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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5.09.15
  5. 2015.09.15 소아 이알
  6. 2015.05.26 페인 컨트롤
  7. 2015.05.26 청량리

 

 

 

 

 

전에 네이버실검에 거의 하루동안이나 일본사람 이름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또 어디 왜놈이 극우망언이나 했나 싶어 욕이나 한바가지 해주려고 클릭해봤더니

얼마전에 본 정말 좋았던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을 만든 사람이라는 걸 알고

좋아했을 사람들이 많을것이다 나처럼 ㅋ

물론 생각난김에 영화에 나온 노래들도 다시한번 찾아 들어봤을 것이고

 

너의 이름은 마지막 장면에 이어지던 엔딩곡은 정말 영화관을 뜰 수 없게 잡아 끌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다른 영화와는 정말 비교가 안될 정도로 사람들이 나가지를 않고 그냥 음악을 듣고 앉아 있었는데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들기도 했지만 그 여운이 길게 길게 이어진 건 역시 음악덕분일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좋아서 다시 찾아듣다보면

영화를 보던 중에는 전혀 자기주장을 내세운 적 없는 것 같던 다른 삽입곡들

그러니깐 노다요지로가 가사가 들어간 곡이 4개나 돼서 걱정이라고 했던

다른 노래들도 그제서야 자기들이 얼마나 괜찮은 곡인지 티를 내기 시작하는 것도 신기했다.

 

몇개월전에 어디 게시판에서

Jpop망했다면서 만화영화 OST가 음원차트 1위를 하는 동네라고 비웃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 만화영화가 너의 이름은 이었을 것이다.

하이틴스러워서 글 내용에 더해 더 경박해보이던 영화포스트를 보며 한심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영화의 감동과 함께 요즘계속 노래들 듣고 있긴 하다.

정말 그간 일본노래 거의 15년은 안들었을텐데.

 

 

하지만 대부분 좋다고 느끼는 래드윔프스 노래에 비해

좀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는 (초속 5cm에 나온)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더 좋은건

역시 난 아재스런 노래가 취향인것일까.

그보다 일본사람들, 노골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노래에 대해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거 같아 ㅠ

아무튼 감독의 전작을 찾아보다가 본 영화에서 영화자체보다는 음악이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겠다.

 

 

 

 

초속 5cm은 '너무나 거대한 인생과 아득한 시간이 감당할 수 없게 놓여 있어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 소아과에서 만난 윗년차는 나와 동갑이며 당시엔 미혼인 여자선생님이었는데

대개 나이많은 미혼녀들이 결혼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지 않는 것에 비해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마치 다이어트 결심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듯, 본인의 결혼의지를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녔다.

그게 첨엔 이상해보였는데

나중에 본인에게 들어보니, 사람이 특정나이에 기대되는 어떤 사회적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자꾸 이상한 생각들에 빠지는 것 같다고..

그건 본인이 경험한 방황에 대한 얘기일 것이고,

아무튼 2016년에 그 선생님은 결혼을 했다.

 

대학원 때 동아리 여름합숙비용을 위해 졸업선배들 보조 요청하러 갔을 때 본 어떤 선배의사는

이제는 자기 병원 유지하는 일만 하면 된다며 일견 여러모로 안정적인 상태였을 텐데

몇주뒤 주말에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만나달라고 꼬드기며 질척댔다.

유부남 새끼가 사는게 심심해서 불륜이라는 모험을 해보고 싶었겠지.

 

통과의례를 거친다고 이상한 생각들에 대한 유혹이 끝나는 건 아니며

별일없이 사는 대다수 사람들에겐 죽을 때까지 여기저기 빠져들고 싶은 샛길들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요즘 오비지와이에 있으면서....

한국에 10년이나 머무르며 본국의 남편자식에게 송금도 하지만

한편으론 병수발 들어주는 남친도 있는 불체자 아줌마를 본 적도 있고,

조산 위험으로 입원한 만삭 임산부가 성병이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옆을 지키는 남편과 본인의 치료를 위해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부부 둘중 어느쪽이 범인이든 이건 정말 너무하다 싶은 상황 아닌가.

그리고 남편은 없지만 남자친구 때문에라도 바자이나 성형을 몇번이나 하는 60대 여자분, 할머니가 아니다, 여자분이다.

 

여기 전공의 선생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 컨벌젼을 하는 내가 너무 나이브한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아득하게 이어지는 인생을 이런 일탈을 통해서라도 견뎌내고 감당해내는 사람들이 대견하다고도 생각했다.

일탈이라니,, 일탈이란 표현도 바보같다.

 

 

 

 

 

 

초속5cm에서 보여주는 도시의 이곳저곳은 오작교도 놓을 수 없을만큼 거대하고 아득한 공간들이지만

그래도 신카이마코토 감독은 그것을 '도시'의 무정함이라고 표현한 건 아닐것이다.

너의이름에서, 내세엔 도쿄의 꽃미남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자고 일어난 애에게 보여준 도쿄의 아침풍경이 찬란해서,

분명 도시의 아름다움을 가슴깊이 인정하는 것일거라 생각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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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

2016. 5. 13. 01:42 from S.paul 2015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내 병만 고쳐달라고, 정말이지 돈쓸 작정을 하는 환자들이 가는 병원도 있지만

 

내가 있던 병원은 가슴 엑스선에서 보이는 작은 덩어리가 혹시나 암인지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검사,

저선량 씨티 한번 찍는것도 못하겠다고 하는 환자도 있었다.

며칠 입원기간동안 정말 최소한의 검사와 치료만 하는 동안 나온 20만원 정도의 입원비도 부담스럽다는 환자에게

'암인게 확인되면 그나마 진료비용 5%만 부담하면 된다'라는 말을 하면서 검사를 유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암 진단되는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아무튼 서혜부 hernia 수술을 하려고 입원한 L 할아버지도 굉장히 가난한 사람이었다.

수술이 끝나도 한달정도는 배에 힘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설명했더니

하는 일이 힘을 좀 써야 되는 일인데 일을 못하면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그렇게 입원하면서부터 벌써 수술비문제로 사회사업에 의뢰해서 진료비를 마련했던 환자다.

 

근데 hernia수술도중에 복부 대동맥류가 발견됐고 이게 바로 문제의 시작이었다.

 

5센치였나 6센치였나..

70대 할아버지가 큰 불편없이 지내오셨는데 저정도에서 꼭 수술을 해야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결과가 나빴으니깐 차라리 안하는게 나았을거라고 지금 말하는 건 쉽지만

환자를 앞에두고 의사들은 보통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컨센서스에 맞춰서 의사결정을 하게 마련이고

그래서 결국 그 대동맥류 수술을 하게 된 거다

 

GS에서 나는 DRG적용되는 간단한 수술환자만 맡게 돼 있었으므로

hernia수술이 끝나고 퇴원한 L 할아버지가 근 한달간 복부대동맥류수술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재입원했을 때는

더이상 내 담당 환자는 아니었다.

 

난 그냥 대동맥류 수술 후 회복중이던 L할아버지가

수술 며칠뒤 갑자기 stroke이 와서 반신부전마비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얘기가 컨퍼런스 시간에 나오자마자 담당교수가 '내잘못 아냐, 나랑관계없어'라고 말하는 모습을 봤고

그리고  그날바로 L할아버지가 NS로 전과되는 상황을 봤을 뿐이다.

 

L할아버지는 사실 stroke이 오기 며칠 전 수술부위의 출혈이 있어서 간단하게나마 재수술을 했고,

출혈이 반복될까봐 항혈소판, 항혈전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게 뇌혈관의 stroke 발생과 얼마나 관계가 있을지, 혹은 그정도의 risk는 어쩔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건지

그런부분은 내가 정확히 모르겠다.

 

담당교수가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잘못해서 L할아버지의 뇌혈관 어딘가가 막혔을 것이다.. 라는 얘기를 하려는건 아니다

그저 어떤 식의 문제든 환자에게 문제가 조금 생겼다고 주치의가 손을 싹 빼고 얼른 해당과로 넘겨버리게 된 후에

그 환자가 어떤식으로 붕 떠버리게 되는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NS 로 전과돼서 stroke에 대해 뭔가 수술인가 시술을 받고 ICU로 전실되셨고

그리고 회진때문에 ICU 지나다니다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인사하던 나에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시는 것 까지는 봤는데

 

그래, 운이 없어서 뇌졸중이 생겼지만 그래도 회복은 되시겠지 라고 생각했고

나는 GS를 떴고 한동안 L할아버지는 내 시야에서 떠나있었다.

 

 그러다 얼마전에 문득 생각이 나서 외래 잘 다니시나 싶어 기록을 확인해봤더니

세상에, NS전과간 후 한두달 사이에 이미 돌아가셨다고한다.

 

그러고서야 그동안의 경과가 대체 어찌된건지 봤더니

stroke치료하던 중에 폐렴이 생겼고 그래서 한동안 RM이랑 풀모, 카디오 등등

이과저과 전전하며 전과를 반복하다가 결국 임종하신거라고,

만성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나빠지게 되는 것 같은 코스를 두달사이에 겪다가 돌아가신거다.

서혜부에 탈장이 되는 불편말고는 원래 힘쓰는일로 생계유지하며 살던 건강하던 분이

갑자기 팔다리 제대로 못쓰게 돼서 중환자실에 누워지내다가

마치 몇년을 앓다가 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가버리셨다.

 

 

 

NS의사들에게 L할아버지의 인상은 그저 와상상태의 중환 중 한명일 뿐이었을 것이다.

원래의 건강하던 모습을 본 의사들이 없으니깐.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한 GS교수는 NS로 전과된 후 결코 환자회진을 하지 않았을 거다.

환자가 의사얼굴을 보면 '왜 수술 하고 나서 이렇게 됐냐'는 말을 할까봐 무서울테니까

할아버지는 가난한 사람이었고, 보호자도 할머니 한분 정도밖에 안계셨다.

의사들입장에서는 왜이렇게 됐느냐로 추궁할 가능성이 낮은 환자에 대해서는

분명히 마음이 짐이 줄게 마련이고, 그만큼 환자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난 GS의 가장 원로교수가, 손톱만큼이라도 돈좀 있고 백도 있는 VIP환자들은 자기 손에 붙들고 놓지 않으려하고

그에 반해 아무것도 없는 그러니깐 플레인 환자들에 대해서는 뒤도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환자를 보면서도 확인했고 병동간호사들 소문으로도 재차 확인했다

 

 

환자의 경과와 예후는 의사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에 달려있다.

 

 

 

과에 의사가 부족해서 힘에 부쳐서 환자에게 관심 가질 여유가 없다는 말도 할수 있을테고

극적인 상황이 너무 잦고 또 오래되면 사명감같은 극적인 마음따위 이미 싹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이미 무슨 대단한 슈바이처도 아닌게 뻔한데도

여전히 무슨 대단한 희생자인양 하는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모습은 정말로 역겹다.

 

 

전에 다른 동기가 GS를 돌던 중에 그때 어느 파트의 전공의랑 펠로우가 완전 막장이라서 환자 제대로 관리못한다고

그렇게 대충하다가 저번 언젠가는 환자 한명 죽였다고 그런 극단적인 얘기를 했는데

그 동기가 말한 환자와 해당 의사들에 대해 앞뒤 정황 들은거 하나도 없지만

난 충분히 그말이 사실일거라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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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병동 풍경

2015. 10. 30. 00:27 from S.paul 2015

어린이 환자들이 있는 병동에 있으면서 세태가 굉장히 변했다는 걸 실감한다.

뭐냐면..

아빠들이 보호자로 자주 등장하신다.

평일에 엄마나 할머니가 병상 지키시다가 주말되면 아빠로 바뀌는 건 좀 흔하고

아예 엄마아빠가 공평하게 간병하는 경우도 좀 있고

아빠만 주로 애를 보는 경우도 있고(이때는 우유먹고 기저귀가는 아기는 아니고 최소 어린이집은 다닐만큼 큰애들인 경우)

아예 아빠가 응급실이나 외래로 애 데리고 와서 입원부터 같이 시키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와 정말...

아빠가 집에서 놀아서인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입퇴원 기간을 정확히 알려고 하는 등 사정을 들어보면

아이간병이나 입퇴원 수속을 위해 회사에 연가를 내고 오는 경우도 꽤 있는 거 같다

옛날에는.. 글쎄 전혀 안그랬던 거 같은데 그래서 세상 참 변했다고.

 

근데 이런 사실을 놓고 날 돌아보면

엄마한테 동생이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바람에  아빠가 나 병원데리고 다니면서 약도 타고 치과도 보게 하고 그랬으니

그당시에 사람들이 봤을때 이런 우리 부녀 모습이 좀 이상해 보이기도 했을거 같긴 하다.

 

 

 

그리고 주사..

아기들 피검사는 내과병동에서처럼 마구 처방하기가 좀 부담스러운데

아기들 혈관을 잡는건 결코 쉽지도 않고 아기도 너무나 예민해져서

그래서 처음 한동안에는 입원한 아기들에대해 며칠씩 lab안내고 있어서 한소리 듣기도 했다.

그래서 보통은 fluid line이 자연스럽게 빠지거나 제대로 수액이 안들어갈 때 그래서 라인교체할 때

그틈에 피를, 검체를 채취하는 거다.

어휴 불쌍한 아기들....

지금은 스테이션에서 울부짖는 아기들 소리를 들어도 뭐 그다지 아무렇지 않은 정도가 되긴 했지만

저기 스테이션 안쪽의 처치실 앞에만 와도 울부짖는 아기를 보니

문득 저 공간이 과연 아기에게 어떤느낌일지

주변의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 혼자 곰곰 생각해봤는데

 

 옛날에 가족끼리 워터파크 갔을 때 돌아다니다 엄마를 놓쳐서 미아보호소에 붙들려갔던 적이 있다.

그때 침착한(이런걸 능실능실하다고 하지)  동생과는 달리 뭐 한소리만 들어도 삑 울어대는 나에게

거기 어떤 어른 사람이 입구에 있는 커다란 주사기를 들먹이며

'자꾸울면 저걸로 주사 한대 맞는다'라고 느껴지는 위협을 했지만

하나도 달래지지 않고 난 더 미친듯이 울부짖어댔고 얼마나 울어댔는지 모를 시점에 갑자기 우리엄마가 나타나선

그 무서운 주사기방에서 나와 동생을 데리고 나오셨더랬다.

 

그 미아보호소의 인상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거대한 내키보다 더 큰 하얀주사기 하나로만 남아있다.

인사이드아웃에서 주인공 무의식에 숨어있는, 거대한 피에로도 비슷한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처치실에 라인 달러 끌려들어오는 아기들에게는 내얼굴도 내말도 주사바늘로만 느껴지겠지 싶다.

 

 

 

 

 

 

 

세레브랄 팰시같은 선천적 문제나 후천적인 뇌손상 등으로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발달지연이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 대한 소아과 선생님들의 생각도 언뜻언뜻 들었다.

 

일단 집안에 그렇게 아픈 아이가 있으면

아픈 어른이 있는것 처럼 대개는 가족모두가 그 아이에게 매달려야 되고

그렇게 노력함에도 여러 이유로 감염에도 취약하고 에필렙시같은것도 쉽게 병발하고

병원 입원이 잦아지게 된다

물론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을 때도 집이라든가 시설에서 계속 보살핌이 필요하지.

'자라지 않는 아이' 펄벅 여사가 그런 책을 썼던가?

 

그렇게 기존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많이 아파져서 입원을 했는데

중환자실 들어갈만큼은 아프지 않아서 병동에서 엄마아빠가 직접 아이 병수발을 평소보다 더 힘들게 봐야되는 상황이 되면

'아이를 그냥 포기하고 싶다' 와 같은 말을 하는 부모들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나도 벌써 한번은 봤었고..

그래도 어느 정도 양가감정이 있는지 아이가 나아지면 나아지는대로 또 그 수척해 보이는 얼굴 위로 어느정도 화색이 돈다.

 참 복잡한 문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이런 복잡한 문제를 자꾸 자꾸 더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일까..에 대해서도 또 얘기를 들었는데

아기가 출생과정의 여러가지 문제로 이미 뇌손상을 입고

그래서 집중치료를 하면서 애를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시킬 수는 있지만,

그중에 정말 회복이 돼서 제대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몸으로 회복되는 아기는

참 드물다고 한다.

근데 언론에는 드물게 회복된 아이를 내세우며 의학의 승리인양 병원의 이름을 내걸고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선동하지만

회복된 아이 뒤에는 최소 10배는 넘는 더 많은 아이들이 그냥 숨만 억지로 쉬어지는 채로

중환자실에서 바보처럼 누워 살게 되는 거다.

그 아이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부모가 져야 하는 거고.

아이를 포기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시점에서

의사가 자기 욕심, 자기 명예, 자기 환자 건수를 위해서 과도한 진료로 억지로 연명을 시켜버리면

부모가, 그리고 당사자인 아기의 몸이 고통받게 되는 거라고.

 

이건 산부인과에서 태아치료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태어나기 어려운 아기들을 태어나게 하고

일단 아기가 세상에 나온 후에는 소아과에 책임을 떠넘기는 과정에서도 생기는 문제다

인턴때 소아중환자실 선생님들은 같은 병원의 산부인과

산과 담당교수님(언론에선 굉장히 유명한 분이다) 욕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못살고 태어날 애를 억지로 살려서 낳게해선 소아과에 마구잡이로 떠넘긴다고.

그런 드물고 위험한 시도를 하는 중에 간혹 잘 태어나서 잘 회복되는 경우가 드물게라도 있으면

그걸로 자기 명예는 올라가겠지만 그 외에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채 수년을 고통스럽게 가짜로 살게되는 아이들과

그 부모에 대해서는 엄청 죄를 짓는 짓이라고.

 

 

여기서 소아과 선생님들의 경험담을 들어보자면

이런 지체장애가 있는 아기가 수년간 앓으면서 병원 입퇴원 반복하고 그렇게 엄마가 고생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아이가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세상을 뜨게 되게되고

(아이가 죽는 건 물론 슬픈일이지만)

그러고 몇 개월 후 서류 등의 문제로 외래를 찾는 엄마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면

백이면 백, 몰라볼 정도로 얼굴이 좋아져있다고 한다.

자기인생을 찾게 되는 거라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고 소중하게 대하는 건 꼭 필요한 자세지만

그 와중에 누가 어떤 희생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사회정서가  그런 희생을 당연시하게끔 강요하는 건 아닌지

그런건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것 같다.

 

 

타성적으로 아이에 대한 부모로서의 의무를 당연시하면 학대와 같은 무서운 일도 자꾸 생길 수 있을 거다.

 

 

한번은 사고로 정신신체기능이 많아 떨어져서 재활치료 받으며 희망없이 지내던 아이가 심정지로 응급실에 왔는데

걔는 고작 1년전에 교통사고로 브레인헤모리지 생기고 수술도 하고 그래도 후유증으로 그렇게 된거라고 했고

부모가 1년간 아이 수발을 하느라 고생하긴 했을거다.

내원 당일 새벽에 애가 이상한 것(사망상태)이 확인돼서 병원에 온 거라

사망과정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원인이 불명확한 것이고 이런경우는 보통 오톱시를 해야 한다.

(정말 어린 아기들이 집에서 죽게되면 부모들은 물론 슬프겠지만 우선 경찰조사부터 받는다고 한다.당연한 일이긴하지만)

며칠전부터 앓던 폐렴으로 급사했을수도 있겠지만

엄마아빠가 아이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 시켰을수도 있으니깐.

그런데 엄마아빠가 왜 사망 원인 불명확하냐며 의료진들에게 따지고 들었고

헤모리지 부위가 위험했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사망할 가능성도 있었다 와 같은 (아이 사망을 앞에두고 하기엔) 분별있는 말로

주변 의료진들의 심정적인 의심을 더 가중시켰다.

의심이 가거나 말거나 병사가 맞거나 말거나 오톱시에서 확인되는 것 기준으로 사실은 정해지기 마련이고

(이런 일에 빠삭한 응급의학과 선생님들 말에 의하면)

오톱시 결과 자연사나 병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오면

아마도 아이앞으로 대개는 이미 들어가고 있을 보험금 등을 타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고

그게 아니면 보험금 타고 못타고가 아니라 경찰서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는 문제가된다.

그냥 내 입장에선 아이 죽은지 3,4시간밖에 안된 시점에서의 엄마아빠의 그 분별있는 말이 너무 너무너무너무 이상하게 들려서,,,

죽은 아이가 학대를 받았다거나 살해당했다거나 확정할 순 없지만

그런 정황에 대해 언제나 생각해야 되고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만큼

보호자의 힘들 상황도 우리 모두가 미리 알아채줘야지.

 

 

 

 

소아과 생활을 하다보니 

18살짜리에게도 무심코 아기라고 하게 되고

보호자에게도 무심코 엄마, 아빠라고 부르게 돼서

말하다가도 문득문득 놀란다.

글에도 그래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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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15. 23:31 from S.paul 2015

.

 

 

 

 

은총이 자장가 음악을 고르다가 워털루 브릿지가 생각나서 오랜만에 다시봤다

로버트 테일러 정말 잘생겼다.

저 시대에 전쟁영화는 많았던 듯 하지만 저렇게 군인모습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로버트 테일러 밖에 없는 거 같다.

 

 

 

 

 

암으로 왜 죽게 되는가...

폐암으론 왜 죽게 되는가...어떻게 죽게 되는가... 라든가

질병을 병태생리적으로 보고 치료위주로 배우다보면 그런걸 구체적으로 생각할 일이 별로 없는데

병동에서 환자를 직접 보고 불편할 걸 마주할 때는 결국 그런 실질적인 문제를 자꾸 생각해야 된다.

 

암 증식 때문에 크게 출혈을 일으킨다거나 항암치료과정에서 면역력이 더 떨어진다거나

그렇게 갑자기 위태로워져서 사망하게 되는 경우도 많겠지만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있는 상태의 환자들이라면

암세포 자체에서 기인하는 기전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로 몸이 점차 카켁식해지면서 그렇게 점차 생명력이 소진된다.

일반적인 암이 그런거고

폐암은... 호흡통로를 막지 않는한 증상이 초기에 거의 없을 것이지만, 진행하여 암세포가 폐를 덮게되면

질식사를 하게 된다.

 

인턴 때 암병동 돌 때 새벽에 응급샘플 하러간 환자가 숨을 헐떡이며 가족들에게 '내가 이제 곧 죽는거냐고'보호자에게 매달리며 초조하게 있었는데 4시간 뒤에 임종했다.

폐암 투병하다가 호흡곤란이 심해져 완화병동 입원을 위해 새벽에 응급실에 왔던 환자는 직접 하스피스 동의서까지 작성했는데 2시간뒤에 병동 올라가서 바로 호흡곤란심해져서 1시간 만에 임종했다.

췌장암이 폐에 전이돼서 하스피스로 왔던 환자는 한달동안 신체증상이나 혈액검사상 이상은 하나도 없이 호흡곤란이 조금씩 조금씩 심해지다가 마지막까지 의식과 영양상태가 다 좋았는데 하룻밤만에 임종했다.

 

숨이 가쁘게 되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그래서 더 숨이 가쁘게 된다.

폐암이면서 의식이 명료한 경우가(최소한 내가 본 경우에는)많아서 환자가 호흡곤란의 불안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암때문에 전신상태가 불량해지고 점차 의식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임종을 하게 되는건 어쩌면 고통이 더 적을수도 있는데

그에 비해 의식이 있을 때 질식의 고통은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호흡곤란은 진통제로 조절하고, 조절되지 않는 시점이 오면 그래서 진정제로 환자를 재운다.

하스피스 배우기로는 그랬다.

진정제가 호흡부전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이미 그런걸 걱정할 시기는 지났고

질식의 고통을 느끼며 깨어있는 것보다는 잠을 자는게 훨씬 나으니까.

 

처음 하스피스로 의뢰됐다가 환자가 거부를 하는 바람에 그대로 풀모에서 보존적 치료만 받다가 임종한 환자가 있다.

풀모 파견 가기 직전 하스피스로 의뢰돼서 한번 면담을 했는데

풀모 파견 간 후 거기서 3주만에 임종하신 걸 보게된거다.

캔서환자에 대해 케모를 하고 관리를 하는 건 풀모에서 하는 일이지만 \

end stage로 더이상 치료를 할 수 없는 환자의 증상 관리는 별로다.

호흡곤란을 충분하게 진통제로 조절해주지 못한 것 같고

마지막 시기가 다가와서 진정제가 투여되는게 나을 시점이라고 생각될 때가 돼서도

호흡곤란에 대해 진정제로 안정시킨다는 개념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풀모에서 잘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일을 잘 하지 않으니깐 별로 관심이 없는 거일거다.

뭔가를 배우러 파견간 내 입장에서 감놔라배놔라 할수는 없었지만 회진돌 때마다 숨이 가빠 쪼그리고 있는 그분이 안타까웠다.

휴가를 가느라 그 분 마지막은 못봤지만 휴가나가기 직전 참다참다가 담당 선생님한테

진통제 용량 더 올리면 안되냐고, 하스피스에서는 진정제로 환자 재우기도 한다고 말은 해줬다.

배우러 온 내 입장에서 그런말을 하는건 굉장히 부담스럽고 또 실례가 되는 일이다.

그 환자는 결국 질식사 했을 거다. 마지막 수일동안 의식상태가 많이 흐려졌기만을 바랄뿐이다.

 

환자가 마지막 시기에 어떤 개별적 고통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그걸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타인의 고통의 전혀 체감이 안될수도 있다. 그냥 뭔가 객관적인 것들만 보일수가 있다고.

숨을 헐떡이고 있지만 산소포화도는 그래도 tolerable하니깐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는게

중환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입장이 아닐까.

물에 빠지든가 해서 한번쯤은 질식의 고통을 느껴봐야지 숨이 가빠서 죽는게 어떤건지

좀 이해하고 고통을 덜어줄 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듯하다.

 

아무튼 의료가 많은 걸 해결해 주고 있는 듯 느껴지는 이 시대에도

정작 내 마지막 순간은 누구의 도움도 못받고 최악의 고통을 느끼며 임종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고

미리 좀 준비를 했으면싶다.

 

정말 돌이킬수 없는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면

꼭 하스피스가 아니더라도 통증이나 임종관리를 해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할 거 같다.

치료가 아니라 케어를 하는 것도 중요한 거라고.

 

 

 

 

로버트 테일러는 엄청 골초로 결국 폐암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그 시기에 임종환자에 대한 관리수준이 얼마나 개선돼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영화를 남기고도

그러고도 그 사람은 혼자서 질식사(옆에 사람이 있어도 질식은 혼자하는 것이다)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잠시동안만이지만 한없이 울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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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이알

2015. 9. 15. 21:54 from S.paul 2015

이알에서 어린이 초진을 해 보긴 했다

강능에서 이알 근무할 때 초진은 인턴이 무조건 하는 거라서

어린이들 오면 히스토리라든가 기본적인 신체검진은 다 하고 소아과 선생님들한테 노티를 하긴 했다.

 

당시에는 내가 근무 당사자다 보니 무조건 환자 안오기만을 바라고 있던 참이라서

왠지 언제나 환자가 많다는 느낌만 있었지

강릉에서도 촌구석에 있는 병원이라 밤에 어린이 환자는 거의 오지 않는 편이란 건 사실 잘 몰랐다.

 

서울에선 소아이알이 따로 분리돼 있었고

딱 그 턴을 도는 인턴이 아니면 소아이알에 상주하는 건 아니지만

오에스를 돌면서 골절 환아 뼈맞추는 것 때문에 소아이알도 꽤 드나들었는데

당직서면 평균 2,3번 정도는 연락을 받았던 거 같다.밤에.

그러고다니면서 대충 흝어보기에 소아이알은 그닥 바빠 보이지 않았는데

그건 나름 3차 병원이고 그 동네에서 접근성이 딱 좋게 도로가 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뭐 그런 이유에서 의외로 한산했던 게 아녔나 싶다.

 

 

 

 

소아과는 필수라서 어쨌든 근무를 하긴 해야 하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나 힘들다.

병동 로딩보다는 응급실 당직을 설 때, 그러니까 밤에 응급실 근무를 해야 해서.

이건 뭐... 응급실이기도 하면서 소아과 외래같기도 해서 

소아과 외래진료를 야간에 하면서 응급실 운영도 같이 하는 느낌의 로딩이다.

 

밤에 이렇게 애들이 많이 아픈 줄은 정말로 몰랐다.

직접 어린이 환자 초진을 보던 강능은 촌구석이라 환자가 별로 없었던 거고

가끔 들러본 서울 소아이알이 한산했던 건 3차의료기관이라서 그런거고

난 그래서 애들도 '어른처럼' 밤에는 그냥 대부분 잠 잘자고, 진짜로 응급인 경우에만 응급실을 찾는줄 알았다고.

근데 그게 아니다.

 

요즘 별빛 어린이병원인가 달빛이던가  하는 야간에 소아 환자 보는 병원에 대해서

정부정책으로도 추진을 하는 것 같고 실제로 그런병원이 꽤 운영되는 거 같은데

소아환자는 정말 밤에도 참 많더라고.

 

 

이알이라기보다는 소아과외래같다는 느낌대로

대부분은 해열제 좀 주고, 수액 좀 맞고 하면 되는 환아가 대부분이지만

그렇게 멀쩡하다보니 불평불만을 할 여유도 많아서 엄청 소란스럽고 신경쓰일 일이 많다.

한때나마 소아과를 꿈꿨는데, 엄마아빠들을 상대하다보니 내가 얼마나 무서운 구렁텅이를 간신히 피한건지 이제서야 알겠다.

 

잘 자다가 조금전부터 입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애 데려왔다는 엄마를 보면서

그간 밤에 자주 깨는 우리 은총이를 소홀하게 보살핀건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봤고

꽤 오래 아토피를 앓아서 두꺼워진 피부가 확연한 아이의 가려움증에 대해 왜

당장 몇분전에 두드러기 돋은 아이들의 가려움 가라앉히듯이 확 못 가라앉히냐고 따지는 부모앞에선

몇개월간에 나타날법한 치료효과를 몇분만에 압축시켜 실행하지 못하는 내 무능함을 자책했다.

 

 

밤에 소아이알 문턱이 얼마나 낮은지는 응급진료비가 제외되는 고열의 기준이 고작 38도인것만 봐도 알수 있다.

최소한 해열제 먹여야 되는 39도까지는 올라야 좀 응급아닌가.

그냥 외래 찾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새벽에 응급실에 와서는..

와서 그냥 외래 진료처럼 보고 가는 건.. 조금만 덜 피곤한 날이면 체력이 받쳐주는 날이면

그래, 이해할 수는 있다.

바쁜 엄마아빠들, 낮에 아기 아파도 병원 제대로 못데려갔다가 저녁에야 밤에야 겨우 병원 데리고 오는 걸테니까.

 

 

그래도 이런 '외래'환자들에 비해 진짜 응급환자, 중환 환아와 환아부모들이 참으로 대비가 되기는 한다.

 

수족구로 아기가 일주일 앓을 동안은 엄마아빠도 꼼짝없이 같이 밤을 새면서 아기 보채는데 시달리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하지만 악을 쓰며 울어대는 수족구아기를 새벽에 들쳐업고 와서는 뭔가 더 해줄수있는게 없냐며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욕을 하는 수족구아기아빠 건너편에서

태어난지 9일만에 38.5도, 분명 급속도로 셉틱해지고 있는 상태일 아기를 안아들고 이알을 찾은 엄마는

애 놀랄까봐 이렇다 저렇다 큰소리로 불평도 못하고, 작은 가슴을 헐떡이는 아기를 어서 중환자실로 올려주기만을 기다린다.

 

열성경련은 이미 다 지나가고, 어른들의 호들갑에 더 놀란 아기가 미친듯이 울어대고 있을 뿐인데

'우리애가 경련을 하는데 이알에선 아무것도 안해주냐'며

모든 의료인력이 자기 아이한테 집중안해주면 당장 고소라도 할듯 기세세등등하게 따지는 엄마도 있지만

출생시부터 하고 있는 기관튜브때문에 소리조차 안나는 기침을, 얘가 기침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가슴 움직임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항생제 처방을 기다리는 엄마도 있는 것이다.

 

그래 이해할 수 있다. 몰라서 그런거고 애가 걱정돼서 그런거겠지.

그러니까 뭔가 대국민 홍보라도 좀 하면 좋겠다.

애들 39도 넘는 열도 일단은 해열제 먹이면 되고

해열제는 1,2시간은 지나야 효과가 있고

열성경련은 대부분은 큰 문제가 없고 안정하면 되고

수족구 있으면 밤에 애가 잠도 안자고 울고 불고 난리치는 거 당연하다고

누가 좀 모두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옛날에 식구들이 더불어 함께 살고 아기들도 많고 하던 시절에는

아기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질환들에 대해 굳이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어른이기만 하면 경험이 많았고

그래서 훨씬 더 차분하게 대처했을 듯하다.

 

나만해도 아기 낳기 전까지는 입원이라곤 해본적이 없고 병원 진찰도 치과말고는 거의 가본적이 없는데

막상 우리 은총이를  보면, 할머니가 낮에 주구장창 소아과를 데리고 다니고 있으니

우리 사회 모두가 어린이가 아픈것에 대해 잘 모르고 그래서 더 예민한 게 아닐까 싶다.

 

 

애들이 장염이나 수막염으로 토하고 설사하고 하면서 아무것도 못먹고 며칠째 시들어가던게

수액만 맞으면 금방 회복되는 걸 보고있자니

옛날에 많은 아기들이 고작 이런 쉬운 처치를 못받아서 죽어가기도 했겠지 하는 슬픈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의료서비스가 부족한 나라의 아이들이 못먹고 토하고 설사하고 하다가도

그냥 그렇게 앓다가 스스로 나아가고, 또 그렇게 스스로 낫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을테니까

그래서 애가 고작 하루 안먹고 토한것 가지고도 세상이 망한듯이 걱정하며

병원에 비용과 시간을 기꺼이 지불하려는 부모들의 넘치는 애정이

정말 절박한 의료서비스 한토막이 필요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좀 분배될 수 있다면

그게 훨씬 더 공평한 나눔이 아닐까 싶고

애를 걱정하는 부모의 애틋한 마음에 대해서도 '자기애만 걱정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굉장히 냉정한 마음이 돼버리기도 한다.

그냥 좀 그렇게 된다.

 

 

처음에 파견 오기전까지 걱정하던 것에 비하면 밤을 새는 것도 소아환자를 보는 것도 어렵지만 그냥그냥 해나갈만은하다.

하지만 고비는 추석연휴.

 

그것만 넘으면 어떻게 될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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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 컨트롤

2015. 5. 26. 01:21 from S.paul 2015

 

2013년 7월

밤 12시가 거의 다 돼서 진통이 5분간격으로 오기 시작해서

부산의 다니던 병원으로 새벽에 달려갔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내 통증은 내가 조절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경막외 마취'였나 뭐 그런 무통시술에 대한 동의서가 좀 불쾌했었다.

이런거 할 전혀 생각없지만, 만약을 대비해 임시로 받아두는 거라니 그냥 대충 사인해주고

난 분만실에서 혼자 진통을 견디기 시작했는데

 

죽을 것 같은 통증을 10점, 하나도 안아픈 걸 0점이라고 할 때 당신의 통증은 몇점?

이라고 질문할 때의 죽을 것 같은 통증 중에는

출산과정 중의 진통도 포함된다고, 그렇게 아픈 거라고는 했다.

한편 지주막하 출혈의 '도끼로 머리를 내리찍는 것 같은 통증'이란 표현도 있다.

내가 느낀 진통은 이게 10점인지, 뼈가 갈라지는 것 같은 통증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통의 횟수가 정말 끝도 없이 반복되고

그렇게 매번 반복되는 통증의 끝은 마치 내가 사라지는 듯 아득한 기분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정신차려보면 겨우 1분밖에 안 지나 있는 그런

도무지 끝이날 것 같지 않아 무서운 그런거였다.

자궁 문을 열리게 하기 위한 자궁의 수축이 반복되고 있을 뿐일건데, 그런 내장성통증에 불과한 진통.

 

그렇게 1분을 백만년처럼 느끼며 혼자 분만실에서 발버둥치며 참다참다가

진통제는 대체 언제 놔주냐고 물어봤더니

무통을 안하고 싶다고 해서 아예 경막외 시술도 안한상태라고

경막외 시술 해주실 선생님 오시려면 한 3,40분은 기다려야 된다는 절망적인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다시 3,40분,, 그러니깐 백만 곱하기 백만큼의 시간을 더 견뎠다.

그러고 겨우 경막외 시술 후 처음 진통제가 들어가자 마자.

 

천국임.

 

잠깐씩 잠도 자면서 자궁 경관이 충분히 열리기를 기다렸음.

경관 완전개대 후에 카디날 무브먼트를 하면서 몸밖으로 아기가빠져나오는 과정은 정말 수월했음

결과적으로 아기도 산모도 다 건강했음.

 

분만전까지는 무통에 대해 눈꼽만큼도 생각안했기 때문에 아는게 하나도 없었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에 얼른 무통분만에 대해 검색을 했고

프랑스에는 98프로가 무통시술을 한다면서

어떤 경로로든 아기를 안전하게 산모에게 안겨주는게 최선의 목표라고

그런 기사를 보면서 통증에 굴복한 스스로를 위안하고 달랬다.

 

 

 

 

하스피스에서 통증 조절이 1번 목표라는 것에 대해 배우고 또 환자들을 보면서

내가 통증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협한 생각들을 많이 되돌아보고 있다.

 

인턴 때 소아과에서

신경모세포종으로 투병을 하다 상태가 악화돼서 치료를 포기하고 지방의 하스피스병동으로 전원가게 된 6살 어린이.

상태가 불안정해서 동행을 했었는데

그때 아기는 속효성 진통제 주사기를 달고 있었다.

아플 때마다 눌러서 페인컨트롤을 하는 건데

최소 10분이후에 누르라고 지시를 받았지만 아기가 너무 아파해서

그 10분조차 버티지 못하고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고 페인 쇼크 때문인지 암 때문인지 눈까지 뒤집히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정말 눈물나게 가슴 아팠다.

그때는 아기의 통증이 제대로 조절 안되는게 말기암의 어쩔수 없는 고통이라 생각하고

내 무기력함을 탓하며 눈물 안보이려고 애쓰는 것 밖에는 하나도 해줄게 없었는데

이제와 하스피스의 페인컨트롤을 겪은 후 되돌아보면

그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아기에 대한 소극적인 페인컨트롤과 잦은 속효성 진통제 사용때문에 진통제에대한 내성이 생겨서

그래서 아기의 마지막이 더고통스러워졌으리라는 게 지금의 입장이라고.

트리돌에 잘 들으니깐  전원갈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트리돌주사부터 놔주게끔 잘 말해달라고 부탁하던

아기 보호자의 얘기까지 더해지면 정말..

의료진의 소극적 통증조절 때문에 아기의 마지막만 불쌍해진거라고밖에 달리 볼수가 없다.

 

그래서.

약물에 대한 불신, 중독에 대한 두려움, 통증은 아무리해도 결국 함께갈 수밖에 없다는 편견 등등이

환자나 보호자로 하여금 자기통증이 컨트롤되게끔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걸 주저하게만들고

통증 조절과 같은 대증치료에 대해서는 별로 집중할 필요가 없는 수련과정이

환자의 고통 자체에 대해서는 무능한 의사를 양산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지난 한달간의 하스피스 병동 생활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학교 병원에서는 종양내과에서 하스피스를 같이 하고 있었고

또 파겨나간 외부병원에서는 에프엠에서 하스피스를 보고 있는 등

분야의 정체성을 잘 모르겠어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성모병원에서는 에프엠이 하스피스를 맡는 거라서

그래서 예상치 못하게 페인컨트롤에 대해 트레이닝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하스피스라서 환자에게 덜 적극적이게 되는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내가 하는일에 대해 만족하는 쪽이 더 크다.

 

릴케는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어봐야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인턴 1년동안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도록 놓아드렸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 본'적은 한번도 없다.

마지막 호흡까지 사람의 손, 의사의 손에서 목숨을 주무르려 했고

그건 거의 매번 사람이 지는 걸로 끝났으며

그런 전투의 상처는 일생에 오직 한번뿐인 '임종'을 맞는 환자에게

지독한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육체는 물론이거니와 정신, 영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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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15. 5. 26. 00:19 from S.paul 2015

옛날에 학부 때 남자친구랑 사귄지 얼마안돼서 춘천에, 중도로 놀러를 갔었는데

동아리 아카데미 활동으로 이미 한번 다녀와본적이 있는 곳이었고

당시 역마살이 잔뜩 낀 선배들의 어마한 내공덕에

외지인, 관광객이 중도로 들어가는 정규 배편이 아닌

주민용 루트를 활용해서 섬을 드나드는 법을 알고됐었다.

그래서 남자친구랑 놀러갔을 때도 춘천역에서 내려 주민용 배를 타는 길을 통해 중도로 들어가서 재미나게 놀았다.

낮에 역에서 선착장으로 갈 때는 뭐가 이상한지 잘 몰랐었는데

저녁 6,7시쯤 다시 그 주민용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서 역쪽으로 걸어가는 길에서야 보니

우리가 낮에 지나왔던 그 길이  춘천의 윤락가였던 거였다.

홍등가라고 해야되나 집창촌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예전에 한번도 그런곳을 본적이 없어도 딱보면 여기가 바로 그런데구나 하고 알게되는

언니들이 헐벗은 모습으로 쇼윈도같은데 앉아있고, 조명도 야시시한 빨간색이고

 

그 당황스런 상황은 빠른걸음으로 그곳을 얼른 통과해 지나가는 걸로 어찌어찌 넘겼지만

 

사실 난 대학 입학 후 우리학교 근처에 있는 청량리역에 대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동해안은 물론 부산까지도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역이 있다는게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에가거나 어딘가 놀러갈 때 청량리역을 굳이 이용하며,

부산 청량리간 새벽기차나 경북내륙을 지나는 중앙선 통일호 열차등을 굳이 이용하며,

기차를 타는바람에 빙빙둘러서 천천히 가게 되는 시간낭비에 대한 생각보다는

기차여행의 여정도 도착지에 대한 기대감에 섞여들어서 그자체로 기차여행의 만족감이 채워지는

기분을 참 좋아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름자체가 마치 고유명사처럼 윤락가를 지칭하는 것만큼 유명하던 탓에

혹시 실수로 청량리역 주변을 다니다가 근처에 있는 집창촌으로 길을 잘못들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했었는데

조심하려고 지도도 열심히 보면서 대체 어디쯤에 그런골목이 붙어있을까

미리 알아두려고 한동안 애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걸 옆에 누군가에게 따로 물어볼수도 없었고

물어본다한들 제대로 말해주며 아는 티를 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리도 없을 것이긴 했다.

 

 

주 병원 티오가 여기 청량리에 있는 병원으로 결정이 되고 난 후

이미 학부 때 지나다니면서 자주 봐서 아는 병원이긴 했지만

병원 구경 명목으로 짬을내서 한번 미리 찾아와본 이유도 

실은 병원주변에 조성돼 있을 집창촌 때문이었다.

미리 조심해서 어색한 상황이 안생기게끔 해야지하는 마음에.

 

근데 3개월간 일하면서 정말 신기한게

다들 아무렇지 않게 그 '영업중'인 골목앞을 지나다닌다는 점이었다.

단지, 가야할곳까지 갈 때 가장 빠른 길이라는 이유로

동행자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다니는 것이다.

밥먹으러 다닐 때도 지나다니고

의국 시장보러 다닐 때도 지나다니고.

지나다니는 사람만 이상한 게 아니고

거기 언니들은 정오도 지나지 않은 대낮부터 영업을 시작하는건지 불을 켜고 앉아 있으니

이건 참 누가 누구한테 이상하다고 지적을 해야되는지도 모를지경이었다. 

한참을 혼자 이상한 위화감에 불편해 하다가 하루는 옆에 다른 전공의 쌤한테 물어봤더니

응급실에 오는 환자중에 분명히 엄마도 있고 언니동생도 있는데

막상 전화해서 오라고 하면 진짜 언니, 진짜 엄마 아니라고 하는 환자들 보면

아마 이쪽 계통에 종사.. 하는 환자들일거라고

뭐 그런 이야기를 (자기도 처음 파견왔을 땐 이 상황이 완전 어색했는데 이제는 뭐 아무러지 않다며) 해줬다.

 

 

그래서 내 환자가 될수도 있는 그 언니들, 환자가 될 확률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그 언니들에 대해

대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 묻는다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뭔가를 팔아야만 하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일이라는 걸 알고난 다음부턴

몸을 파는 거나 감정을 파는 거나 자존감을 파는 거나 뭐 다 결국엔 비슷한 거라는 생각을 계속 하긴 했지만

그래도 통상의 윤리기준을 들이밀면서 말한다면

그 매매들이 다 똑같은 매매는 당연히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난 그냥...

전에 은총이가 병원 근처에 놀러왔을때

백화점 주차장 쪽에서 병원으로 가던 길에 또 너무 당황스럽게 지나치게된

그 영업하는 언니들 가게 앞에서 어떤 언니가 우리 은총이를 보고 막 귀엽다며

손을 흔드는 걸 보고

그때 '아니 당신같은 사람이 어떻게 우리 아기한테 아는체를 하느냐'고 버럭 화가 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은총아 이모야 한테 안녕하세요 바이바이 해야지' 하고 아기 이쁜짓 시키는 엄마노릇도 하지 않았고

그냥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정말로 몰라 헛웃음만 나왔다는 것.

내입장은 딱 그만큼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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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