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가네

2012. 8. 1. 11:51 from yS 2010▷2013

오늘도 여전히 30도를 넘는 더운날이지만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열대야가 없었다.

게다가 오전내내 바람이 집안으로 바람이 선선히 불어들어서 굉장히 청량했다.

그래서 늦잠도 자고 오전내내 침대위에서 뒹굴대며 며칠간 열대야로 설친 잠을 보충하고 개운한 기분이다.

그러고보면 이런날 마침 실습을 빠질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더우면 에어컨, 선풍기도 다 돌리고, 찬음식을 입에서 떼지 않으며 더위를 이겨내는게 당연한듯하지만

난 집에서 에어컨과 선풍기를 안 쓴지 거의 10년은 된 거 같다.

요즘 팥빙수에 꽂혀서 우유랑 몇개씩 사두고 먹긴 하지만 그냥 맛있어서 좋아하는 것일뿐이고

원래는 아이스크림을 집에 쌓아두며 즐기는 스타일도 아니다.

 

이런걸 '자연풍을 좋아한다'거나 '찬음식 싫어한다'와 같은 취향의 문제로 볼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10년 전부터 학습된 혹은 세뇌된(ㅋㅋ) 행동양식이다.

 

학부 때 배우기로

겉에 열증이 있으면 속은 차고 겉이 차면 속은 오히려 열이 뭉쳐있는 병리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여름은 가장 더운 시기지만 가장 더울 때 가을,겨울로 가는 기운 한가닥이 오히려 처음 나타나며

그래서 여름엔 시원한 데서 뜨거운 음식을 먹어서 속을 보충학고

겨울엔 따듯한 곳에서 시원한 음식을 먹어서 열을 풀어줘야 된다

라는 식의 내용들..

비슷한 논리로 냉면이나 수정과가 있는데 다들 알다시피 이 찬음식들은 원래 겨울에 먹는거다

옛날이라면 한여름에 어디서 얼음을 구해서 저런 찬음식을 해먹겠냐 싶기도 하지만..

 

 

물론 이런 내용들은 극단적으로 찬것과 극단적으로 따뜻한 것만 찾아서는 안되며

항상 적절하게 자기 몸의 건강을 조절하기 위해 어느정도 조화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양생' 측면에서 의미있는 내용들이란 걸 알고 있다.

 

여름에 삼계탕 같은 거 먹으면 뭐.. 체력이 좀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열사병으로 체온이 마구 올라가는데 무슨 따뜻한 걸로 몸을 보하고 어쩌고하는 건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다른 이야기다.

 

아무튼 그래서 난...

에어컨과 선풍기를 쓰지 않고 집안에 자연바람이 조성되게끔 창문을 열어두는 걸로만 여름을 견딘다

처음에는 생소하고 낯설게 교육으로 익혔을 뿐인데

이런 내용이 점점 내 인식에 스며들다보니 삶의 태도와 행동양식까지 변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집이 통풍이 잘되고 말하자면 스스로 호흡이 되는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예전에 직장에서는 하루종일 냉방된 곳에서 일해야 했는데

내가 원래 추위를 잘 못견디는 사람도 아님에도

여름내내 냉방에 견디면서 내 몸이 점점 상하는 거 같아 항상 신경이 쓰였다.

실제로 나빠지는지 어떤지의 문제와는 별개로 나빠진다고 생각하게되는 내 사고과정을 살펴보면..

 

여름에는 적절히 땀을 흘리고 발산이 되야 하며,

그렇게 겉으로 발산된만큼 허해진 몸은 음식으로 보충해야 한다.

근데 더운게 싫다고 계속 땀을 내지 않고 여름을 보내면

가을에 습으로 인한 해수병이 생기고

이렇게 제대로된 양생이 이뤄지지 못하면 몸 컨디션이 점점 나빠지고

결국 썩 건강하지 못한 몸이 될것이다.

 

나무가 봄여름가을겨울을 지내면서

봄에 솟아나고 여름에 활짝 번성했다가

가을에는 퍼져있던 수분을 뽑아내고 겨울에 조용히 몸을 움츠리는 것처럼

내몸도 나무같은 자연스런 주기를 타면서

그 와중에 부족해지는 부분은 보태주고 더해지는 부분은 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저 시원한데서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살고 싶지는 않은 거다.

 

 

물론 열대야는 별개다

도시환경에서 생겨난 열대야 현상은 견디느라 체력소모하고 잠도 못자면서 고생할게 아니라

피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문제는 집에 피할 수 있는 도구가 아무것도 없다 ㅠㅠ

선풍기도 자꾸 사용을 안하다보니 양산 이사오면서는 아예 버렸다

하지만 열대야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봐야 여름 한철 중 10흘 남짓이라

열대야를 나는 동안은 끝이 안보이게 힘들지만 사실 며칠 안되니깐

미련하게 견디며 산다.

 

그렇게 열대야를 무작정 견디며 살다보니 오늘 같은 날을 민감하게 눈치채게 된다.

숨막히는 찜통속에서 문득 여름이 뱉어내는 한줄기 긴 호흡이 느껴지면서

아.. 가을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게 되는 날

 

그러니깐 지금 대한민국은 더위에 타들어가는 듯하지만

사실 여름도 이제 꺽였다고..

 

 

입추까지 일주일도 안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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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