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이알

2015. 9. 15. 21:54 from S.paul 2015

이알에서 어린이 초진을 해 보긴 했다

강능에서 이알 근무할 때 초진은 인턴이 무조건 하는 거라서

어린이들 오면 히스토리라든가 기본적인 신체검진은 다 하고 소아과 선생님들한테 노티를 하긴 했다.

 

당시에는 내가 근무 당사자다 보니 무조건 환자 안오기만을 바라고 있던 참이라서

왠지 언제나 환자가 많다는 느낌만 있었지

강릉에서도 촌구석에 있는 병원이라 밤에 어린이 환자는 거의 오지 않는 편이란 건 사실 잘 몰랐다.

 

서울에선 소아이알이 따로 분리돼 있었고

딱 그 턴을 도는 인턴이 아니면 소아이알에 상주하는 건 아니지만

오에스를 돌면서 골절 환아 뼈맞추는 것 때문에 소아이알도 꽤 드나들었는데

당직서면 평균 2,3번 정도는 연락을 받았던 거 같다.밤에.

그러고다니면서 대충 흝어보기에 소아이알은 그닥 바빠 보이지 않았는데

그건 나름 3차 병원이고 그 동네에서 접근성이 딱 좋게 도로가 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뭐 그런 이유에서 의외로 한산했던 게 아녔나 싶다.

 

 

 

 

소아과는 필수라서 어쨌든 근무를 하긴 해야 하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나 힘들다.

병동 로딩보다는 응급실 당직을 설 때, 그러니까 밤에 응급실 근무를 해야 해서.

이건 뭐... 응급실이기도 하면서 소아과 외래같기도 해서 

소아과 외래진료를 야간에 하면서 응급실 운영도 같이 하는 느낌의 로딩이다.

 

밤에 이렇게 애들이 많이 아픈 줄은 정말로 몰랐다.

직접 어린이 환자 초진을 보던 강능은 촌구석이라 환자가 별로 없었던 거고

가끔 들러본 서울 소아이알이 한산했던 건 3차의료기관이라서 그런거고

난 그래서 애들도 '어른처럼' 밤에는 그냥 대부분 잠 잘자고, 진짜로 응급인 경우에만 응급실을 찾는줄 알았다고.

근데 그게 아니다.

 

요즘 별빛 어린이병원인가 달빛이던가  하는 야간에 소아 환자 보는 병원에 대해서

정부정책으로도 추진을 하는 것 같고 실제로 그런병원이 꽤 운영되는 거 같은데

소아환자는 정말 밤에도 참 많더라고.

 

 

이알이라기보다는 소아과외래같다는 느낌대로

대부분은 해열제 좀 주고, 수액 좀 맞고 하면 되는 환아가 대부분이지만

그렇게 멀쩡하다보니 불평불만을 할 여유도 많아서 엄청 소란스럽고 신경쓰일 일이 많다.

한때나마 소아과를 꿈꿨는데, 엄마아빠들을 상대하다보니 내가 얼마나 무서운 구렁텅이를 간신히 피한건지 이제서야 알겠다.

 

잘 자다가 조금전부터 입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애 데려왔다는 엄마를 보면서

그간 밤에 자주 깨는 우리 은총이를 소홀하게 보살핀건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봤고

꽤 오래 아토피를 앓아서 두꺼워진 피부가 확연한 아이의 가려움증에 대해 왜

당장 몇분전에 두드러기 돋은 아이들의 가려움 가라앉히듯이 확 못 가라앉히냐고 따지는 부모앞에선

몇개월간에 나타날법한 치료효과를 몇분만에 압축시켜 실행하지 못하는 내 무능함을 자책했다.

 

 

밤에 소아이알 문턱이 얼마나 낮은지는 응급진료비가 제외되는 고열의 기준이 고작 38도인것만 봐도 알수 있다.

최소한 해열제 먹여야 되는 39도까지는 올라야 좀 응급아닌가.

그냥 외래 찾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새벽에 응급실에 와서는..

와서 그냥 외래 진료처럼 보고 가는 건.. 조금만 덜 피곤한 날이면 체력이 받쳐주는 날이면

그래, 이해할 수는 있다.

바쁜 엄마아빠들, 낮에 아기 아파도 병원 제대로 못데려갔다가 저녁에야 밤에야 겨우 병원 데리고 오는 걸테니까.

 

 

그래도 이런 '외래'환자들에 비해 진짜 응급환자, 중환 환아와 환아부모들이 참으로 대비가 되기는 한다.

 

수족구로 아기가 일주일 앓을 동안은 엄마아빠도 꼼짝없이 같이 밤을 새면서 아기 보채는데 시달리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하지만 악을 쓰며 울어대는 수족구아기를 새벽에 들쳐업고 와서는 뭔가 더 해줄수있는게 없냐며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욕을 하는 수족구아기아빠 건너편에서

태어난지 9일만에 38.5도, 분명 급속도로 셉틱해지고 있는 상태일 아기를 안아들고 이알을 찾은 엄마는

애 놀랄까봐 이렇다 저렇다 큰소리로 불평도 못하고, 작은 가슴을 헐떡이는 아기를 어서 중환자실로 올려주기만을 기다린다.

 

열성경련은 이미 다 지나가고, 어른들의 호들갑에 더 놀란 아기가 미친듯이 울어대고 있을 뿐인데

'우리애가 경련을 하는데 이알에선 아무것도 안해주냐'며

모든 의료인력이 자기 아이한테 집중안해주면 당장 고소라도 할듯 기세세등등하게 따지는 엄마도 있지만

출생시부터 하고 있는 기관튜브때문에 소리조차 안나는 기침을, 얘가 기침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가슴 움직임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항생제 처방을 기다리는 엄마도 있는 것이다.

 

그래 이해할 수 있다. 몰라서 그런거고 애가 걱정돼서 그런거겠지.

그러니까 뭔가 대국민 홍보라도 좀 하면 좋겠다.

애들 39도 넘는 열도 일단은 해열제 먹이면 되고

해열제는 1,2시간은 지나야 효과가 있고

열성경련은 대부분은 큰 문제가 없고 안정하면 되고

수족구 있으면 밤에 애가 잠도 안자고 울고 불고 난리치는 거 당연하다고

누가 좀 모두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옛날에 식구들이 더불어 함께 살고 아기들도 많고 하던 시절에는

아기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질환들에 대해 굳이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어른이기만 하면 경험이 많았고

그래서 훨씬 더 차분하게 대처했을 듯하다.

 

나만해도 아기 낳기 전까지는 입원이라곤 해본적이 없고 병원 진찰도 치과말고는 거의 가본적이 없는데

막상 우리 은총이를  보면, 할머니가 낮에 주구장창 소아과를 데리고 다니고 있으니

우리 사회 모두가 어린이가 아픈것에 대해 잘 모르고 그래서 더 예민한 게 아닐까 싶다.

 

 

애들이 장염이나 수막염으로 토하고 설사하고 하면서 아무것도 못먹고 며칠째 시들어가던게

수액만 맞으면 금방 회복되는 걸 보고있자니

옛날에 많은 아기들이 고작 이런 쉬운 처치를 못받아서 죽어가기도 했겠지 하는 슬픈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의료서비스가 부족한 나라의 아이들이 못먹고 토하고 설사하고 하다가도

그냥 그렇게 앓다가 스스로 나아가고, 또 그렇게 스스로 낫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을테니까

그래서 애가 고작 하루 안먹고 토한것 가지고도 세상이 망한듯이 걱정하며

병원에 비용과 시간을 기꺼이 지불하려는 부모들의 넘치는 애정이

정말 절박한 의료서비스 한토막이 필요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좀 분배될 수 있다면

그게 훨씬 더 공평한 나눔이 아닐까 싶고

애를 걱정하는 부모의 애틋한 마음에 대해서도 '자기애만 걱정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굉장히 냉정한 마음이 돼버리기도 한다.

그냥 좀 그렇게 된다.

 

 

처음에 파견 오기전까지 걱정하던 것에 비하면 밤을 새는 것도 소아환자를 보는 것도 어렵지만 그냥그냥 해나갈만은하다.

하지만 고비는 추석연휴.

 

그것만 넘으면 어떻게 될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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