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2015. 5. 26. 00:19 from S.paul 2015

옛날에 학부 때 남자친구랑 사귄지 얼마안돼서 춘천에, 중도로 놀러를 갔었는데

동아리 아카데미 활동으로 이미 한번 다녀와본적이 있는 곳이었고

당시 역마살이 잔뜩 낀 선배들의 어마한 내공덕에

외지인, 관광객이 중도로 들어가는 정규 배편이 아닌

주민용 루트를 활용해서 섬을 드나드는 법을 알고됐었다.

그래서 남자친구랑 놀러갔을 때도 춘천역에서 내려 주민용 배를 타는 길을 통해 중도로 들어가서 재미나게 놀았다.

낮에 역에서 선착장으로 갈 때는 뭐가 이상한지 잘 몰랐었는데

저녁 6,7시쯤 다시 그 주민용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서 역쪽으로 걸어가는 길에서야 보니

우리가 낮에 지나왔던 그 길이  춘천의 윤락가였던 거였다.

홍등가라고 해야되나 집창촌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예전에 한번도 그런곳을 본적이 없어도 딱보면 여기가 바로 그런데구나 하고 알게되는

언니들이 헐벗은 모습으로 쇼윈도같은데 앉아있고, 조명도 야시시한 빨간색이고

 

그 당황스런 상황은 빠른걸음으로 그곳을 얼른 통과해 지나가는 걸로 어찌어찌 넘겼지만

 

사실 난 대학 입학 후 우리학교 근처에 있는 청량리역에 대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동해안은 물론 부산까지도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역이 있다는게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에가거나 어딘가 놀러갈 때 청량리역을 굳이 이용하며,

부산 청량리간 새벽기차나 경북내륙을 지나는 중앙선 통일호 열차등을 굳이 이용하며,

기차를 타는바람에 빙빙둘러서 천천히 가게 되는 시간낭비에 대한 생각보다는

기차여행의 여정도 도착지에 대한 기대감에 섞여들어서 그자체로 기차여행의 만족감이 채워지는

기분을 참 좋아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름자체가 마치 고유명사처럼 윤락가를 지칭하는 것만큼 유명하던 탓에

혹시 실수로 청량리역 주변을 다니다가 근처에 있는 집창촌으로 길을 잘못들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했었는데

조심하려고 지도도 열심히 보면서 대체 어디쯤에 그런골목이 붙어있을까

미리 알아두려고 한동안 애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걸 옆에 누군가에게 따로 물어볼수도 없었고

물어본다한들 제대로 말해주며 아는 티를 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리도 없을 것이긴 했다.

 

 

주 병원 티오가 여기 청량리에 있는 병원으로 결정이 되고 난 후

이미 학부 때 지나다니면서 자주 봐서 아는 병원이긴 했지만

병원 구경 명목으로 짬을내서 한번 미리 찾아와본 이유도 

실은 병원주변에 조성돼 있을 집창촌 때문이었다.

미리 조심해서 어색한 상황이 안생기게끔 해야지하는 마음에.

 

근데 3개월간 일하면서 정말 신기한게

다들 아무렇지 않게 그 '영업중'인 골목앞을 지나다닌다는 점이었다.

단지, 가야할곳까지 갈 때 가장 빠른 길이라는 이유로

동행자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다니는 것이다.

밥먹으러 다닐 때도 지나다니고

의국 시장보러 다닐 때도 지나다니고.

지나다니는 사람만 이상한 게 아니고

거기 언니들은 정오도 지나지 않은 대낮부터 영업을 시작하는건지 불을 켜고 앉아 있으니

이건 참 누가 누구한테 이상하다고 지적을 해야되는지도 모를지경이었다. 

한참을 혼자 이상한 위화감에 불편해 하다가 하루는 옆에 다른 전공의 쌤한테 물어봤더니

응급실에 오는 환자중에 분명히 엄마도 있고 언니동생도 있는데

막상 전화해서 오라고 하면 진짜 언니, 진짜 엄마 아니라고 하는 환자들 보면

아마 이쪽 계통에 종사.. 하는 환자들일거라고

뭐 그런 이야기를 (자기도 처음 파견왔을 땐 이 상황이 완전 어색했는데 이제는 뭐 아무러지 않다며) 해줬다.

 

 

그래서 내 환자가 될수도 있는 그 언니들, 환자가 될 확률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그 언니들에 대해

대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 묻는다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뭔가를 팔아야만 하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일이라는 걸 알고난 다음부턴

몸을 파는 거나 감정을 파는 거나 자존감을 파는 거나 뭐 다 결국엔 비슷한 거라는 생각을 계속 하긴 했지만

그래도 통상의 윤리기준을 들이밀면서 말한다면

그 매매들이 다 똑같은 매매는 당연히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난 그냥...

전에 은총이가 병원 근처에 놀러왔을때

백화점 주차장 쪽에서 병원으로 가던 길에 또 너무 당황스럽게 지나치게된

그 영업하는 언니들 가게 앞에서 어떤 언니가 우리 은총이를 보고 막 귀엽다며

손을 흔드는 걸 보고

그때 '아니 당신같은 사람이 어떻게 우리 아기한테 아는체를 하느냐'고 버럭 화가 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은총아 이모야 한테 안녕하세요 바이바이 해야지' 하고 아기 이쁜짓 시키는 엄마노릇도 하지 않았고

그냥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정말로 몰라 헛웃음만 나왔다는 것.

내입장은 딱 그만큼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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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