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2012. 9. 29. 17:40 from yS 2010▷2013

평생 한 도시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과

평생 그 도시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예전에 이 질문을 보곤 막연하게 다양한 것을 보고 놀러다니는 것이 더 좋은 것인 거 같아

깊이 생각안하고 후자쪽을 선택하리라 했다.

말이 주는 이미지때문에 보수보다 진보가 좋은거라고 여기며

그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그저 취향의 문제에 지나지 않게 만들어버리던 사람들처럼.

 

간단하게 사는 건 좋은 거다.

이사준비 때문에 짐을 정리하다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도모르는새

이끼끼듯이 내 일상에 피어나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그제서야 그것들을 다 털어내고 짜낸후 다시 좀더 가벼워진 자신에게 안도하는데

그렇게 주변에 여유를 두는건 참 좋은 거다

스펀지에 물 배어들듯 스며들어서 날 꼼짝못하게 일상에 묶어두는 그 생활의 찌꺼기들은

매일매일 청소와 정리라는 걸 해도 부지불식간에 내 주변을 메꿔버려서

이사라든가 뭔가 그런 큰 변동으로 힘차게 털어내주지 않으면 도대체 없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집을 나와살면서 이렇게 이사를 다닐때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버렸는지.

그래서 이삿짐을 싸는 동안은 매번 새삼스럽게

'언제죽어도 문제없을만큼 내 주변을 가볍게 단촐하게 하자..'고 다짐했던거 같은데.

 

 

올봄인지 초여름인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우리 동 쓰레기 분리수거하는곳, 그러니깐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는 곳에서 아기고양이를 발견했다.

희동이랑 비슷한 털무늬를 가진 노랑이코숏이고 정말 작았는데 아마 태어난지 한달 정도 됐으려나..

어미를 잃은건지 버림받은 건지

아무튼 벌써부터 사람을 무서워할 줄 알아서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울지 않고 조용해지면 또 울기시작하는데

우는 고양이 달래려면 먹을걸 주는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서

그래서 우리 고양이들 사료를 물에 불려서 쓰레기통 주변 잎파리 위에 좀 얹어두고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든가, 아니면 누가 거둬가든가 하겠지,,

그러면서 크게 마음을 안 쓰려 했는데

 

한달 두달 만에 가끔씩 녀석이 눈에 띄었다.

조금씩 커가고는 있는데 영양이 결핍돼서 그런지 머리도 별로 크지 않고 몸은 말랐고

어떤 느낌이냐면 아기고양이가 몸만 길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사람도 잘 피하고 차도 잘 피하면서

아파트 건너편의 우체국과 상가건물 쪽까지도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거 같았다.

먹으면 배탈날거 같은 더러워보이는 음식을 고양이들은 찾아먹는데

그래도 녀석들이 먹은 역시나 더러운 음식의 영양소에서 만들어진 여러 면역물질들이

또다른 더러운 음식에서 유발될 감염이나 위해를 막아줄것이다.

그렇게 거리에 흩어진 음식 찌꺼기와 쓰레기가

녀석의 몸과 털과 눈과 고양이 몸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을 채워갈것이다.

거리의 고양이의 삶이란 그런거니깐.

 

그리고 얼마전 밤에 쓰레기 버리고 오는 길에

검정망토 털무늬를 가진 다큰 고양이가 주차된 차 아래에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어두웠지만 다리의 흰 털때문에 고양이란 걸 알수 있었는데

이녀석... 보니깐 앞다리 한쪽이 휘어있었다.

아마도 다리가 부러지거나 한 걸 뼈를 고정 못시킨 채 그대로 접합이 돼서 그렇게 돼 버린거 같은데

혹시나 아직 다친지 얼마안돼서 교정의 여지가 있을까 싶어서 녀석근처에 조심해서 다가가보니

휘어진 한쪽 다리도 그럭저럭 잘 움직이면서 더 깊은 곳으로 피해버린다.

그냥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몇달전부터 봐왔던 그 말라깽이 노랑이 코숏이 냐~ 하고 나타나선 검정망토쪽으로 오는 것이다.

나를 보곤 멈칫하더니 결국 검정망토 쪽으로 다가갔고 결국 둘이 같이 저쪽으로 건너가버렸다.

 

뭐랄까... 둘이 같이 돕고 사나보다 싶었다.

그 꼬마고양이가 몇개월동안이나 동네에서 살아남은 것도 이 어른 고양이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둘이 만난건 어른 고양이가 다리를 다치기 전이였을까 후였을까.

사람들이 고양이한테 관심을 가지든 말든 동네고양이들끼리는 이렇게 교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깐 그때 굳이 내가 그 아기고양이를 거둬주지 않아도

녀석은 말라깽이로나마 잘 자랐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사람인 내 입장에서는 그냥

고양이에 대한 괜한 혐오감과 증오심, 그리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만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

적은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면 되는거구나 싶었다.

 

근데 이 고양이들의 동네에 사람들의 공격(쥐덫,학대 등등)외에 다른 위험이 닥칠수가 있는데

그건 동네를 허물고 새로 짓게되는 경우다.

그때 고양이들은 자기들 영역과 터전을 완전히 잃고 다른 곳으로 쫓겨나게 된다.

그래서 뭔가가 그자리에 오랫동안 꾸준히 있다는 건 굉장한 거다.

그자리에 있음으로써 생명을 키워낸다.

그곳을 지키는거다

 

지금까지 혼자 여러곳을 이사다니면서 동네 고양이들을 많이 만났다.

먹이를 주며 얼굴을 익힌 적도 있었고,

익명(이라기보다는 익面..)의 고양이에게 먹이만 공급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계속 있어줄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결국 고양이녀석들의 생활력만 떨어뜨려놓은채 그곳을 뜬 일이 많았다.

제멋대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다가 제멋대로 끊은 것이다.

지금처럼 어딘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상태로 일때문에 계속 이동해야한다면

그 와중에 만나게되는 고양이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해 난 항상 갈등할 것이다.

그자리에 그대로 계속 있는다는 건 그래서 정말 좋은 것이다.

 

중학교때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처음 읽었을때 ..이거다! 라고 생각했는데

무소유는 결국 쿨하게 사는 삶이라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는 참 맞는 삶의 자세다.

근데 그렇게 삶을 가볍게 하는 간소함도 필요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은 훨씬 다채로운 것이라

애착과 집착과 소유

보듬어주고 키워주고 그렇게 집착해주는 것 역시 소유하지 않는 쿨한 삶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고 끈질기게,

트로이 땅 아래에 아홉층이나 되는 유적이 생멸한 것처럼 하나씩 쌓여가는 삶

 

 

평생 한도시에서만 살 것인지 평생 떠돌아다닐 것인지 이제는 이 질문에 정말 답을 못하겠다.

어느쪽이나 의미있고 필요한데

지금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절대적으로 전자가 마음에 든다.

지금 이삿짐싸는 게 너무 힘들어서ㅠ

물건을 솎아내고 버리는게 정말 힘듦 ㅠ

 

천연의 상태에서 아름다웠을 원소들이

인간들의 경제활동을 위한 재료로 이용되며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고

서로 섞이고 이젠 어찌 분리돼야 할지도 모를 애매한 형체가 돼 버린채

나한테 구매돼 왔다가

오늘 내 삶에서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버려지고 있다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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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