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외래참관

 

다섯살쯤 된 남자어린이를 어른 두분이 데리고 들어왔다.

들어올 때부터 울고불고 소리지르고 난리라서

대체 어찌된 앤가 궁금해서 교수님 뒤쪽으로 얼굴을 빼고 보니깐

어른들이 직접 걷게 하면 애가 안 걸으려고 발버둥치고 바닥에 드러눕고

그냥 안겨오고 싶은데 걷게해서 그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었다.

 

 

보호자분들을 보니

남자분은 아버지처럼 보이는데

여자분은 엄마라기엔 연배가 좀더 높아보이고

그렇다고 할머니라기엔 남자분이랑 별로 안 친해보이고

외할머니 정도쯤 되려나

대체 어찌된 가족구성원인가 좀 이해가 안됐는데

 

알고보니 시설에 있는 아이라고 한다

생모가 있기는 한데

원래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지금도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 어떤지는 알수 없지만

어쨌든 분명 아이를 돌볼만한 상태나 상황이 아닐것이다

노래방에 도우미로 일을 나간다는데 아이를 만나러 시설에 올 때는 항상 술에 취해있어서

아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를 임신했을 때 술도 좀 마셨다고 하는데

그것이 지금 이 어린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쳐서 문제가 생긴것일지도 모른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애가...

계속 우는게 보호인들에게서 떨어져 걷지 않으려고 그러는건데

그냥 걷지 않으려고 떼쓰고 고집부리는 것일수도 있지만

뭔가 많이 결핍되고 그래서 계속 그... (첨엔 아버진줄 알았던)시설의 아저씨에게

안겨있으려는 걸거라는 그런 그런 내위주의 흔한 감상에 빠져들어서

어린이가 참 안스러워보였다.

 

그냥

아이를 잘.. 제대로 잘 키울 수 없다면

좀 안 낳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애가 생기고 그래서 낳게 되고

그렇게 자기가 원했던대로만 생각한대로만 뭔갈 하며 사는 건 아니겠지만

완전 인권이란 거 무시하고 극단적으로 비인간적 발언을 하자면

제대로 잘 키워주지 못할바에야

임신 못하게 하는 수술이라도 시켜서 애를 함부로 못 낳게 하면 좋겠다

국가는 인구감소에 대해

국가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양적으로만 어떻게든 늘려보려고 기를 쓰지만

원래 생명체에 있어 생식이란건 환경과 여건이 좋을 때 일어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뭔가 결핍이 있어선지 어때선지 몰라도

지금 저렇게 아저씨 품에서 죽어도 안 떨어지겠다고 보채는 애를 보라고..

 

애를 망쳐놓은건 바로 제멋대로 애를 낳기만 한 부모다...라는 식으로 비난하려고만 하는 말은 아니다

당장 나만해도 스스로에게 자신이 별로 없다

포유류가 자식을 키워가는 과정을 보면

어릴 때 애착관계를 잘 형성한 개체는 자식과도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만

제대로된 애착관계를 배우지 못한 개체는 자식과도 제대로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런 후천적인 결함을 후대로 계속해서 물려주게 된다.

이런 내용을 보고 나니깐 스스로의 정서상태에 대해서 뭔가 검증을 받고 싶고

검증되기 전까지는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것이다

내 인격적 결함을 그대로 똑같이 찍어줄까봐 하는 불안감

난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니깐 스스로를 너무 나쁘게 평가하는 걸수도 있지만..

암튼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다면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양육을 맡기는게 더 좋을수도 있는거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별 탈없이 자라겠지만

이 병원이란 곳에서 어린이의 대부분을 접하면서 보면

아픈애들이 참 많고

그래서 그런 어린이들을 보고 있다보면

자식을 낳고 키우는 건 정말로 온 정성을 다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태어난 후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도 

내가가진 가장 좋은 걸 다 모아서 줄수도 있는 그런..

 

옛날에 본 사극에서 애를 못낳아서 맘고생하는 중전이

흡월정(달의 정기를 빨아들이듯이 달을보며 기절할듯 숨을 깊이깊이 들이삼키는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하는 걸 보고 정말 웃겼는데

생명 하나를 만들고 키우는데

그렇게 하나에서 열까지 할수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한주였다.

 

 

아 혼자 딴생각하느라 정작 그 어린이 환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거 같다는 종류의 얘기가 오간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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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세계

2012. 9. 3. 12:02 from yS 2010▷2013

 

 

 

전에 외부병원 나갔을 때 화상환자를 봤었다.

병력기록지를 직접 보지는 않았고 중환자실 회진 때 과장님께 정황을 듣기만 했는데

그 환자는 특이하게 상반신, 그러니깐 몸통의 앞과 뒤, 양쪽 팔,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가피절제술과 피부이식을 한 후 중환자실에서 매일 드레싱을 하면서 경과를 보고 있는 상태였다.

드레싱을 할 때 보이는 몸의 아래쪽은 굉장히 젊은 사람의 피부로

피부에서 추정되는 연령대 때문에 이 사람의 화상이 더 안타까웠는데

과장님께 들어보니 이 분은 원래 고온 작업장에서 근무하던 사람인데

고온에서 일할 때 입는 쿨자켓에 실수로 산소가 채워지는 바람에

작업장에서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서 상반신만 화상을 입게 된거라고 한다.

flame burn은 기도의 화상도 살펴야 하는데,   

이 환자는 상반신 flame burn이라 당연히 기도쪽도 손상이 심할테고

보기에도 심각해 보이는 상반신의 피부 화상뿐 아니라 기도쪽 화상 때문에라도

앞으로를 장담하기가 힘들것이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느나란지는 잘 모르겠던 외국인 환자였는데

이 환자는 증례발표 담당환자라서 병력기록지를 볼 수 있었다.

83년생 린XX씨, 폭발로 전신화상을 입은 후 병원으로 실려왔다.

가피절제술 수술하는 걸 참관했는데

수술 중에 의료진들의 이야기..

자기 나라에서 결혼한 후 우리나라에 일하러 혼자 왔고, 일해서 번돈을 매달 송금하는 외국인 근로자

한국 사람들은 폭발위험이 있는 작업장에선 근무를 잘 하지 않으려하니깐

그래서 대신 그일을 맡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렇게 폭발로 화염화상을 입는 일이 잦아지는 거 같다고

앞으로 이런 사고로 실려오는 환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지 않겠냐는 등

 

난 사실,

외국에 놀러나갈 때 조차도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나 무슨사고가 있어도 내가 감수해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한국에서도 완벽한 치안 같은 건 보장할 수 없는데 외국까지 나가면서 무슨 그런걸 기대하냐 싶은거다.

그래서 소위말하는 위험지역에 선교를 나가거나 사업하러 가는 사람들이 불의의 사건에 휘말리게 될때도

최소한 사건의 희생자&피해자 본인 스스로는 자신을 동정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물며 외국인 노동자..

어차피 다른 나라에서 막일하는 거 감수하고 들어오는 거 절대 평등한 조건일 수 없고

남들보다 위험한 환경에서의 근무를 떠맡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자신에게 전혀 친절하지도 않고 오히려 여러가지 차별의 시선으로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의 나라를

밑에서 떠받쳐주는 일따위를 하게 될수도 있다. 

이런거 정말 슬픈일이다.

그래서 난 외국인 노동자같은 거 허용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사회를 위해 남보다 월등하게 위험한 일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별로 감사하지도 않는데도, 그 근로자들과 같은 사회에 있다는게

참을수없이 불편하다.

어떻게든 노동장벽을 넘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의 절박한 사정도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이 '자유로운' 세계는 대개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인 세계니깐

애초에 그 장벽이 굉장히 엄격해서 자유롭지 않으면 좋겠다.

 

수술하던 날 아침 회진 때는 그래도 화상부위의 심한 통증을 호소하던 린XX환자가

수술하고 이틀째 되는 날까지는 계속 sedation 상태로 아무 호소도 없이 누워만 있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

린XX씨의 예후가 어찌될런지 등에 대해서도 과장님께 여쭤보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잠시 마주치는게 전부인 환자들에 대해 이런 질문은 과도한 오지랖이다.

(이 외부병원은 실습기간은 2틀이다)

내가 걱정한다고 예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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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야기

2012. 9. 2. 22:13 from ETOCETORA

 

 

그러니까 때는 1996년 여름방학

하픈가 뭔가 하는 이상한 단체를 통해 지역학생들이 일본으로 캠프를 가는데 나도 거길 참가하게 됐다.

일정은 4박5일

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서 큐슈지역을 놀러다니는ㅋㅋ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처음 외국이란데를 나가보는 것이었으므로 정말 설렜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는데

 

그때 좋아하게 된 다른학교 남학생이 있었다.

집은 우리집 근처고 우리학교 근처인데 정작 학교가 굉장히 멀어서 버스로 한시간은 떨어진 곳..

캠프기간동안 '수줍은 마음에' 말한마디 제대로 못해봤던 게 굉장히 아쉬워서

그래서 때마침 여름보충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기회로 삼아

보충수업 끝나고 나오는 걸 혹시 볼까싶은 마음에

그 멀리 떨어진 남학교까지 맨날 찾아가선 정말 얼굴에 철판깔고 학교앞에서 기다리는 걸 일주일이나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학년은 이미 보충수업이 끝나서 그래서 학교에 등교를 아예 안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혼자 안달복달 하고 있던 걸 주위 친구들이 알게돼가지곤 남학생 이름을 알려줬더니

이름이 좀 특이해선지 친구 중 하나가 자기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바로 알아본 것이다.

지금 걔 우리학교 바로 밑에 있는 학원다닌다고 며칠전에도 거기서 봤다고 알려줘서

그래서 당장 학원에 주말반 하나 주중반 하나씩 수업을 신청을 하고 이제는 학원에서 얼쩡대다가

며칠 지난 후 겨우 학원복도에서 만나게 됐다.

우리학교 축제 언제냐고 나한테 쭈뼛 쭈뼛 물어본게 전부고 뭐 결국 아무 일도 안생기고 그렇게 지나갔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냥 뭔가 '성취감'같은 게 있어서 그걸로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어릴때의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건 이렇게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라서

따지고보면 좋아하는 감정에 빠진 자기 모습에 도취되는 게 전부인 것이다.

그러니깐 그 좋아하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될지 사람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야할지 모르고

기껏 사냥후 느끼는 '성취감' 비슷한 걸로 끝나는게 전부인거지

열정만으로 진심인 척 하지만 지속력은 1초(이경우엔 대략 2,3주?)밖에 안되는 얄팍한 진심이랄까.

 

그래도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를 돌이켜보면 수줍음과 서투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절이다.

1996년의 내가 조금만 덜 자기위주였다면 어른스러웠다면 뭔가 다른 이야기가 생길수도 있었겠지.

 

 

여기까지는 내가 친구들한테 마치 '나의 성공담'이라도 되는양 많이 떠들어댄 이야기고

그후의 이야기가 또 있다.

 

 

대학졸업 후 사회생활이란 것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시작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지나간 시절의 사람들을 돌아봤던 시기가 잠시 있었는데

그때 이 흔하지 않은 이름의 남학생도 내가 흝어내리던 그때 그시절 사람들의 리스트에 올라있었고

쉽게 찾아낸 남학생의 싸이에 로그인 하지 않은 상태로 실명을 밝히고 방명록을 남겼다.

'지난 10년간을 돌아보려는 것 뿐이며 절대 스토킹은 아니니 불쾌하게 생각하진 않았으면'이라고 

아무 의도도 없고 그저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만 글을 남긴 것일 뿐인데

며칠 뒤 피드백(이럴테면 답글)이 있나 싶어 다시 내가 남긴 글들을 흝어보다보니

이 남학생이 자기 싸이 배경음악을 그새 유리상자의 '사람찾기'로 바꿔놓은 거다.

나 자신이 그 남학생에게 있어 그시절의 누군가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나로인해 지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전염돼서 생긴 복합적인 향수로 그런걸수도 있고

아니면 그무렵 그 남학생이 어장관리하는 누군가들에게 그리움 컨셉처럼 보여주려고 한짓일수도 있지만

혹시나 내글때문에 그런 티나는 청승오글 선곡을 했다 하더라도

그래..

난 이런 일로 다른 사람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로 없다

나도 그런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고

또 그런 감정을 꾸미고 감추는 것보다 그냥 터는게

촌스럽지만 순수한 거니까.

난 그냥..

방명록을 남길 당시의 나나, 지금 이런 글을 쓰는 나나

전혀 심각하지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은채 그 시절의 이야기를 쉽게 떠들고 있는데

그게 또 당사자에게는 굉장히 아름답게 채색돼서 기억되거나 혹은

자기기준으로 아름답게 포장된 기억을 누군가에게 얘기해서 이용하거나

이런거...

이런거 살면서 너무 듣고 봐서 조금은 시시했다.

자기위주의 추억으로 아련돋는 것도 참 시시하고...

아니..

그래도 어디까지나 사는 건 자기 위주니깐 아무리 시시해뵈도 본인의 기분은 소중한 거다.

게다가 내가 혹시나 누군가의 기억속에서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면 그자체로 감사하다고도 생각한다.

대체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는지도 궁금하고 기억을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시시하다는 말은 아무래도 취소.

 

그 이후로도 호기심에 가끔 찾아들어가 봤지만

그 이후로 전혀 업데이트도 없고 노래는 그이후 계속 '사람찾기'로 돼 있는

그 남학생의 싸이.

부산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이제 신경과 레지던트를 끝냈을 테고 

지금쯤은 어디선가 공보의를 하고 있을텐데

분명 좋은 사람이고 좋은 의사일듯 함.

 

 

 

 

 

지금 이 얘기를 떠올린 이유는 DJ DOC의 여름이야기 앨범때문이다.

1996년 우리팀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버스를 타고 단체로 이동했는데

그때 한창 유행하던 DJ DOC의 여름 앨범이 계속 흘러나왔고

당시의 내 기분때문에선지 노래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고 호감도가 상승해서

그래서 캠프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당연히 그 테이프를 사서 열심히 들었다.

산걸 버리지도 않고 모아두는 내 습성상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름이야기 테이프는 남아있고

요전에 라디오에서 DJ DOC노래 얘기가 나와서야 다시 꺼내 들어봤는데

최소 10년은 안 들은 거 같은데 지금도 테이프 늘어지지도 않고 잘 나온다.

 

정리정돈의 습관이라는 책에는

사람들이 과거의 낡은 물건을 쌓아두는것에 대해 악순환을 부르는 집착이라고 하며

물건에 유효기간을 두고 버리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거 나한테는 별 의미도 없는데 그만 정리하고 버려야겠지.

하지만 부산에서 카멜리아호를 밤새 타고 후쿠오카 가보는 건 

부산 사는 동안은 한번쯤 다시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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