 걸 의미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식신과 상관은 차이가 있는데

식신이 좀더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표현이라면

상관은 좀더 예리하고 독특한 표현쪽일거다.

생일을 알게된 후 식신과 상관의 차이를 생각하며 보게된 사람들이

바로 SNS 에서 앙숙(?)으로 유명한 J씨와 B씨인데

J씨의 경우 상관을 쓰고 있고 B씨는 식신을 쓴다.

두 사람이 뭔가를 표현을 할 때 차이점은

B씨의 표현은 뭔가 거칠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륜적인 측면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반해

J씨는 B씨가 말한바 '최고의 카피라이터'라는 말대로 순발력있고 세련된 표현을 할줄은 알지만 인륜에 어긋날법한 표현도 앞뒤가리지 않고 나와서 비판을 받는다. 

이런게 의도된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천성이겠지.

B씨가 푸근한 식복을 의미하는 식신을 씀에도 어딘지 치우친 모습을 보이는 건

식신을 깨는 도식.. 편인이 식신 옆에 붙어있어서지,

실제의 B씨는 식신이 보여주는 관용과 상식을 깔고 있는 사람이리라 생각하고 있다.

 

식상이란 건 분명히 어떤 표현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무라카미하루키는 칠살에 상관을 쓰는데 이때 그의 글을 잡아주는 상관의 역할은 제멋대로가 아니라 훨씬 납득이 가는 견고함이며 이는 상관이 힘을 쓰는 대상이 자기가 제압해야 할 칠살이기 때문일것이다.

김연아의 경우는 인수격에 상관을 쓰는데, 비슷하게 인수격에 식신을 쓰는 아사다마오와 비교해서

상관의 표현력은 훨씬 전문성이 있고 세련된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난 사주에 상관이 없고 식상이 묶여 있어서

저렇게 식상을 쓰는 언론쪽이나 글쓰는 사람들, 예술...

이런 사람들의 작업(?)과정이 어떤 심리과정에서 이루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똑같이 식상을 쓴다고 해도 칠살을 누르는 역할인지, 인수로부터의 조력을 기반으로 기량을 빼는건지

아니면 치우치게 수용한 만큼 치우치게밖에 표현못하는 건지, 사회의 규범을 제멋대로 깨는 건지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는 정말 모르겠어 그 사람이 아니니깐

 

오늘..

어제밤에 이슬을 본다음에 아침까지 묽은 혈흔이 나와서

혹시나 ROM왔을까봐 아침부터 병원을 다녀왔는데

결국 ROM도 아니고 진통이 오려면 많이 남은 거 같다는 소견을 듣고

집에 돌아와 누워있는 동안 낮부터 가진통인지 진통인지가 지속되고 있다. 

시간 간격이 낮에는 30~40분이었는데

지금은 10~20분 가진통일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진통이란 건 이렇게 점점 짧은 시간 간격으로 몰아쳐서

결국 태아를 밀어내는 거니깐

주로 표현을 뜻하는 식상의 작용이란 것도

어떤 'push'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좀 무서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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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2013. 6. 30. 20:58 from yS 2010▷2013

초등교육을 받을 당시

그때 예상치 못하게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다른 친구들은 당연하게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산을 챙겨가지고 마중을 나오는 듯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 10분 15분 걸리는 거리 뭐 얼마나 멀다고 비좀 맞을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신건지

우산같은 거 잘 챙겨 갖다주는 스타일이 아니셨다.

예고없는 갑작스런 비 뿐 아니라

애초에 일기예보에서 비올 확률이 높다고 하니 우산을 가져가라 와 같은 챙김도 거의 하지 않는

방목형의 가정교육을 지향하시는 분

그래서 비오는 날 하교길에 비를 맞고 집에 가는 일이 꽤 많았던 거 같은데

이게 참...

서럽다고 하기에는 너무 서글픈 뉘앙스의 표현이라서 그때 기분에 딱 맞지 않고

뭐라고 해야 되지..

비맞고 돌아다니는게 창피했다고 해야 되나

아무렇게 팽개쳐져 있다는 걸 비오는 거리에서 남들이 다 보고 알게되는게 부끄러웠던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중고교로 넘어가면서 그렇게 우산 챙김받는 애들도 별로 없고

사실 뭐 비 좀 맞고 다니느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우산따위 나한테 별거 아닌게 돼 갔다.

 

그리고 대학졸업 후에 엄마에게 미리 공언한대로

집으로부터의 경제적 도움은 완전 끊고 내 힘으로 내 살림을 꾸리게 됐는데

내힘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 생필품 사러다니기 곤란한 지역 정도에나 있어서

이사 첫날, 버스타고 멀리까지 가서 이것저것 수납장이라든가 생활용품을 사들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근데 무슨 보따리 장수도 아니고, 혼자 거두기엔 확실히 많은 짐(수납장 포함)을

택시도 아니고 버스에 위태롭게 실은채 끌어안고 오자니

버스가 급커브를 도는 순간 내가 들고탔던 짐들이 버스안에 막 흩어져 버릴 뻔하게 된 거였다.

그 순간 어떤 여자분이 날 쳐다보지도 않은채 짐이 흩어지는 걸 몸으로 막아줬는데

그제서야 알뜰하고 씩씩하게 생활전선을 헤쳐나갈 것에만 집중하느라

거의 잊고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내가 궁상맞고 불쌍하게 보이나보다 와 같은

옛날에 어릴 때 비맞고 집에 갈 때 느꼈던 창피함과 비슷한 감정을

그 친절한 여자분을 통해 새삼 되새기게 된거였다.

 

보살핌과 같은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지지를 통해서 안정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예를들어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가거나 출산할 때 남편이 옆에 있지 않아서 섭섭하다는 둥

그런 글들을 굉장히 많이 보게 되는데 

나로서는 참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지속적인 보살핌과 지지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그런 보살핌을 잘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게 내 경우와 같이 시선의 창피함때문에 생겨난 외부적인 방향에서의 필요인지

그런거완 별개로 내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필요인지는

사람마다 좀 차이가 있겠지만

 

요즘 날씨가 참 오락가락 하는데 

얼마전 집에 오는 길에도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셔틀버스에서 내리고 집에 가자니, 문득 수박이 먹고 싶어서 마트까지 가서 수박을 사들고

그리고 비오는데 수박이 달지 않으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왠 친절한 아가씨가 '우산 같이 써요'라면서 다가오길래

'노땡큐 ^^'라고 말하고 그냥 걸어갔다.

배도 불러가지고 우산도 없이 비맞고 수박 들고 (낑낑대는 듯이 보이게) 걸어가는게 안돼보였나보다.

그러고 생각난게 앞서말한 어릴 때 우산없이 비맞으며 집에 가곤 하던 일인데

역시나 어릴때 내생각대로 남들은 어린이가 비맞고 돌아다니는 걸 불쌍하게 본 것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불쌍하게 쳐다봤을거라고

 

그래서 난 최소한 초등학교 때 까지는 그렇게 방목형으로 애의 자립심을 북돋지는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에 대해 이동진씨가 '아이들만의 외로움'이라는 표현으로 평점을 올려놨는데

그말대로다.

내가 벌써 잊어버릴똥 말똥 하고 있는 내 어릴때의 외로움을 자꾸 기억해내야지

그래야

이미 어른인 내 기준의 꿋꿋함으로 애를 외롭게 몰아대는 일이 없을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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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전

2013. 5. 23. 22:44 from yS 2010▷2013

 

그러니까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나 상황이란게 있고 목표라는게 있는건데

 

 

나도 내가 밉살스럽게 보인다는 걸 알고 있다.

 

실습실에서 책펴놓고 공부하는 등의 행동이

 

수다떨면서 쉬는 애들의 신경을 굉장히 자극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아무튼 내 입장에선 출산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도 있고

 

일과 후에 집에가면 예전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더 지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자버리게 되니깐

 

그나마 병원에 있을때 빈시간이 생길때마다 공부를 해둬야겠다고 생각해서

 

밉살스럽게 보인다는 걸 알아도 그냥 공부하고

 

남들이 옆에서 떠들어대도, 그냥 떠드는 게 아니라 일부러 더 크게크게크게 웃어제껴도

 

고달픈 병원실습 중 그나마 학생들이 편하게 있을수 있는 이 실습실에서

 

'시끄러우니깐 조용히해라' 라는 등의 불평을 할 입장은 아니란 것도 알고 있으니깐 

 

아무튼 그런 소란도 내가 절박해선지 그럭저럭 견딜만해서 그냥 내 공부만 계속하는데

 

 

 

오늘은 무슨 전투라도 치른 기분이다.

 

내가 앉은 자리의 책상이 중심이 안 맞아서 흔들거리는데,

 

옆에 앉은 애들이 일부러 그걸 쳐 대면서 떠들어대서

 

그러면 난 그냥 그 자리를 뜨면 될건데 왜 난 거기에 버티고 앉아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시끄럽게 방해해도 공부할 수 있다며 그런 환경에서 버티는 것도 바보같고

 

그런 불편한 자리에서도 버텨내겠다고 하는 건 미련하게 오기를 부리는 거다.

 

애초에 남들 눈에 띄게 강의실에서 공부하지 말고

 

어디 병원 구석에 숨어서 공부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건데도

 

그냥 남들 눈치보면서 그렇게 숨는 것도 싫어서

 

괜히 미움받을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는 

 

'내가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서 공부하는게 싫어죽겠지만 그래도 해야돼 잉잉' 같은

 

'내가 지금은 이렇게 책을 펼쳐놓고 있지만 어제 집에가서는 바로 쓰러져 자버렸어 잉잉'같은

 

여자들스러운 자기변명이 왜 안되는 걸까.

 

 

 

 

베토벤은, 성격이 바로 운명이다 라고 말했다는데

 

그래 이 말은 정말 설득력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다들 자기 나름의 상황이 있고 각자의 목표가 있는데

 

애들이 이렇게 찌질하게 자기 눈앞에서 공부하는 걸 못견뎌하는 건 결국

 

자기만의 급한 마음이 있고, 그렇게 자기의 작은 세계안에서 지쳐 있기 때문이란 걸 알고는 있다

 

오늘 옆에서 굉장하게 떠들어대고 웃어제낀 애들 중 한명은

 

지난 주말에 학교 국시실에 혼자 와가지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찌다가 갔다.

 

얼굴이 벌개질 만큼 공부하느라 타올랐다는 말이다.

 

그런주제에 남이 공부하는 꼴은 못보는 그런 소갈머리는

 

결국 자기가 급하고 옆의 모두를 경쟁자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난 당신들을 경쟁자로 생각하지도 않는데

 

내 경쟁상대는 당신들이 아니라 바로 내 상황이고, 나 자신이고, 

 

가장 심리적 범위를 좁혀 봤자 기껏 나와 같은 병원에 지원할 다른학교의 학생들 정도일텐데 

 

왜 그렇게 자신의 쪼그라든 마음을 남에게 투사시키며 괴롭히는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정작 나는 또 왜 이렇게 쪼그라들어 있는 애들을 상대로

 

그런 정신적인 전투를 유발하고 또 지속시키는 건지도 그것도 참 모르겠고

 

 

 

오늘로써 실습일정은 다 끝났으니 실습실에서 시간보낼일이야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다음부턴 안그래야지

 

성격이 운명이다 라는데

 

이런 전쟁같은 운명은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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謎 惑

2013. 4. 15. 19:59 from yS 2010▷2013

 

 

실습을 하다보면 교수님들한테 이것저것 질문을 받게 되는데

보통은 실습과 관련된 질문으로, 예상질문지와 모범답안지도 전수돼 오고 있기 마련이다.

이런건,,, 미리 공부를 해둬야 하는 시험같은 거라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런 질문은 충분히 받을만하다고..

근데 가끔씩 좀 모호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라든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니? 라든가

의사가 되고 싶다고? 의사가 되는게 대체 뭐라고 생각하길래? 라든가....

질문을 하시는 거야 상관없는데, 저렇게 다종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사실은 당신께서 듣고싶은 답, 하고 싶은 말인 모범답안을 정해두고 계신다는 게 문제.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정말 피곤하다.

 

말하자면 생활인으로서의 교수님이 겪고 계신 중년의 사춘기를

학생들에게도 강요하게 되는 상황이랄까.

 

중년의 사춘기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아직 중년이 아닌 내 입장에서도 그런 종류의 질문을 하시는 교수님들이 어떤 심리인지

보인다.

다 아는 것처럼 건방떨지 말라고 해도 정말 다 보인다고.

눌어붙은 현재를 살아내야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시간이 오래되고

오래된 시간만큼 개인의 이상과 꿈(이 너무 오래되면 욕심이랑 분간이 안되기도 하겠지만)은 흐려지고

그런 흔들림이 낳은 사유의 결과물을 퍼뜨리고 계신 중이라는 걸 난 알 수 있다고.

 

물론 당신의 '말하고 싶은 욕망'을 위해 들어드릴수는 있는데,

당신께서 원하시는 바와 다르게

그런 사유들이 더이상 내 마음에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키지를 않는다.

더이상 새롭지가 않아서다.

낙관을 위한 강박적인 낙관도 피곤하지만

내가 이미 아는 비관을 반복해서 듣는 건 더 피곤하다.

비관을 공감하며 함께 나누고 싶지가 않다.

그러느니 아수라같은 욕망속에 아득바득 열심히 사는 분들의 얘기를 듣는게 더 재밌다.

 

 

그러니깐 '내가 이미 아는' 비관이라는 게 결국 문제의 핵심인거다.

무수한 사람이 반복해서 경험해오고 있는 보편적인 비관.

구체적인 내용은 사실 별볼일 없는 것인지라, 좀더 원론적인 언어로만 추려져서

누군가에게서 누군가에게로 반복 전승되고 퍼지고 있는 이런 비관들은

내 삶을 흔들며 비집고 들어온 6,7년전과는 달리 

이제 내 마음에서 이미 식상해지고 흐릿해져 가고 있었는데

 

 

 

그런 그런 질풍노도 중년의 언어들 속에서

방사선과 C교수님의 한마디가 별처럼 빛난다.

 

C교수님은,, 굉장한 에너지를 쏟아내며 노는 분으로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때 정말 열심히 마음껏 노는 분으로

수업시간에도 완전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며

학생들 또한 수업내용보다 그분에게 화끈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더 신경써야 하는

그래서 원래는 좀 기껍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난 보수적인 학생이니깐.

그래도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만 유머가 완성되는,

그런 폭력적인 개그코드가 결코 없어셔서

자기를 위해 남을 밟는 짓은 아마도 하지 않을 분이라는 면만 기껍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몇주전 C교수님 담당과를 실습하던 중.

여느때처럼 시시한 익살과 학생들의 리액션을 유도하며

수업내용보다 분위기를 추구하는 강의를 하시면서 문득

화면 속 방사선 사진에 대해

'아름답지 않냐'는 말씀을 하셨다.

다른 최첨단의 영상이 아니라, 그냥 단순 엑스선 사진을 가리키며

그 흰색과 검은색에서 미학적인 어떤 면이 보이지 않냐고..

 

그래, 나도 물론 방사선 사진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조물이 뭔지 저 구조물이 뭔지 보고 외우는게 귀찮아 죽겠던 학생이 문득

흰것은 뼈고 검은 것은 공기라, 간결해서 아름답구나 라고 생각하며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공부를 작파한 학생의 미감과 

그 검은 것과 흰것들이 더 희고 더 검고 덜 희고 덜 검다며 각자 자기 소리를 내는 걸 다 알아채고 있지만

그럼에도 오직 검은 것과 흰것이 아름답구나 라고만 말씀 하시는 교수님의 미감을

감히 같은 거라고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걸 반복함으로써 추상적인 어떤 걸 문득 발견해내는 건

오직 시간을 충실히 견딤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40대는 불혹의 나이라고 하는데, 그 말대로 C교수님은..

중년의 사춘기를 전파시키려는 시시한 수수께끼를 던지며 학생들을 미혹하는 대신

세부적인 정보를 찾기위해 지난 20년간 매일매일 열심히 살펴보던 사진들 속에서 얻은 보편적인 영감을

시같은 한마디로 던져주신거다. 

 

C교수님은 중년의 사춘기를 그래도 그럭저럭 넘기고 계실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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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

여자들의 지하드

2013. 3. 25. 10:28 from yS 2010▷2013

 

그동안 소식이 궁금했던 여자대학동기 J에게서 얼마전 연락이 왔다.

10프로도 안되던 여자동기들 중 한명인데도 어찌된게 아무소식 하나 들려오지 않았을까 이상한일이지만

둘 사이에 조금 껄끄러운게 있었던 듯도 하고

어쩌면 내쪽에서 절대로 친한척 관심있는척 안하려 했을수도 있다.

 

대학 입학하고 잠깐 호감을 가졌던 동기 남자애가 있는데

그런 상태에서 살펴보니깐 이 남자애가 J하고 어떻게 잘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J의 행동이 하나하나 거슬렸다.

뭘해도 이성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내숭떠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완전 가식적이고 여우같은 기집애라는 그런 느낌이 점점 쌓여갔다.

한번은 같이 하던 스터디모임에 늦게 참석한 J가 스터디도중 청승맞게 눈물을 글썽글썽 한 적이 있는데

대체 누구한테 보이려고 저런 감성쇼를 하나 하고 계속 미운눈으로 흘긴적도 있다.

 

그 남자애는 얼마지나지 않아 당연하게도(ㅋㅋ) 내 매력에 넘어왔다가 또 결국 나한테 차였지만

그렇게 문제의 발단이 됐다고도 할 수 있는 남자애가 떨어져 나간 다음에도

J와 나는 계속 서먹했고, 이 서먹함이 나로인한건지, 아니면 J도 나에게서 뭔가 느끼는 게 있는건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대학입학하고 첫학기동안 둘다 기숙사에 있으면서 그래도 좀 쉽게 인사를 나눈 친구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첫인상에서는 애 수더분하고 담백하고 괜찮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터라

이런 서먹함이 이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는 건 참 소모적인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전 졸업 후 처음으로 연락이 온건데...

일단 연락 자체는 굉장히 반가웠고,

J도 나도 서로에 대해 아무런 소식을 못듣고 살았다는 걸 알았고

그간의 서로의 안부를 열심히 물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탐색전 속에 뭔가 동정해줘야 할 어떤부분이 있기를 서로 기대하지는 않나하는

여자들의 대화에서 으레 묘사되는 신경전을 미묘하게 감지했다.

 

그래도 이정도라면 소위말하는 '화해'라는게 된게 아닐까..(딱히 싸운것도 아니지만..)

그냥 시간이 두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해 줘 버린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시의 난 왜 애꿎은 J를 미워했을까..

나 나름대로는 미움받아 마땅한 애라고 그 근거들을 하나하나 모았던 듯도 하지만

사실은 걔가 이미 싫어져버렸기 때문에, 그런 내 미운 마음이 심술궂은 눈으로 J를 평가하게 한거다.

 

 

중고등학교 때는 워낙에 우등생이라 누구하나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서 친구들 신경쓸거없이 잘지냈고

대학교 때는 여자애들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애초에 무슨 패거리가 만들어질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는 여학생 비율이 절반이라서

여자애들의 집단이라든가 무리라든가 아무튼 그런 패거리의 이합집산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이동네는 소문도 많다.

남자애들이 소문이란것과 어떻게 관계맺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자애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소문이란건 꽤 중요한 문제다.

오죽하면 여자들의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에

'주변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는 느낌'이라는 그런 항목도 있을까.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라는 건 어찌보면 좀 불쌍한 존재다.

털털하고 성격좋다는게 사실

다른 남자한테 꼬리치지 않는, 따라서 날 가로막는 장벽이 되지 않을 돌멩이 같은 여자..

뭐 이런 의미 아닌가.

같은 여자입장에서 도무지 참을 수 없는

헤픈 웃음, 감정을 동요시키는 가벼운 신체접촉, 여성스러움을 가장한 내숭 등등의

남자꼬시는 기술들을 사용하지 않는 그런 성격좋고 털털한 여자가

대부분 여자들이 욕하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다.

 

물론 저렇게 여성미 없어서 안심이 되는 여자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신의 적이 되냐하면

또 그건 아니고,,

주요한 타겟.. 주적에 대한 악담을 나누고 퍼뜨릴 동안 그럭저럭 참아줄만한 여자들과의 연대는 유지되는데

이게 대개의 여자애들이 만드는 패거리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FM에 좀 많이 가녀리고 여성미 넘치는 여선생님이 한분 계셨는데

남자애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천사같은 N선생님이라며...

근데 실습실에서 N선생님을 찬양하는 남자애들에 대해 몇몇 여자애들이

'그렇게 여자보는 눈이 없으니깐 여자친구를 못사귀는 거라며 N선생님은 완전 내숭이다'라고

'여학생이 질문에 답하면 알듯모를듯 비웃는듯 눈내리깔고 씨익 웃는거 정말 기분나쁘다'고

그렇게 같은 여자인 나도 100프로 공감이 되는 말을 했는데

N선생님이 여자애들한테 미움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럭저럭 예쁜편이긴 한데, 자기 예쁜걸 굉장히 부각시키는 여성스러움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어서

그게 여자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거다.

저렇게 이쁜척하(며 남자꼬시려고 하)니까 당연히 남학생보다 여학생들을 부당하게 평가할게 분명하겠지..

이렇게 N선생님이 미운 여학생들끼리는 은연중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렇게 연대가 이뤄지는 거다.

실제로 N선생님이 여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제대로된 근거는 하나도 없다.

그 알듯모를듯한 고상한 미소,,

남자애들은 예쁘다고 환장을 하고 여자애들은 비웃는거 같다고 불쾌해하는 그 여성스런 미소빼고는.

그리고 설사 N선생님이 내숭좀 떨고 이쁜척 하면 뭐 어떤가

내숭 떨면 남자에게 나쁜 여자인가?

인간관계 처음 접근의 과정과 관계 유지과정은 다른 거 아닌가

접근의 과정에서 내숭이나 가식이 좀 있으면 어때. 그렇다고 나쁜사람이란 법은 없는 거다.

천사같이 보이면 그냥 천사같이 생각하면 되는 거지.

 

얼마전에 여자 R이 한명만 있는 과에 1년차로 들어간 여선생이

원래 있던 선배 여자 R의 구박을 못견디고 결국 그 과를 나와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원래 있던 여자 R이 예쁘게 생겼고 자기가 그 과의 홍일점이었는데

새로 들어온 1년차 R도 예쁘기도 하지만 일단 새로 들어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서

그래서 그걸 못견딘 선배R이 1년차를 심하게 대했다고

웃기지만 그래서 1년차가 도망간거라고 그런 소문이 돌았었다.

선배 R이 먼저 시작한건지 아니면 후배 R이 자기가 느끼는 여자로서의 경쟁의식을 선배R에게 투사해서

더 밉보이게 행동하고 피해의식이 쌓여간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다 여자였다는 것에서 결국 문제의 본질은

소문대로 사무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인 것일거다.

 

그리고 저번학기에 발표하던 나에게 인신공격을 해대던 여자의사 펠로우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군 이유를 사실 나는 알고 있는데

그건 내가 발표도중에 여자냄새를 풍겼기 때문이다.

이미 인턴도 해봤고, 사회생활도 해봤기 때문에

여자들이 애같은 말투로 책임감 떨어지게 구는게 어떤건지 잘알고, 그에대한 교육도 받아놔서

학교들어온 후 공적인 상황에선 다른 여학생들은 다 어색하게 여길 '다나까 화법'으로 말을 했었고

실습 때 케이스 발표할 때도 항상 그런 부분을 신경써왔다.

하지만 발표도중 전혀 예상못한 실수가 자꾸 눈에 들어오니깐

그 민망함을 무마하려고 무심코 웃게 된 것이다.

여자들이 미워하는 스킬... 귀여운 척 헤프게 웃는거...이런걸 한게 돼 버린 셈이지.

그래서 그 펠로우는 발표 중의 실수를 가증스런 애교로 무마하려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하지만 그 여자의자 펠로우도 문제가 있는게

민망함을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상대의 성별이 남자였다면

그 행동을 그렇게 도드라지게 의식하진 않았을 거란 점이다.

결국 서로 견제를 하는 상태였으니깐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

 

 

그래서 내숭떠는 여자를 공격하는 여자들이 그런 남자꼬시는 못된 기술(?)을 안쓰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자기들도 쓴다.

열심히 외모를 치장하고, 적당히 웃음도 흘려주고, 간간히 스킨쉽도 던져주고 뭐..

근데 이게 과하게 부각되지 않아야 여자들 사이에 소문을 형성하는 주체로 떳떳해지니깐

자기 행동을 괜히 설명하고 떠들고 그래서 일반적인 것인양 만들어버린다.

어찌보면 대놓고 촌스럽게 여성미 풍기고 다니다 소문의 주인공이 되는 여자애들의 자연스런 행동에 비해

훨씬 영악하고 노련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여자들에 대해 또 어떤 똑똑한 여자들은

'털털한 척 하느라 고생한다'라고 비아냥거린다.

정말 끝도 없이 물고 물리고 이어지는 전쟁이지만

여자들 패거리가 생길만한 집단에서 지낸 지난 3년간 몸으로 느낀 일들이며

어차피 영화같은데서도 흔하게 나오는 일상이고 현실인거다.

 

 

 

한번은 다른학년의 어떤 남자애가

여기, 우리과 여자애들 정말 쉬워보인다면서

살짝만 건드려도 넘어오게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애들이 다들 외로워 보이지 않냐고

그래서 사귀려고 맘만 먹으면 사귈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처음 들을 땐 굉장히 기분 나빴지만 듣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대부분은 이성과의 관계 때문에

너무 단순한 이유지만, 결국 남자때문에 다른 여자에게 괜한 미운감정을 품는다.

자신과의 어떤 가능성이 잠재된 남자들이든, 자기가 실제로 마음에 두고 있는 특정 남자든.

 

전에 학교에서 벗어나서 시내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동기애들이랑 걷다가 알게됐는데

(맨날 패거리나 무리를 짓고 다니며 남 험담이나 하고 소문이나 만드는 그런 스타일의)

어떤 여자애도 밤에 여기 산책로를 걷더라며

(사람들이랑 같이 걸으며 못된 소문을 만들거나 하지 않고)

혼자 걷더라며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입이 삐뚤어지게 눈이 삐뚤어지게 귀가 삐뚤어지게

험담이나 하고 듣고 하는 그런 사람들도

가끔은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구나 하고

혼자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었다.

 

너무 뻔한 소리지만

좀 마음을 곱게 쓰면 얼굴도 예뻐지고 남자친구도 생길건데

왜 그렇게 마녀같이 굴면서 마녀같이 못생겨져 가는지 모르겠다.

바보들. 

 

예뻐서 착한 애들이 좋다.

여자들의 자연스런 행동이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그런 솔직한 애들이 편하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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