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전

2013. 5. 23. 22:44 from yS 2010▷2013

 

그러니까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나 상황이란게 있고 목표라는게 있는건데

 

 

나도 내가 밉살스럽게 보인다는 걸 알고 있다.

 

실습실에서 책펴놓고 공부하는 등의 행동이

 

수다떨면서 쉬는 애들의 신경을 굉장히 자극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아무튼 내 입장에선 출산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도 있고

 

일과 후에 집에가면 예전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더 지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자버리게 되니깐

 

그나마 병원에 있을때 빈시간이 생길때마다 공부를 해둬야겠다고 생각해서

 

밉살스럽게 보인다는 걸 알아도 그냥 공부하고

 

남들이 옆에서 떠들어대도, 그냥 떠드는 게 아니라 일부러 더 크게크게크게 웃어제껴도

 

고달픈 병원실습 중 그나마 학생들이 편하게 있을수 있는 이 실습실에서

 

'시끄러우니깐 조용히해라' 라는 등의 불평을 할 입장은 아니란 것도 알고 있으니깐 

 

아무튼 그런 소란도 내가 절박해선지 그럭저럭 견딜만해서 그냥 내 공부만 계속하는데

 

 

 

오늘은 무슨 전투라도 치른 기분이다.

 

내가 앉은 자리의 책상이 중심이 안 맞아서 흔들거리는데,

 

옆에 앉은 애들이 일부러 그걸 쳐 대면서 떠들어대서

 

그러면 난 그냥 그 자리를 뜨면 될건데 왜 난 거기에 버티고 앉아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시끄럽게 방해해도 공부할 수 있다며 그런 환경에서 버티는 것도 바보같고

 

그런 불편한 자리에서도 버텨내겠다고 하는 건 미련하게 오기를 부리는 거다.

 

애초에 남들 눈에 띄게 강의실에서 공부하지 말고

 

어디 병원 구석에 숨어서 공부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건데도

 

그냥 남들 눈치보면서 그렇게 숨는 것도 싫어서

 

괜히 미움받을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는 

 

'내가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서 공부하는게 싫어죽겠지만 그래도 해야돼 잉잉' 같은

 

'내가 지금은 이렇게 책을 펼쳐놓고 있지만 어제 집에가서는 바로 쓰러져 자버렸어 잉잉'같은

 

여자들스러운 자기변명이 왜 안되는 걸까.

 

 

 

 

베토벤은, 성격이 바로 운명이다 라고 말했다는데

 

그래 이 말은 정말 설득력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다들 자기 나름의 상황이 있고 각자의 목표가 있는데

 

애들이 이렇게 찌질하게 자기 눈앞에서 공부하는 걸 못견뎌하는 건 결국

 

자기만의 급한 마음이 있고, 그렇게 자기의 작은 세계안에서 지쳐 있기 때문이란 걸 알고는 있다

 

오늘 옆에서 굉장하게 떠들어대고 웃어제낀 애들 중 한명은

 

지난 주말에 학교 국시실에 혼자 와가지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찌다가 갔다.

 

얼굴이 벌개질 만큼 공부하느라 타올랐다는 말이다.

 

그런주제에 남이 공부하는 꼴은 못보는 그런 소갈머리는

 

결국 자기가 급하고 옆의 모두를 경쟁자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난 당신들을 경쟁자로 생각하지도 않는데

 

내 경쟁상대는 당신들이 아니라 바로 내 상황이고, 나 자신이고, 

 

가장 심리적 범위를 좁혀 봤자 기껏 나와 같은 병원에 지원할 다른학교의 학생들 정도일텐데 

 

왜 그렇게 자신의 쪼그라든 마음을 남에게 투사시키며 괴롭히는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정작 나는 또 왜 이렇게 쪼그라들어 있는 애들을 상대로

 

그런 정신적인 전투를 유발하고 또 지속시키는 건지도 그것도 참 모르겠고

 

 

 

오늘로써 실습일정은 다 끝났으니 실습실에서 시간보낼일이야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다음부턴 안그래야지

 

성격이 운명이다 라는데

 

이런 전쟁같은 운명은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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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