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세계

2012. 9. 3. 12:02 from yS 2010▷2013

 

 

 

전에 외부병원 나갔을 때 화상환자를 봤었다.

병력기록지를 직접 보지는 않았고 중환자실 회진 때 과장님께 정황을 듣기만 했는데

그 환자는 특이하게 상반신, 그러니깐 몸통의 앞과 뒤, 양쪽 팔,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가피절제술과 피부이식을 한 후 중환자실에서 매일 드레싱을 하면서 경과를 보고 있는 상태였다.

드레싱을 할 때 보이는 몸의 아래쪽은 굉장히 젊은 사람의 피부로

피부에서 추정되는 연령대 때문에 이 사람의 화상이 더 안타까웠는데

과장님께 들어보니 이 분은 원래 고온 작업장에서 근무하던 사람인데

고온에서 일할 때 입는 쿨자켓에 실수로 산소가 채워지는 바람에

작업장에서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서 상반신만 화상을 입게 된거라고 한다.

flame burn은 기도의 화상도 살펴야 하는데,   

이 환자는 상반신 flame burn이라 당연히 기도쪽도 손상이 심할테고

보기에도 심각해 보이는 상반신의 피부 화상뿐 아니라 기도쪽 화상 때문에라도

앞으로를 장담하기가 힘들것이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느나란지는 잘 모르겠던 외국인 환자였는데

이 환자는 증례발표 담당환자라서 병력기록지를 볼 수 있었다.

83년생 린XX씨, 폭발로 전신화상을 입은 후 병원으로 실려왔다.

가피절제술 수술하는 걸 참관했는데

수술 중에 의료진들의 이야기..

자기 나라에서 결혼한 후 우리나라에 일하러 혼자 왔고, 일해서 번돈을 매달 송금하는 외국인 근로자

한국 사람들은 폭발위험이 있는 작업장에선 근무를 잘 하지 않으려하니깐

그래서 대신 그일을 맡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렇게 폭발로 화염화상을 입는 일이 잦아지는 거 같다고

앞으로 이런 사고로 실려오는 환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지 않겠냐는 등

 

난 사실,

외국에 놀러나갈 때 조차도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나 무슨사고가 있어도 내가 감수해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한국에서도 완벽한 치안 같은 건 보장할 수 없는데 외국까지 나가면서 무슨 그런걸 기대하냐 싶은거다.

그래서 소위말하는 위험지역에 선교를 나가거나 사업하러 가는 사람들이 불의의 사건에 휘말리게 될때도

최소한 사건의 희생자&피해자 본인 스스로는 자신을 동정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물며 외국인 노동자..

어차피 다른 나라에서 막일하는 거 감수하고 들어오는 거 절대 평등한 조건일 수 없고

남들보다 위험한 환경에서의 근무를 떠맡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자신에게 전혀 친절하지도 않고 오히려 여러가지 차별의 시선으로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의 나라를

밑에서 떠받쳐주는 일따위를 하게 될수도 있다. 

이런거 정말 슬픈일이다.

그래서 난 외국인 노동자같은 거 허용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사회를 위해 남보다 월등하게 위험한 일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별로 감사하지도 않는데도, 그 근로자들과 같은 사회에 있다는게

참을수없이 불편하다.

어떻게든 노동장벽을 넘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의 절박한 사정도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이 '자유로운' 세계는 대개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인 세계니깐

애초에 그 장벽이 굉장히 엄격해서 자유롭지 않으면 좋겠다.

 

수술하던 날 아침 회진 때는 그래도 화상부위의 심한 통증을 호소하던 린XX환자가

수술하고 이틀째 되는 날까지는 계속 sedation 상태로 아무 호소도 없이 누워만 있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

린XX씨의 예후가 어찌될런지 등에 대해서도 과장님께 여쭤보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잠시 마주치는게 전부인 환자들에 대해 이런 질문은 과도한 오지랖이다.

(이 외부병원은 실습기간은 2틀이다)

내가 걱정한다고 예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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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