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

2016. 5. 13. 01:42 from S.paul 2015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내 병만 고쳐달라고, 정말이지 돈쓸 작정을 하는 환자들이 가는 병원도 있지만

 

내가 있던 병원은 가슴 엑스선에서 보이는 작은 덩어리가 혹시나 암인지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검사,

저선량 씨티 한번 찍는것도 못하겠다고 하는 환자도 있었다.

며칠 입원기간동안 정말 최소한의 검사와 치료만 하는 동안 나온 20만원 정도의 입원비도 부담스럽다는 환자에게

'암인게 확인되면 그나마 진료비용 5%만 부담하면 된다'라는 말을 하면서 검사를 유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암 진단되는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아무튼 서혜부 hernia 수술을 하려고 입원한 L 할아버지도 굉장히 가난한 사람이었다.

수술이 끝나도 한달정도는 배에 힘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설명했더니

하는 일이 힘을 좀 써야 되는 일인데 일을 못하면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그렇게 입원하면서부터 벌써 수술비문제로 사회사업에 의뢰해서 진료비를 마련했던 환자다.

 

근데 hernia수술도중에 복부 대동맥류가 발견됐고 이게 바로 문제의 시작이었다.

 

5센치였나 6센치였나..

70대 할아버지가 큰 불편없이 지내오셨는데 저정도에서 꼭 수술을 해야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결과가 나빴으니깐 차라리 안하는게 나았을거라고 지금 말하는 건 쉽지만

환자를 앞에두고 의사들은 보통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컨센서스에 맞춰서 의사결정을 하게 마련이고

그래서 결국 그 대동맥류 수술을 하게 된 거다

 

GS에서 나는 DRG적용되는 간단한 수술환자만 맡게 돼 있었으므로

hernia수술이 끝나고 퇴원한 L 할아버지가 근 한달간 복부대동맥류수술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재입원했을 때는

더이상 내 담당 환자는 아니었다.

 

난 그냥 대동맥류 수술 후 회복중이던 L할아버지가

수술 며칠뒤 갑자기 stroke이 와서 반신부전마비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얘기가 컨퍼런스 시간에 나오자마자 담당교수가 '내잘못 아냐, 나랑관계없어'라고 말하는 모습을 봤고

그리고  그날바로 L할아버지가 NS로 전과되는 상황을 봤을 뿐이다.

 

L할아버지는 사실 stroke이 오기 며칠 전 수술부위의 출혈이 있어서 간단하게나마 재수술을 했고,

출혈이 반복될까봐 항혈소판, 항혈전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게 뇌혈관의 stroke 발생과 얼마나 관계가 있을지, 혹은 그정도의 risk는 어쩔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건지

그런부분은 내가 정확히 모르겠다.

 

담당교수가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잘못해서 L할아버지의 뇌혈관 어딘가가 막혔을 것이다.. 라는 얘기를 하려는건 아니다

그저 어떤 식의 문제든 환자에게 문제가 조금 생겼다고 주치의가 손을 싹 빼고 얼른 해당과로 넘겨버리게 된 후에

그 환자가 어떤식으로 붕 떠버리게 되는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NS 로 전과돼서 stroke에 대해 뭔가 수술인가 시술을 받고 ICU로 전실되셨고

그리고 회진때문에 ICU 지나다니다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인사하던 나에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시는 것 까지는 봤는데

 

그래, 운이 없어서 뇌졸중이 생겼지만 그래도 회복은 되시겠지 라고 생각했고

나는 GS를 떴고 한동안 L할아버지는 내 시야에서 떠나있었다.

 

 그러다 얼마전에 문득 생각이 나서 외래 잘 다니시나 싶어 기록을 확인해봤더니

세상에, NS전과간 후 한두달 사이에 이미 돌아가셨다고한다.

 

그러고서야 그동안의 경과가 대체 어찌된건지 봤더니

stroke치료하던 중에 폐렴이 생겼고 그래서 한동안 RM이랑 풀모, 카디오 등등

이과저과 전전하며 전과를 반복하다가 결국 임종하신거라고,

만성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나빠지게 되는 것 같은 코스를 두달사이에 겪다가 돌아가신거다.

서혜부에 탈장이 되는 불편말고는 원래 힘쓰는일로 생계유지하며 살던 건강하던 분이

갑자기 팔다리 제대로 못쓰게 돼서 중환자실에 누워지내다가

마치 몇년을 앓다가 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가버리셨다.

 

 

 

NS의사들에게 L할아버지의 인상은 그저 와상상태의 중환 중 한명일 뿐이었을 것이다.

원래의 건강하던 모습을 본 의사들이 없으니깐.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한 GS교수는 NS로 전과된 후 결코 환자회진을 하지 않았을 거다.

환자가 의사얼굴을 보면 '왜 수술 하고 나서 이렇게 됐냐'는 말을 할까봐 무서울테니까

할아버지는 가난한 사람이었고, 보호자도 할머니 한분 정도밖에 안계셨다.

의사들입장에서는 왜이렇게 됐느냐로 추궁할 가능성이 낮은 환자에 대해서는

분명히 마음이 짐이 줄게 마련이고, 그만큼 환자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난 GS의 가장 원로교수가, 손톱만큼이라도 돈좀 있고 백도 있는 VIP환자들은 자기 손에 붙들고 놓지 않으려하고

그에 반해 아무것도 없는 그러니깐 플레인 환자들에 대해서는 뒤도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환자를 보면서도 확인했고 병동간호사들 소문으로도 재차 확인했다

 

 

환자의 경과와 예후는 의사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에 달려있다.

 

 

 

과에 의사가 부족해서 힘에 부쳐서 환자에게 관심 가질 여유가 없다는 말도 할수 있을테고

극적인 상황이 너무 잦고 또 오래되면 사명감같은 극적인 마음따위 이미 싹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이미 무슨 대단한 슈바이처도 아닌게 뻔한데도

여전히 무슨 대단한 희생자인양 하는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모습은 정말로 역겹다.

 

 

전에 다른 동기가 GS를 돌던 중에 그때 어느 파트의 전공의랑 펠로우가 완전 막장이라서 환자 제대로 관리못한다고

그렇게 대충하다가 저번 언젠가는 환자 한명 죽였다고 그런 극단적인 얘기를 했는데

그 동기가 말한 환자와 해당 의사들에 대해 앞뒤 정황 들은거 하나도 없지만

난 충분히 그말이 사실일거라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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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