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지하드

2013. 3. 25. 10:28 from yS 2010▷2013

 

그동안 소식이 궁금했던 여자대학동기 J에게서 얼마전 연락이 왔다.

10프로도 안되던 여자동기들 중 한명인데도 어찌된게 아무소식 하나 들려오지 않았을까 이상한일이지만

둘 사이에 조금 껄끄러운게 있었던 듯도 하고

어쩌면 내쪽에서 절대로 친한척 관심있는척 안하려 했을수도 있다.

 

대학 입학하고 잠깐 호감을 가졌던 동기 남자애가 있는데

그런 상태에서 살펴보니깐 이 남자애가 J하고 어떻게 잘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J의 행동이 하나하나 거슬렸다.

뭘해도 이성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내숭떠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완전 가식적이고 여우같은 기집애라는 그런 느낌이 점점 쌓여갔다.

한번은 같이 하던 스터디모임에 늦게 참석한 J가 스터디도중 청승맞게 눈물을 글썽글썽 한 적이 있는데

대체 누구한테 보이려고 저런 감성쇼를 하나 하고 계속 미운눈으로 흘긴적도 있다.

 

그 남자애는 얼마지나지 않아 당연하게도(ㅋㅋ) 내 매력에 넘어왔다가 또 결국 나한테 차였지만

그렇게 문제의 발단이 됐다고도 할 수 있는 남자애가 떨어져 나간 다음에도

J와 나는 계속 서먹했고, 이 서먹함이 나로인한건지, 아니면 J도 나에게서 뭔가 느끼는 게 있는건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대학입학하고 첫학기동안 둘다 기숙사에 있으면서 그래도 좀 쉽게 인사를 나눈 친구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첫인상에서는 애 수더분하고 담백하고 괜찮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터라

이런 서먹함이 이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는 건 참 소모적인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전 졸업 후 처음으로 연락이 온건데...

일단 연락 자체는 굉장히 반가웠고,

J도 나도 서로에 대해 아무런 소식을 못듣고 살았다는 걸 알았고

그간의 서로의 안부를 열심히 물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탐색전 속에 뭔가 동정해줘야 할 어떤부분이 있기를 서로 기대하지는 않나하는

여자들의 대화에서 으레 묘사되는 신경전을 미묘하게 감지했다.

 

그래도 이정도라면 소위말하는 '화해'라는게 된게 아닐까..(딱히 싸운것도 아니지만..)

그냥 시간이 두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해 줘 버린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시의 난 왜 애꿎은 J를 미워했을까..

나 나름대로는 미움받아 마땅한 애라고 그 근거들을 하나하나 모았던 듯도 하지만

사실은 걔가 이미 싫어져버렸기 때문에, 그런 내 미운 마음이 심술궂은 눈으로 J를 평가하게 한거다.

 

 

중고등학교 때는 워낙에 우등생이라 누구하나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서 친구들 신경쓸거없이 잘지냈고

대학교 때는 여자애들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애초에 무슨 패거리가 만들어질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는 여학생 비율이 절반이라서

여자애들의 집단이라든가 무리라든가 아무튼 그런 패거리의 이합집산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이동네는 소문도 많다.

남자애들이 소문이란것과 어떻게 관계맺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자애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소문이란건 꽤 중요한 문제다.

오죽하면 여자들의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에

'주변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는 느낌'이라는 그런 항목도 있을까.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라는 건 어찌보면 좀 불쌍한 존재다.

털털하고 성격좋다는게 사실

다른 남자한테 꼬리치지 않는, 따라서 날 가로막는 장벽이 되지 않을 돌멩이 같은 여자..

뭐 이런 의미 아닌가.

같은 여자입장에서 도무지 참을 수 없는

헤픈 웃음, 감정을 동요시키는 가벼운 신체접촉, 여성스러움을 가장한 내숭 등등의

남자꼬시는 기술들을 사용하지 않는 그런 성격좋고 털털한 여자가

대부분 여자들이 욕하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다.

 

물론 저렇게 여성미 없어서 안심이 되는 여자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신의 적이 되냐하면

또 그건 아니고,,

주요한 타겟.. 주적에 대한 악담을 나누고 퍼뜨릴 동안 그럭저럭 참아줄만한 여자들과의 연대는 유지되는데

이게 대개의 여자애들이 만드는 패거리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FM에 좀 많이 가녀리고 여성미 넘치는 여선생님이 한분 계셨는데

남자애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천사같은 N선생님이라며...

근데 실습실에서 N선생님을 찬양하는 남자애들에 대해 몇몇 여자애들이

'그렇게 여자보는 눈이 없으니깐 여자친구를 못사귀는 거라며 N선생님은 완전 내숭이다'라고

'여학생이 질문에 답하면 알듯모를듯 비웃는듯 눈내리깔고 씨익 웃는거 정말 기분나쁘다'고

그렇게 같은 여자인 나도 100프로 공감이 되는 말을 했는데

N선생님이 여자애들한테 미움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럭저럭 예쁜편이긴 한데, 자기 예쁜걸 굉장히 부각시키는 여성스러움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어서

그게 여자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거다.

저렇게 이쁜척하(며 남자꼬시려고 하)니까 당연히 남학생보다 여학생들을 부당하게 평가할게 분명하겠지..

이렇게 N선생님이 미운 여학생들끼리는 은연중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렇게 연대가 이뤄지는 거다.

실제로 N선생님이 여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제대로된 근거는 하나도 없다.

그 알듯모를듯한 고상한 미소,,

남자애들은 예쁘다고 환장을 하고 여자애들은 비웃는거 같다고 불쾌해하는 그 여성스런 미소빼고는.

그리고 설사 N선생님이 내숭좀 떨고 이쁜척 하면 뭐 어떤가

내숭 떨면 남자에게 나쁜 여자인가?

인간관계 처음 접근의 과정과 관계 유지과정은 다른 거 아닌가

접근의 과정에서 내숭이나 가식이 좀 있으면 어때. 그렇다고 나쁜사람이란 법은 없는 거다.

천사같이 보이면 그냥 천사같이 생각하면 되는 거지.

 

얼마전에 여자 R이 한명만 있는 과에 1년차로 들어간 여선생이

원래 있던 선배 여자 R의 구박을 못견디고 결국 그 과를 나와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원래 있던 여자 R이 예쁘게 생겼고 자기가 그 과의 홍일점이었는데

새로 들어온 1년차 R도 예쁘기도 하지만 일단 새로 들어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서

그래서 그걸 못견딘 선배R이 1년차를 심하게 대했다고

웃기지만 그래서 1년차가 도망간거라고 그런 소문이 돌았었다.

선배 R이 먼저 시작한건지 아니면 후배 R이 자기가 느끼는 여자로서의 경쟁의식을 선배R에게 투사해서

더 밉보이게 행동하고 피해의식이 쌓여간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다 여자였다는 것에서 결국 문제의 본질은

소문대로 사무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인 것일거다.

 

그리고 저번학기에 발표하던 나에게 인신공격을 해대던 여자의사 펠로우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군 이유를 사실 나는 알고 있는데

그건 내가 발표도중에 여자냄새를 풍겼기 때문이다.

이미 인턴도 해봤고, 사회생활도 해봤기 때문에

여자들이 애같은 말투로 책임감 떨어지게 구는게 어떤건지 잘알고, 그에대한 교육도 받아놔서

학교들어온 후 공적인 상황에선 다른 여학생들은 다 어색하게 여길 '다나까 화법'으로 말을 했었고

실습 때 케이스 발표할 때도 항상 그런 부분을 신경써왔다.

하지만 발표도중 전혀 예상못한 실수가 자꾸 눈에 들어오니깐

그 민망함을 무마하려고 무심코 웃게 된 것이다.

여자들이 미워하는 스킬... 귀여운 척 헤프게 웃는거...이런걸 한게 돼 버린 셈이지.

그래서 그 펠로우는 발표 중의 실수를 가증스런 애교로 무마하려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하지만 그 여자의자 펠로우도 문제가 있는게

민망함을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상대의 성별이 남자였다면

그 행동을 그렇게 도드라지게 의식하진 않았을 거란 점이다.

결국 서로 견제를 하는 상태였으니깐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

 

 

그래서 내숭떠는 여자를 공격하는 여자들이 그런 남자꼬시는 못된 기술(?)을 안쓰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자기들도 쓴다.

열심히 외모를 치장하고, 적당히 웃음도 흘려주고, 간간히 스킨쉽도 던져주고 뭐..

근데 이게 과하게 부각되지 않아야 여자들 사이에 소문을 형성하는 주체로 떳떳해지니깐

자기 행동을 괜히 설명하고 떠들고 그래서 일반적인 것인양 만들어버린다.

어찌보면 대놓고 촌스럽게 여성미 풍기고 다니다 소문의 주인공이 되는 여자애들의 자연스런 행동에 비해

훨씬 영악하고 노련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여자들에 대해 또 어떤 똑똑한 여자들은

'털털한 척 하느라 고생한다'라고 비아냥거린다.

정말 끝도 없이 물고 물리고 이어지는 전쟁이지만

여자들 패거리가 생길만한 집단에서 지낸 지난 3년간 몸으로 느낀 일들이며

어차피 영화같은데서도 흔하게 나오는 일상이고 현실인거다.

 

 

 

한번은 다른학년의 어떤 남자애가

여기, 우리과 여자애들 정말 쉬워보인다면서

살짝만 건드려도 넘어오게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애들이 다들 외로워 보이지 않냐고

그래서 사귀려고 맘만 먹으면 사귈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처음 들을 땐 굉장히 기분 나빴지만 듣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대부분은 이성과의 관계 때문에

너무 단순한 이유지만, 결국 남자때문에 다른 여자에게 괜한 미운감정을 품는다.

자신과의 어떤 가능성이 잠재된 남자들이든, 자기가 실제로 마음에 두고 있는 특정 남자든.

 

전에 학교에서 벗어나서 시내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동기애들이랑 걷다가 알게됐는데

(맨날 패거리나 무리를 짓고 다니며 남 험담이나 하고 소문이나 만드는 그런 스타일의)

어떤 여자애도 밤에 여기 산책로를 걷더라며

(사람들이랑 같이 걸으며 못된 소문을 만들거나 하지 않고)

혼자 걷더라며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입이 삐뚤어지게 눈이 삐뚤어지게 귀가 삐뚤어지게

험담이나 하고 듣고 하는 그런 사람들도

가끔은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구나 하고

혼자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었다.

 

너무 뻔한 소리지만

좀 마음을 곱게 쓰면 얼굴도 예뻐지고 남자친구도 생길건데

왜 그렇게 마녀같이 굴면서 마녀같이 못생겨져 가는지 모르겠다.

바보들. 

 

예뻐서 착한 애들이 좋다.

여자들의 자연스런 행동이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그런 솔직한 애들이 편하다구 

 

 

'yS 2010▷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경전  (0) 2013.05.23
謎 惑  (0) 2013.04.15
試 間  (0) 2013.02.04
실습조원  (0) 2013.01.29
410197 壽  (0) 2012.11.14
Posted by Navi. :

試 間

2013. 2. 4. 02:15 from yS 2010▷2013


예전에 어느 블로거가

'치과에서 예약시간에도 진료를 안 해주고 기다리게 한다'며

치과가 모모의 회색신사들같은 시간도둑이라고 분개해댄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글쎄... 이건 좀 아니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예약시간 밀린걸로 시간도둑 타령이라니,,

치과에서 시간 조금 잡아먹힌 것쯤은 비교도 안되게

애초에 인생이 시간도둑들에게 저당잡혀 사는 분이시군 이라고 한심하게 생각했다고..

대체 어떻게 이 소설을 이런식으로 받아들일수가 있지?

이런 소설 읽어봤자 사람들이 빠듯한 시간에 스스로 묶여 사는 건 변하지 않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선택실습 동안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학교에서의 강의가 진행된다.

그래서 며칠전에 개강 후 첫 강의시간,, 첫교시에서는

학생교육스케줄을 담당하시는 D교수님께서

전반적인 수업&시험일정,,그리고 1년뒤의 국시공부, 지금부터 준비해야한다고 잔소리를 하러 나오셨다.

화면에 올해 시험결과에 대한 분석표를 띄워놓고 이것저것 설명하시더니

전에 어떤 서울대 교수가 출간한 바쁘니까 청춘이다 라던가

그런 제목의 책에 나온 내용을 예로 들어놓으셨네

그 책에 나온,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교한 그림을 보여주고선

나도 아직 네다섯시밖에 안됐으니 할일이 굉장히 많고

그보다 더 이른 시간인 여러분은 말할 것도 없다며

대학초년생이나 한번 읽고 버릴법한 책에 나온

역시나 대학초년생들끼리나 할법한 소리를

국시 닥달하는 강의에 써먹으려고 수업자료로까지 만들어가지고 오셨던거다.


세상이 할일로 꽉 차있다고

앞만보고 열심히 가야 한다고

사람의 시간을 어떤 절대량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보면

개인의 지극히 개별적인 시간은 결코 겪어본적이 없는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인생의 모든측면이 굉장히 평탄하고 순조로웠나?

D교수님도 살아오는 동안 뜻대로 안되고 힘든 시간이 있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시간조차도 사적인 사유로 견뎌낸게 아니라 공적인, 공통적인 어떤 방어막으로 견뎌낸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이상

모든 순간, 모든 연령에서 같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순 없는거 아닌가

아니 기계라 해도 연식이란게 있는데..

그래서 사람 나이를 24시간 시계에 비유하면서 '당신도 아직 할 수 있다'고 선동하는 그런말은

세개쯤 연달아 켜져있는 교통신호의 파란불을 통과하기 위해

일단 무조건 액셀을 최대로 밟게끔 몰아세우는..

사실 코앞의 신호등도 언제 색이 바뀔지 모르는데

그딴 고민하지 말고 최대의 속력을 뽑아내게끔 매순간 몸을 혹사하라고 주문하는

가혹한 사고방식같다.

 


노인 환자들을 보면서 줄곧 의문을 가졌던 부분이

사람은 몸이 닳기 때문에(치매라든가 그외 다른 건강상 제반문제 다) 정신이 약해지는 건지

아니면 어떤 연령을 거치거나 어떤 연령에 이르면서 정신적으로 지치고 닳기 때문에 몸도 쇠잔해지는건지

하는 점이었다.

물론 양쪽다 영향을 미친다고 언뜻 인정들 하고는 있는듯하지만

현재 사회는 대개 전자의 문제로 보고 다들 안 늙으려고 열심히 몸을 단련하는데

후자의 경우,,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그 정신적으로 늙어가는 것과 지쳐가는것에 대처할 수 있을까


젊게 산답시고

무작정 최신의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기를쓰는 게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도 애잔하고

그렇게 어거지로 젊은 척 해봤자 그런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에반해 모모에서 시간 관리자 박사님이

즐겁고 의미있는 일을 할 때 젊어지고 반대의 우울한 상황일 때 늙어버리는 모습은

미하엘 엔데씨 방식의 젊은 정신의 표현이었을거 같다.



좀 다른 듯 비슷한 얘긴데

김용옥씨 논어강의에 나온 봉혜라는 닭이

나이가 들어 분명 더이상 알을 품을 수 없게 됐는데

어느날인가 알을 품는 다른 닭들을 지켜보다가

다시 회춘하여 알을 품고 부화시키게 됐다고...

그런 얘기가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닭은 사람이 아이를 낳는 의미와 유사하게 알을 부화시키나 보다)


사실 우리 환희도 11살이었던 작년 한해 동안

발정도 많이 줄어들고(여름~가을 무렵에는 아예 한번도 발정을 안하기도 했다)

살도 너무 빠지고 해서

이녀석이 이제 정말 할매냥이 되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작년겨울부터 무슨 조화인지 살도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12살이 된 최근에는 일주일넘게 요란한 발정을 하는 바람에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을까봐 내 속을 조마조마하게 한편으론 흐뭇하게 하기도 했다.


봉혜닭이든 환희냥이든 분명 나이가 들어 몸이 늙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회춘비슷한 현상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젊음의 근원이란 건 그래서 어쩌면 어떤 존재이유같은 것일거다 라고 생각했다.

존재의 문제,, 존재하는 삶을 사는 것의 문제일거라고.

그에 반해 시간의 절대량으로 노력을 이끌어 내는 건 소유방식에 치우친 행태같다.




암튼 D교수님의 별 의미도 없는 뻔한 잔소리가 싫었던 나는

수업끝나고 '저 교수님 완전 변태, 애들 은근히 괴롭힌다'는 다른 동기들의 말에 동조하며

즐거워했다.

아... D교수님 정말 변태같아서 싫다라며


근데 사실 시시한 베스트셀러의 시시한 구절까지 열심히 베껴가며 강의자료 만들어오신게

학생들 위한답시고, 1년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잘 설득하려고, 나름 노력하신거란거 나도 알고

별스럽지도 않은 말에 내가 택도없이 삐뚤어지게 반응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 D교수님이 나한테 재시를 주셨고

겨울방학내내 내 목에 쇠고랑을 걸어서 양산에 묶어 두셨으니

정말 싫을 수 밖에 없다.

진짜 이유는 결국 내 호불호 감정인거다 흥..



쇠고랑이란,,,

무려 3주간이나 재시 준비기간을 주고선 그 준비기간 동안 아침 저녁으로 출석체크를 하게 하셔서

그래서 12월 말부터 평일 아침 10시 오후 5시마다 학교에 가서 사인을 하고 와야한 걸 말한다.

12월 말에 굉장한 한파가 몰아쳤는데

그 추운 아침에 학교까지 타박타박 걸어가면서

'내가 정말 학교 졸업하는 날에 D교수님 앞에 항의 편지를 던져줄거라고' 

'정신차리라고 재시준건 알겠는데 그때 내 문제는 체력이었지 절대 정신상태가 아니었다고'

'필기는 공부를 하고 실기는 공부를 안해서 두개가 100등차이나 나는줄 아냐고'

'준비못한건 매한가지지만 결국 표준화환자들을 끝까지 물고늘어질 힘이 없어서 실기를 망친거라고'

'그래도 몸핑계로 시험 피하는 짓 따위 안하고 학교나와서 시험도 다 봤는데 어떻게 재시를 주냐고'

'재시주면 시험이나 다시 보게 할것이지 매일매일 출석체크하게 하고'

'아침마다 저녁마다 학교왔다갔다하면 제일 혈당떨어져 있는 시간에 얼마나 울렁거리는지 아냐고'

'어떻게 이렇게 임신으로 애국하는 사람을 학대할 수 있냐고'

'매일 아침 추위에 떨며 학교까지 걸어갈 때 걸음걸음마다 이를 갈았다고'

그런 내용을 편지에 써서 던져주고 나올거라고 생각했었다.


뭐,, 3일정도는 그런 생각을 한거 같다 ㅋㅋ


근데 한 며칠 그러고 다니다 보니 몸도 안 좋은데 그냥 양산에 계속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고

아침에 사인하러 가려고 일어나다 보니 생활도 억지로 규칙적으로 유지돼서 끼니도 챙기게 되고

무엇보다 실제로 10시부터 5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1월부터는

'재시때문에 후달리느라 실기시험준비를 꼼꼼하게 해볼 기회가 생겨서 좋은거 같다'

라고까지 생각하게됐다.


이렇게 좋게좋게 생각하는 와중에 D교수님으로부터

재시보는 학생들을 위협하는 문자메세지가 종종 들어왔기 때문에

그게 정말 싫었던 거다 변태같다고...

첨엔 분명 재시만 보면 다들 통과시켜줄거라고 말했으면서

'성적이 안 좋으면 자르겠다' '반드시 유급시킬것이다'

이런 문자를 대체 몇번이나 받았는지...


난 첨에 그게 아침에 출첵하고 하루종일 내 할일 하다가 다시 저녁때 출첵하고

그렇게 출석체크만 하고 학교에서 공부는 안하는 나같은 학생들 보라고 보내는 문자인줄 알고

'아무리 쪼아대 봐라 12월에 얼마나 할일이 많은데, 내가 학교에 남아서 공부할 줄 알고'라며

계속 출첵만 하러 왔다갔다 하면서 소심한 반항을 계속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애들이 지각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별스럽지 않은 이유를 들면서 결석까지 해서

그래서 학생들의 반항인건지 아무생각이 없는 행동인건지

그런 무덤덤함에 약이 바짝 오른 교수님이 그런 문자로 위협을 했던 거였다.

아무튼 열심히 출첵하고 핑계같은 거 대면서 결석하거나 하지 않았던

순종적인 재시생인 나는 변태D교수 라고 시험 전날까지 맘속으로만 욕을 하고 있었던 거다.



어찌어찌 교수님의 위협이 지나가고 재시가 지나가고 이제 개강을 했는데

지금으로선 1월에 실기공부를 열심히 한 걸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뭔가 꼼꼼하게 체계적으로 꾸준히 잘 못하는 내 성격에

학생들을 후달리게 한 교수님의 위협문자는 (비록 소심한 반항은 했지만)내게 적절한 채찍이 돼줬으므로

그래서 재시 앞두고 10흘동안 제대로 2,3번은 전체 실기시험 내용을 살필 수 있었던 거 같다.



국시까지 11개월가량 남았다


'yS 2010▷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謎 惑  (0) 2013.04.15
여자들의 지하드  (0) 2013.03.25
실습조원  (0) 2013.01.29
410197 壽  (0) 2012.11.14
레지던트 evil  (0) 2012.10.21
Posted by Navi. :

입덧

2013. 1. 29. 20:17 from ETOCETORA

난 여자들이 아프다고 하는 거에 대해 좀 편견이 강한 편이다.

생리통, 편두통 그리고 입덧...

여자들이 아프다고 하는 것은 뭔가 2차이득을 원하거나 남에게 보이기 원하는 그런

히스테리성 성향, 신체화 성향이 드러난 것이 많다고

말많은 탈많은 생리휴가를 어떻게들 날로 먹고 있는지 많이 봐왔으니깐 그냥 그런 편견이 지속됐었다.

산부인과 돌때 입덧 때문에 입원한 환자들을 보면서도 임신 입덧 참 유별나게도 하네 라는게

솔직한 첫 인상이었다.

 

근데 이젠 알겠는데 입덧은 정말 무섭고 지긋지긋한 거다.

 

임신했다는게 딱히 떳떳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티를 낼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내 경우엔 입덧을 최대한 감추고 있는 상태였다.

아니 꼭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는 일이 아니더라도

그냥 집에서도 난 내가 입덧한다고 유세부리는 걸 받아줄 사람도 없었고

힘들다고 흐느적대며 누워있어봤자 밥 굶는 건 나 자신뿐인데 근데도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다.

입덧이란 건 실재하는 거라고.

그리고 입덧은 누가 열심히 써놓은 입덧에 대한 기록대로

그냥 귀엽게 우욱하며 배를 만지고 미소짓는 그런게 아니고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숙취상태에 빠져들고 처절하게 내장 속 끝까지 다 게워내고

그리고 엄청난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태다.

 

 

첫 2주는 참크래커와 토마토만 먹고 살았다.

입덧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읽어보니 이게 최선인거 같아 그렇게 먹고 살았는데

그덕인지 토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사실 메스꺼운 증상이 처음 생기고 이게 입덧이란 걸 알아차렸을 때 가장 무서웠던 게

구토를 반복하다가 전해질이상 상태로 집앞에 있는 우리학교 응급실에 실려가는게 아닌가 하는 거.

그래서 토하는게 무엇보다 두려웠고 안토하려고 이것저것 열심히 시키는대로 했는데

이 담백한 크래커를 아침에 먹고, 토마토를 한방울씩 주워먹으면 욕지기는 덜했다.

 

대신 2주동안 5Kg이 빠졌다.

 

그리고 굉장히 허기가 졌다.

내 몸은 완전 기아상태였고 머릿속에선 지방이 분해돼 케토산증이 돼 가는 몸 안의 상태가 그려졌다.

그무렵 우연히 집에 있는 기아에 관한 책을 흝었는데

아사라는게 고요한 죽음이 아니라

정말로 지리하게 지속되는 고통끝의 처절한 죽음이라는 말이 몸으로 이해가 됐다.

기아라는 건, 깡마른 아이의 큰 눈을 클로즈업해 찍어가서 전시돼가지곤 이해되지 않는 고통이다.

최소 열흘은 직접 굶으면서 이해해야 하는 고통이지

 

그리고 거동이 불편해졌다.

 

만성질환 환자들의 상태를 평가하는 것 중에 일상생활을 얼마나 수행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지수가 있는데

질병과 관계도 없는 그런 수치들이 왜 의미있는지 이제는 알것 같다.

뭔가를 먹지 못하고 몸이 카켁식해지면 그냥, 움직일 수가 없다.

청소,, 못하고 목욕,, 못하고,, 세수같은것도 하기싫어진다 몸에 힘이 없어서 손이 안 들어진다.

기말고사 준비와 논문 등등 이어지는 '해야 할 일'들이 없었다면

아무런 원동력도 없는 나는 그냥 침대에서 굶어죽어도 이상할바 없을거 같았다.

 

그리고 이런 울렁증과 허기가 반복되는게 사람을 지치게 했다. 몸도 마음도 다.

 

항암 화학치료를 받으면서 식사를 잘 못하고 구역질이 나고 하는게

환자의 삶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매일매일 생각했다.

환자들은 어쩌면 그저 메스꺼움때문에 삶에 대한 의지가 사그러들어갈지도 모르겠다고도 생각했다.

난 물론 가끔씩 뭔가 먹을수 있는 상태였으므로 내상태와 비교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이 고립돼 있을 어떤 고통스런 감각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소금기 있는 크래커를 입에 물어도 입에 단맛이 느껴질 정도로 크래커와 토마토에 물릴 무렵

우연히 냄새에 끌려 갈비탕을 먹었는데 그 무렵이 대략 입덧 3주차쯤이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단백질이 부족하다보면 흙이라도 주워먹는 이식증이 나타나는 것처럼

단백질 결핍상태에서 무작정 고기에 끌린거 같은데

그때는 오랜만에 느끼는 포만감이 정말로 행복해서 그래서 이제 입덧이 끝나는 건 줄 알았다.

난 원래 약간 웰빙을 추구하는 식단을 추구해와서

고기같은 건 별로 안 좋아하고 뭐 그런 종류 사람인데도

갈비탕을 시켜놓고 허겁지겁 고기를 뜯고

커피도 막 마시고(커피를 마시면 신기하게 일시적으로 울렁증이 가라앉았다)

한번은 갑자기 허기가 져서 밤중에 열심히 패스트푸드점에 뛰어가선 커다란 버거를 시키고

그자리에서 허겁지겁 먹는 듯하더니 결국 반도 못먹고 그대로 버리고 나오는...

신경성 식욕부진환자같은 행태를 보인적도 있다.

아무튼 덕분에 허기는 줄었지만 그만큼 먹은 것을 토해내는 일도 잦아졌다.

 

 

입덧이 대체 언제 끝날까..

12주라하기도 하고, 14주라 하기도 하고, 16주라 하기도 하는데

5주차에 입덧을 시작한 나에겐 정말 꿈처럼 먼 시간이라서

12월 한달은 대체 어떻게 하루가 가고 1주가 가고 한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힘들고 늦은 아침을 시작하면 하루종일 해야할 일에 대한 압박감과 메스꺼움과 허기에 시달리면서

먹을수 있는걸 찾아서 어떻게든 주워먹고 꾸역꾸역 몸을 움직이다가

할일을 남겨둔채 잠을 자도 스스로 용납될 만한 시간이 되면

역시나 차오르는 욕지기를 온몸에 감싸안은채 최소 한시간은 어지러움과 싸우다가 겨우 잠이 들수 있었다.

하지만 잠이 들면 뭐하나 다음날 아침이 또 굉장한 괴로움으로 시작될건데

이런 비관적인 생각

 

그러다가10주차에 들면서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적당한 음식을 적당한 양 먹으면 울렁거리지도 않고 토하지도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는 그 적정선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매일을 의식을 치루듯 음식을 먹었다.

일단 아침에 콘프레이크 종류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아침시간을 보낸뒤

10시쯤 편의점에 가서 참치마요네즈삼각김밥과 따뜻한 차를 사먹는다.

간단한 크래커 종류를 구비한 채 오전시간을 보낸 뒤

점심 때는 먹어도 될거 같은 음식을 열심히 생각해내서 그걸 찾아 먹는다.

저녁은 간단하게 빵 종류로 때운다.

이균형이 깨지면 그러니깐 좀 더 먹어서 포만감이 과하거나 좀 덜 먹어서 허기가 지거나

아니면 택도 없이 먹고 싶지 않은 걸 먹으면 곧바로 숙취상태로 접어들어거나 토하게 되니깐

먹는게 의식을 치루는 것처럼 조심스러워지고

또 항상'뭘 먹을까'를 생각하면서 뱃속에 걸신이 들어앉은 거 같은 상태로 지내는 것이다.

 

 

그래서 입덧이 언제 끝날까..

저런 조심스런 의식끝에 12주 쯤에는 입덧이 좀 가라앉나 싶어서 설렜는데

그 후 10흘 정도 또 굉장한 토악질에 시달렸다.

먹은게 늘어난 만큼 구토 횟수도 늘어났지만

그래도 초창기의 두려움만큼 구토라는 게 날 응급실로 이끌만큼 무서운건 아니었다.

그냥 좀 있다가 다시 먹을만한 음식을 챙겨 먹으면 되는 거다

 

이제 14주에 접어들었는데 지금도 가장 스트레스 받는게 '먹고 싶은 걸 생각해 내는 것'이다.

음식을 좀 먹을 수 있게 되면서는 음식에 대해 상상하는게 괴로웠다.

이 음식이 어떤 맛일까 상상하는 것조차도 때론 속이 울렁거리고

맛에 대한 상상이 잘 안돼서 상상하는 과정 자체가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또 가장 아쉬운건, 내가 선택한 음식이 거의 대부분 내 상상속의 맛이 아니라는 거다.

이게 정말 사람을 지치게 했다.

아무튼 14주차인 지금은 굉장히 살만하다.

난 밥도 먹을 수 있고, 카레나 커리도 먹을 수 있고, 멕시칸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중국요리 빼고는 거의 다 먹을 수 있다.

팥빙수라든가 맛있게 찬 음료들은 가끔 울렁거리는 순간에 정말 구세주다.

 

지금 생각으로는 아마 14,15주쯤이면 입덧이 끝나지 않을까 싶다.

입덧이 지나가고 나면 피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흡혈귀마냥

허기에 져서 식당가나 마트의 식품코너를 헤매던 나는 세상의 모든 음식을 폭풍 흡인해 줄거다.

그랬다간 임신중독증이 돼 버릴지도 모르겠지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라 뭔가 보상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태교..

정작 입덧의 원인인 태아와의 교감은 정신적이라기보다는 생리적으로 한것같다.

심하게 울렁증이 올라올때, 그러니깐 토한직후에 토한 기운에 더 토할것같은 기분이 드는 그 상황에

나는 내 위장보다는 아랫배를 다독이며 '괜찮아, 진정해, 괜찮아 괜찮아'라고 열심히 말을 했다

 

입덧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근본이유는 임신이지만 그 과정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일단 태반이 생성될 무렵에 소멸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태반 생성전에 임부의 몸상태를 주로 유지시키는 hCG가 원인일것이다,,,

hCG가 구토중추를 자극해서 그럴 것이다.. 그게 대체적인 이론인데,

이제 슬슬 입덧이 진정돼 가는 걸 보니 태아와의 신체적 교감(태반)준비도 거의 다 끝난 거 같고

이젠 먹는 족족 이녀석한테 다 빼앗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어제 문득 들었다.

평소 먹는 만큼 조금씩 먹었더니 배가 너무 빨리 고파져서..

그래서 이녀석한테 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더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더니

그간의 입덧이 무색하게 음식이 참 잘 들어가는 것 같다.

 

힘내야지

 

 

'ETOCETOR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안의 싸이언  (0) 2013.06.04
GDM  (0) 2013.04.13
그래 나도 서울이 좋다구  (0) 2012.11.07
여름이야기  (0) 2012.09.02
요즘 응칠  (0) 2012.08.31
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