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 컨트롤

2015. 5. 26. 01:21 from S.paul 2015

 

2013년 7월

밤 12시가 거의 다 돼서 진통이 5분간격으로 오기 시작해서

부산의 다니던 병원으로 새벽에 달려갔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내 통증은 내가 조절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경막외 마취'였나 뭐 그런 무통시술에 대한 동의서가 좀 불쾌했었다.

이런거 할 전혀 생각없지만, 만약을 대비해 임시로 받아두는 거라니 그냥 대충 사인해주고

난 분만실에서 혼자 진통을 견디기 시작했는데

 

죽을 것 같은 통증을 10점, 하나도 안아픈 걸 0점이라고 할 때 당신의 통증은 몇점?

이라고 질문할 때의 죽을 것 같은 통증 중에는

출산과정 중의 진통도 포함된다고, 그렇게 아픈 거라고는 했다.

한편 지주막하 출혈의 '도끼로 머리를 내리찍는 것 같은 통증'이란 표현도 있다.

내가 느낀 진통은 이게 10점인지, 뼈가 갈라지는 것 같은 통증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통의 횟수가 정말 끝도 없이 반복되고

그렇게 매번 반복되는 통증의 끝은 마치 내가 사라지는 듯 아득한 기분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정신차려보면 겨우 1분밖에 안 지나 있는 그런

도무지 끝이날 것 같지 않아 무서운 그런거였다.

자궁 문을 열리게 하기 위한 자궁의 수축이 반복되고 있을 뿐일건데, 그런 내장성통증에 불과한 진통.

 

그렇게 1분을 백만년처럼 느끼며 혼자 분만실에서 발버둥치며 참다참다가

진통제는 대체 언제 놔주냐고 물어봤더니

무통을 안하고 싶다고 해서 아예 경막외 시술도 안한상태라고

경막외 시술 해주실 선생님 오시려면 한 3,40분은 기다려야 된다는 절망적인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다시 3,40분,, 그러니깐 백만 곱하기 백만큼의 시간을 더 견뎠다.

그러고 겨우 경막외 시술 후 처음 진통제가 들어가자 마자.

 

천국임.

 

잠깐씩 잠도 자면서 자궁 경관이 충분히 열리기를 기다렸음.

경관 완전개대 후에 카디날 무브먼트를 하면서 몸밖으로 아기가빠져나오는 과정은 정말 수월했음

결과적으로 아기도 산모도 다 건강했음.

 

분만전까지는 무통에 대해 눈꼽만큼도 생각안했기 때문에 아는게 하나도 없었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에 얼른 무통분만에 대해 검색을 했고

프랑스에는 98프로가 무통시술을 한다면서

어떤 경로로든 아기를 안전하게 산모에게 안겨주는게 최선의 목표라고

그런 기사를 보면서 통증에 굴복한 스스로를 위안하고 달랬다.

 

 

 

 

하스피스에서 통증 조절이 1번 목표라는 것에 대해 배우고 또 환자들을 보면서

내가 통증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협한 생각들을 많이 되돌아보고 있다.

 

인턴 때 소아과에서

신경모세포종으로 투병을 하다 상태가 악화돼서 치료를 포기하고 지방의 하스피스병동으로 전원가게 된 6살 어린이.

상태가 불안정해서 동행을 했었는데

그때 아기는 속효성 진통제 주사기를 달고 있었다.

아플 때마다 눌러서 페인컨트롤을 하는 건데

최소 10분이후에 누르라고 지시를 받았지만 아기가 너무 아파해서

그 10분조차 버티지 못하고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고 페인 쇼크 때문인지 암 때문인지 눈까지 뒤집히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정말 눈물나게 가슴 아팠다.

그때는 아기의 통증이 제대로 조절 안되는게 말기암의 어쩔수 없는 고통이라 생각하고

내 무기력함을 탓하며 눈물 안보이려고 애쓰는 것 밖에는 하나도 해줄게 없었는데

이제와 하스피스의 페인컨트롤을 겪은 후 되돌아보면

그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아기에 대한 소극적인 페인컨트롤과 잦은 속효성 진통제 사용때문에 진통제에대한 내성이 생겨서

그래서 아기의 마지막이 더고통스러워졌으리라는 게 지금의 입장이라고.

트리돌에 잘 들으니깐  전원갈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트리돌주사부터 놔주게끔 잘 말해달라고 부탁하던

아기 보호자의 얘기까지 더해지면 정말..

의료진의 소극적 통증조절 때문에 아기의 마지막만 불쌍해진거라고밖에 달리 볼수가 없다.

 

그래서.

약물에 대한 불신, 중독에 대한 두려움, 통증은 아무리해도 결국 함께갈 수밖에 없다는 편견 등등이

환자나 보호자로 하여금 자기통증이 컨트롤되게끔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걸 주저하게만들고

통증 조절과 같은 대증치료에 대해서는 별로 집중할 필요가 없는 수련과정이

환자의 고통 자체에 대해서는 무능한 의사를 양산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지난 한달간의 하스피스 병동 생활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학교 병원에서는 종양내과에서 하스피스를 같이 하고 있었고

또 파겨나간 외부병원에서는 에프엠에서 하스피스를 보고 있는 등

분야의 정체성을 잘 모르겠어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성모병원에서는 에프엠이 하스피스를 맡는 거라서

그래서 예상치 못하게 페인컨트롤에 대해 트레이닝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하스피스라서 환자에게 덜 적극적이게 되는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내가 하는일에 대해 만족하는 쪽이 더 크다.

 

릴케는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어봐야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인턴 1년동안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도록 놓아드렸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 본'적은 한번도 없다.

마지막 호흡까지 사람의 손, 의사의 손에서 목숨을 주무르려 했고

그건 거의 매번 사람이 지는 걸로 끝났으며

그런 전투의 상처는 일생에 오직 한번뿐인 '임종'을 맞는 환자에게

지독한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육체는 물론이거니와 정신, 영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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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