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2013. 6. 30. 20:58 from yS 2010▷2013

초등교육을 받을 당시

그때 예상치 못하게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다른 친구들은 당연하게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산을 챙겨가지고 마중을 나오는 듯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 10분 15분 걸리는 거리 뭐 얼마나 멀다고 비좀 맞을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신건지

우산같은 거 잘 챙겨 갖다주는 스타일이 아니셨다.

예고없는 갑작스런 비 뿐 아니라

애초에 일기예보에서 비올 확률이 높다고 하니 우산을 가져가라 와 같은 챙김도 거의 하지 않는

방목형의 가정교육을 지향하시는 분

그래서 비오는 날 하교길에 비를 맞고 집에 가는 일이 꽤 많았던 거 같은데

이게 참...

서럽다고 하기에는 너무 서글픈 뉘앙스의 표현이라서 그때 기분에 딱 맞지 않고

뭐라고 해야 되지..

비맞고 돌아다니는게 창피했다고 해야 되나

아무렇게 팽개쳐져 있다는 걸 비오는 거리에서 남들이 다 보고 알게되는게 부끄러웠던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중고교로 넘어가면서 그렇게 우산 챙김받는 애들도 별로 없고

사실 뭐 비 좀 맞고 다니느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우산따위 나한테 별거 아닌게 돼 갔다.

 

그리고 대학졸업 후에 엄마에게 미리 공언한대로

집으로부터의 경제적 도움은 완전 끊고 내 힘으로 내 살림을 꾸리게 됐는데

내힘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 생필품 사러다니기 곤란한 지역 정도에나 있어서

이사 첫날, 버스타고 멀리까지 가서 이것저것 수납장이라든가 생활용품을 사들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근데 무슨 보따리 장수도 아니고, 혼자 거두기엔 확실히 많은 짐(수납장 포함)을

택시도 아니고 버스에 위태롭게 실은채 끌어안고 오자니

버스가 급커브를 도는 순간 내가 들고탔던 짐들이 버스안에 막 흩어져 버릴 뻔하게 된 거였다.

그 순간 어떤 여자분이 날 쳐다보지도 않은채 짐이 흩어지는 걸 몸으로 막아줬는데

그제서야 알뜰하고 씩씩하게 생활전선을 헤쳐나갈 것에만 집중하느라

거의 잊고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내가 궁상맞고 불쌍하게 보이나보다 와 같은

옛날에 어릴 때 비맞고 집에 갈 때 느꼈던 창피함과 비슷한 감정을

그 친절한 여자분을 통해 새삼 되새기게 된거였다.

 

보살핌과 같은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지지를 통해서 안정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예를들어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가거나 출산할 때 남편이 옆에 있지 않아서 섭섭하다는 둥

그런 글들을 굉장히 많이 보게 되는데 

나로서는 참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지속적인 보살핌과 지지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그런 보살핌을 잘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게 내 경우와 같이 시선의 창피함때문에 생겨난 외부적인 방향에서의 필요인지

그런거완 별개로 내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필요인지는

사람마다 좀 차이가 있겠지만

 

요즘 날씨가 참 오락가락 하는데 

얼마전 집에 오는 길에도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셔틀버스에서 내리고 집에 가자니, 문득 수박이 먹고 싶어서 마트까지 가서 수박을 사들고

그리고 비오는데 수박이 달지 않으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왠 친절한 아가씨가 '우산 같이 써요'라면서 다가오길래

'노땡큐 ^^'라고 말하고 그냥 걸어갔다.

배도 불러가지고 우산도 없이 비맞고 수박 들고 (낑낑대는 듯이 보이게) 걸어가는게 안돼보였나보다.

그러고 생각난게 앞서말한 어릴 때 우산없이 비맞으며 집에 가곤 하던 일인데

역시나 어릴때 내생각대로 남들은 어린이가 비맞고 돌아다니는 걸 불쌍하게 본 것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불쌍하게 쳐다봤을거라고

 

그래서 난 최소한 초등학교 때 까지는 그렇게 방목형으로 애의 자립심을 북돋지는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에 대해 이동진씨가 '아이들만의 외로움'이라는 표현으로 평점을 올려놨는데

그말대로다.

내가 벌써 잊어버릴똥 말똥 하고 있는 내 어릴때의 외로움을 자꾸 기억해내야지

그래야

이미 어른인 내 기준의 꿋꿋함으로 애를 외롭게 몰아대는 일이 없을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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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