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난 사자

2016. 4. 16. 14:53 from ETOCETORA

저번달 주말에 은총이가 좋아하는 동물원 나들이를 갔었다.

사자도 보고 호랑이도 보고 기린도 보고 원숭이도 보고 코끼리도 보고 그러려고 서울대공원에 갔는데

우연히 서울대공원 동물들 이사가는 걸 구경하게 됐다.

 

서울대공원에 사자 개체수가 너무 많아서 숫사자 9마리를 두바이에 새로짓는 동물원으로 보낸다고

 

며칠전에 vj 특공대에서 또 이 이사과정에 대한 방송을 하는 걸 보면서 다시 검색해봤더니

이번에 두바이로 간 숫사자 9마리는 모두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줄곧 여기서 살았으며

무리의 우두머리로 가장 나이가 많은 '스카'는 2006년생이라고 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던 2006년 무렵에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굉장히 자주 갔었다, 한달에 한두번쯤.

가면 물론 꼭 동물원 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인공포육실에 가서 호랑이나 사자 아기들을 보고 오곤 했는데

2006년 생 아기스카를 그무렵 분명 봤을 것이다.

'아기 사자 커엽네'하며

 

 

 

 

동물원은 애증의 공간이다.

좀만 머리커졌다 하면 동물원의 존재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거고 나도 그랬는데

한참 그렇게 괴로워하며 동물원에 갈까 말까 하는 마음으로 갈등하던 것이

소설 속 파이의 동물원변론(안정된 먹이공급과 변함없이 유지되는 자기 영역)을 듣고서야 좀 진정이 돼서

어쨌든 이미 존재하는 곳,, 사람들이 많이 봐줘야 거주환경이라도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주 가서 보는 쪽이 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왕 동물을 가둬놓고 필요할 때 보기로 한거라면 깊은 관심을 보이면 좋겠다.

옛날에 일본어느동물원이 망하면서 서울대공원으로 코끼리,, 사쿠라라는 녀석을 보냈는데

그무렵 텔레비전에서 보기로..

그 동물원이 있던 지역의 시민들,아저씨나 어린이들이 코끼리 떠나는것에 대해서 배웅의 인사를,,

사쿠라 라고 이름을 불러주며 하는게 정말 낯설고 또 신기했었다.

진짜로 이름을 아는 건가?방송용으로 한번 불러본걸까.. 그렇다 해도.

얼마전에는 또 일본, 어느 동물원에서 하마가 30년동안 살다가 죽은 것에 대해 시민들의 추모인터뷰가 나왔는데

일본에서 태어나 줄곧 여기 동물원에 갇혀 있다가 죽은 동물의 사연을 되새기면서 애도하는 모습이

여전히 동물원에 대한 태도를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나에게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줬다

 

동물원에 자주 갈뿐아니라, 그 동물들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여기왔고 어떤 이름으로불리고,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고

이렇게 관심을 꾸준히 그리고 깊이 가져줘야 하는 거구나 하는.

 

물론 그런다고 해서 동물이랑 내가 어떤 실질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 실제로 실질적으로 동물원이 동물이 나아지는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태도의 차이가 마음 자세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그런 변화가 사람들 사이에 조금씩 퍼지면

동물들에게 정말 좋은 게 뭔지, 동물원이 꼭 필요한 건지..

그때쯤 가면 좀 더 나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가 싶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아니라 우리 은총이 이야기다.

 

 

 

애랑 어떻게 놀아야 될까, 놀아줘야 될까 하는 고민의 출구로 동물원을 선택하는 부모들은 참 많은데

그래서 아직 아기인 동물들을 어린이들 품에 안겨주며 마찬가지로 아기인 동물이 받을 스트레스와 감염 위험은 신경도 안쓰고

그저 우리 아기의 잠깐의 즐거움과 현장경험 늘린 것에 대한 만족만 얻고 돌아가는

그런 행태가 정말 너무너무 흔한 거 같다.

동물 팔아 장사하는 입장에서야 사람들이 만져서 약해진 동물들은 수익내고 버리면 되는 거니깐

그렇게 어린이들의 손이 동물들을 학대하는데도

그걸 어린이 본인도, 부모인 어른들도 신경 안쓴다는 건 정말 말도안된다.

 

한번 보고 지나칠 동물이 죽는 거랑, 내가 아는 누구가 죽는 다는 건 정말 다른 의미니깐

그래서 이왕 동물원 데려가기로 결심했다면

깊이 알게 해주는게 정말로 중요한 거 같다.

 

은총이의 말하는 강아지 장난감은 사촌언니한테 떼써서 뺏어온거라 처음부터 낡아있었는데

한 1년쯤 좋아하며 갖고 다니다보니 결국 다리 한쪽이 삐걱대서 고장나버렸고

그와중에 내부가 기계라 세탁도 할 수 없어서 더러워지고만 있는 정말 처치곤란이었는데

하루는 은총이가 장난감 가게에서 새 강아지 봉제인형을 사달라고,

집에있는 멍멍이는 다리가 망가졌으니깐 새거 사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서야

망가진 강아지 장난감 내부의 기계를 다 뜯어내고 내부를 솜으로 채워서 다시 튼튼한 강아지 봉제인형으로 변신시켜 줬다.

 

분해해보니 털 원단도 싸구려고 마감도 조잡해서 이런 중국산 장난감 우리애가 더이상 갖고 놀게하긴 싫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1년이나 좋아하고 정이 들었던 장난감인데 다리가 망가졌다고 다른 멍멍이로 바꿔버린다거나 하는

그런 태도를 우리은총이가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건 정말 끔직했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봉제인형으로 개조해서 돌려준거다.

튼튼해져서 돌아온 멍멍이를 은총이는 다시 좋아하고 있다. 다른 멍멍이 사달라고 하지도 않고.

 

 

앞으로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가도 그냥 아이에게 경험만을 주는게 아니라 가능한 관계 맺게끔 그렇게 노력을 할것이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연간 회원권 정도는 끊어줘야...ㅎㅎ

 

 

 

 

 

 

 

 

두바이로 간 스카와 다른 숫사자들의 사연.. 그러니깐

한국의 동물원에서 태어나 10년이나 여기서 지내며 서울시민들의 주말을 함께해준 사자가

사막의 동물원으로 마취총까지 맞고서야 기절한채로 겨우 상자에 실려 떠나갔는데

여기 한국은 사자가 떠나든가 말든가 신경도 쓰지 않네..

 

이런 내러티브를 내가 분명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본거지...도무지 기억을 못해내고 한 이틀 고민하다가

겨우 떠올랐다.

 

boro의 '오사카에서 태어난 여자'

 

 

 

 

 

고등학생때 한창 일본노래로 일본어 공부하던 시절

당시 일본의 hot한 유행가들보다도 이런 아재스런 노래들이 더 좋았던 건 아마도 내가 공부를 위해 '가사'를 들으려다보니

가사좋은 80년대 노래가 좋았던 거지 결코 내 취향이 아재스러운 건 아닐것이다.

서던 올스타즈, 차게 아스카, 드림즈 컴 트루 등은 한국에서도 유명하다보니 대학이후에도 계속 찾아들어서 알았는데

boro 이분은 한국에서 그닥 인지도가 없다보니 그동안 완전 잊혀져 있었던 거다.

 

 

 

아무튼 아기사자는 떠나가버렸고

난 내 고교시절을 함께한 아재스런 노래를 되찾았다

 

언젠간 나도 두바이 사파리에 꼭 가볼테니깐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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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가...

2016. 2. 12. 02:49 from ETOCETORA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에 대해 '진심을 담아' 운운할 때마다...

'진심'을 표현하겠다는 말 자체는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진짜'처럼 보이도록 하겠다는 뜻에 본인 의지를 좀 장식해서 말한 것에 지나지 않아서

그래서 '진심'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상투적인 말이 돼버리긴 했구나 생각했다.

 

그에비해 전에 강동원이 어디 인터뷰에서 연기를 할 때는 그 배역에 대해 '상상'을 한다 했고

얼마전에 류준열 어디 인터뷰에서는 연기를 할 때 주변에 그 배역같은 사람을 '관찰'을 한다 했다.

 

상관격 강동원이 상상으로 표현에 집중한다는 사실과 인수격 류준열이 관찰로 수용에 집중한다는 사실에

무릎을 쳤다고.

와... 하필이면 딱 사주 생긴 모양대로 행동을 해서 사람 마음 설레게 하나 라고.

 

 

 

사주에 대해 얘기를 하는 건 참 조심스러운데

그래서 남앞에서는 사주를 봐주겠다느니 당신 사주가 어떻다느니 그런말은 왠만해선 안한다.

어차피 그러려고 배운것도 아니고 이건 결국 개인 믿음의 문제고

난 그냥 내 필요에 맞춰 쓸만한 걸 쓰겠다는 쪽이라서.

 

 

비슷하게 혈액형 얘기가 있는데

혈액형성격론에 대해서 바넘 효과인가 하는

'보편적 심리특성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경향' 같은 그런 현상의 결과일 뿐이라고

그렇게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만들어진 재료_항원&항체_가 다르니 성격에 차이가 있는 것도 당연한거죠'라고 말씀하시던

학부 때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님이라든가

'혈액형에 따라 성격에 차이가 좀 있기는 한거 같은 걸 보니 혈액형 결정 유전자와 성격관련유전자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씀하시던 고등학교 때 생물선생님 같은 분들도 있는 것이다.

 

결국 자기가 어떤 신념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인것이다.

 

혈액형 성격론이 바넘 효과로 인한 자기암시일수도 있지만

우성론에서 시작됐다는 태생적인 약점을 가진 이 성격론이

실은 정말로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적인 면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바넘효과라는 말에 의해 '물리쳐'져 버린 것 외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을 100프로 부정할 만한 근거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바넘효과라는 심리론을 근거로 혈액형 성격론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어떤 '가능성'을 어떤 심리학 이론의 훈수에 맞춰 그냥 '버린'거라고도 할 수있다.

발견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만 얻을 수 있는 결과인데 그걸 그냥 버린셈이다.

 

사주같은 운명론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믿기 싫은 사람들은 믿지 말라지,

그래도 나라의 지도층들이 수백년 넘게 비밀스레 이용하고 조심스레 이론을 닦아온 이 운명방정식을

'근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던져버리는 것 같은 우를 나는 결코 범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의 식자층들도 평소에는 성리학같은 이성적 논리적인 학문을 하지만

정계에 나가야 되거나 하는 등의 일신의 변동에 있어서는 명리학,

즉 사주나 주역같은 占의 의견을 빌렸다고 하는데

그런 정도로 활용하는 것 까지가 딱 적당한 것 같다.

전에 책에서 본대로 말하자면

결정에 있어서는 사리판단의 사판과 이판, 이성적 판단과 직관적인 판단의 조화가 필요하며,,,,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는 예측 가능한 것들에 대한 계산적, 이성적인 판단이 위주이지만

그것만으로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중요한 결정, 과연 나설 때인지 물러설 때인지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내 머리만이 아닌 직관적인 어떤 것에도 절반쯤은 몸을 기대볼만하다고 생각한다고.

인간은 불완전 하니깐, 논리와 이성만을 100프로 신뢰하진 못하겠고

그래서 사주를 본다.

 

 

 

한국에서 사주와 같은 운명학의 위상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뜻밖에 병원에서 명리학의 위세를 느끼고 조금 놀랐다.

그러니깐 분만을 앞두고,, 나만해도 당연히 예정일 주변의 일주를 통해 태어날 아기의 사주를 예상해 보기도 했고

실제 진통이 온 날짜에는 또 시간을 봐가면서 머릿속에선 계속 아기의 사주를 그리고 있었다.

진통끝에 눈앞이 노래질 때가 돼서야 아기를 낳는 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건 잘 모르겠고 그냥 분만 직전까지도 머릿속에서는 다음 시간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고.

나만 그런건 당연히 아니고 제왕절개처럼 출생일과 시간을 정할 수 있는 경우의 산모들을 수술실로 이동시킬 때도

지금 들어가면 몇시까지는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거죠?

오전중에는 낳을 수 있는 거죠?

와 같이 출생시간에 대해 산모들이 굉장히 민감해 했다.

그녀들은 진통이 오고 수술과 같은 대부분 난생 처음 겪는 큰일을 앞두고도 태어날 아기의 사주를 신경쓰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어디 철학원에 가서 받아온 날짜대로 수술일을 정했을 것이고

그 날중에도 몇시 몇시 사이에 낳으라는 얘기를 듣고 수술시간도 정했겠지

물론 병원에서 산모가 원하는 그 시간에 딱 맞춰지기는 힘들다.

그래서 보통 병원에서도 '시간은 힘들지는 날짜는 원하시는 대로 해줄테니 분만일 받아오세요'와 같이 말한다.

 

뭐 엄청 대단한 사주를 가진 애를 낳겠다고 그렇게들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게 또 부모 입장이 되면, 평소에 자기 믿음체계에 속하지 않던 어떤 부분들도 갑자기 중요해지기도 하나보다.

역사속의 사육신 성三問은 할아버지가 태중 아기의 수명이 짧을걸 예상하고

기어코 그 짧은 수명을 벗어나게 하려고 애를 늦게 더 늦게 태어나게 하려했지만 결국 애가 밀려나왔다는 야사도 있는 것처럼,,

 

 

 

은총이는 식상국을 이루고 홍염살에 도화살까지 있는 사주를 타고 났는데

조선시대라면 딴따라,,, 혹은 기생팔자 라고 불리게 될만한 그런 살들을 깔고 있어서 생각할수록 걱정이된다.

애가 공부도 안하고 어려서부터 막 빗나가고 그러면 어떡하나 뭐 이런 엄마스런 걱정인데

나와는 애초에 사주 모양자체도 너무 다르고

평소에 이미 이런식의 사주를 가진 사람들과는 서로 이해못하겠지라고 지레 짐작하며 한편으론 편견이 있기도 해서

그래서 더 어찌할바를 몰라했던 것이다.

당장 하라는 거 싫다고 벌써 자기 주장 내세우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결정도 쉬운일은 아니다

책에서는 자기들 말이 옳다고 이것저것 방법을 제시하는데

결국 자기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게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는 또 역시 사주라는 도구가 어느정도는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

도움이 된다 안된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난 이용하겠어.

 

 

 

내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생일을 보고 그걸로 사주를 헤아려 볼 때마다

그사람들이 어떻게들 행동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런 시기에는 나빴고 좋았고를 보면서

은총이가 어떻겠구나 어떻게 애를 끌어나가야 겠구나 하고 얼마나 계속 생각하는지 모르겠지 졍아

혹시 사주모양 다른대로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이 될까봐 그것도 정말 마음이 쓰이고

그래도 내가 미리 알고 있으니깐 더 이해하고 답답하지 않은 엄마가 돼야지 하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어.

인수가 멀리 있어서 계속 엄마가 그리울 사주구나 싶어서 마음이 짠하기도 하지만

조후로는 크게 도움이 되니깐 그래도 애한테는 멀게나마 꽤 도움이 되는 엄마가 되겠지 하는 기대도 하고.

진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

마음은 그래도 이리 애틋했다며  미리 떡밥 뿌려두는 것 좀 보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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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2015. 12. 19. 18:33 from ETOCETORA

 

 

 

 

1988년은

서울출장가는 아빠한테 만화잡지 보물섬 광고에서 본 내키만한 호돌이인형을 사달라고 해뒀으나

아빠가 전혀 신경도 안쓰고 안사갖고 와선 엉뚱한 변명이나 해서

섭섭한 맘에 최소 며칠간은 삐뚤어지게 굴었던 해일 것이다.

올림픽이 열렸다곤 하나 그건 '서울' 올림픽이었고 어쨌든 어린이한테는 올림픽같은건 사실 별로 중요한 사건은 아니었다.

 

대학1학년 때부터 같은 동아리를 하면서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는 집이 경기도 어딘가였고 

대학교를 서울로 오면서는 쌍문동에 있는 경기학사에서 지냈었다.

걔가 누군가에게 사는 곳을 말할 때, '쌍문동이요' 라고 말하는 모습은

일일드라마속 서울아줌마들이 전화받으면서 '네, 효자동입니다' 라는식으로 동이름을 말하던 모습들과 겹쳐지면서

한편으론 '경상도 사람들은 쌍시옷 발음을 못해'라는 편견에 대한 반발심으로

꼭 '쌍'문동이라고 살짝 되뇌이곤 했다. 걔가 '쌍문동이요'라고 말할 때마다 .

 

전에 풀모 돌 때 처음 오리엔테이션 받느라고 풀모 2년차 선생님 쫓아다니면서 헥헥대고 있는데,

문득 사는 곳을 묻더니, 자기는 원래 '쌍문동에 살았다'며 '고길동네 집이 있던 동네'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그때는 둘리배경이 쌍문동인줄도 모르고 그래서 둘리의 빙하가 저~기 한강이 아니라 아마도 중랑천으로 떠내려왔을 거라는

(말도안되는) 사실도 전혀 모르는 때였지만

그런 내용을 덧붙여서 자기신상을 얘기하는걸 듣고있자니 갑자기 그 사람 자체가 너무 재밌어 보여서

그래서 그후로는 이것저것 편하게 물어보면서 잘 지냈다

...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이런 필살기 같은 자기소개가 있으면 참 좋을 거 같다.

 

 

 

1988...

80년대라니 참 많이도 우려먹었을 구린 시절이라고

정말 이 시리즈는 더는 안볼거라고 진작 생각했지만

포털 뉴스를 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드라마 스토리에 노출되고..

그래서 네이버캐스트로 어찌어찌 주요장면만 계속 봐오다가

어느날 우연찮게 당직이 여유롭던 날에 결국 티빙 결제하고 그때부터 다보고 있다.

 

90년대 응답시리즈랑은 달리 80년대는 분명 life style이 달랐다는 것에 포인트를 맞춰서

정이 넘치던 이웃사촌 얘기가 나오니깐 그건 그대로 좋은 거 같다.

근데 이웃끼리 오손도손 잘 지내던 얘기를 보다보면.. 참 ,, 좋은 의미로,,,인지 뭐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짐.

 

나도 어릴 때 골목을 끼고 살았고 골목안에 애들끼리 서로 언제부터 알았는지 모르게 자연스레 친구로들 지냈었는데

그게 4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사라졌다.

물론 그당시 아파트는 아파트 단지도 자그마했기 때문에

거기서는 거기나름대로 또 쉽게 어울리는 또래가 금세 생기긴 했으니

골목길 시절만은 못하지만 요즘의 아파트 단지안에서 어린이들이 간신히 얻는 공간과 인맥의 지분과는 비교안되게 좋았긴하지

하지만 대학생이 돼서 서울로 오고,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그때부터 남일에 간섭하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는게 나의 스타일이고 내 나이대의 자연스런 행동인 줄 알았는데

나만 변한게 아니라 남들도 다들 그렇게 변해가더니

어느샌가 돌이킬 수 없는 모두의 삶의 방식이 돼 있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드라마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한지붕 세가족같은 별스럽지 않은 어떤 장면들을 보다보면

그냥 이대로 더이상 멀리가지 않고 멈춰 버리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아무튼 드라마를 볼 때는 과도한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드라마에 기빨리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모이는 드갤에 가보면

계속 러브라인에만 정신이 팔려서 다음주에는 분명히 뽀뽀한다, 스킨쉽을 보여달라..고

로맨스 소설이나 야설같은데 나온 뻔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내용을 재현,

그래..  재현하는 걸 줄기차게 요구하며

주인공의 감정선은 이러저러하다며

내 감정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마당에 드라마 캐릭터 감정까지 한땀한땀 따라가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분명 자기가 캐치하고 싶은 감정선 한땀한땀만큼 더 촘.촘.히. 기를 뺏길것이다.

나도 드라마 보면서 이런짓 많이 해봐서 알지만 그런 건 별로 좋지 않다.

당장 저번주 이번주 가족위주의 조용한 에피소드가 나오면서 러브라인이 종적을 감추니

드갤에는 분노와 원성으로 도배가 되며 도배하는 노력만큼 에너지가 팍팍 소진되고 있겠지만

난 이번에 러브라인타며 기빨리기보단 시대상을 음미하며 '인생 멈추고 싶어지네'라고 오히려 초연해져서

객관적으로 드갤모니터링이나 하며 여유로울수 있으니 참 좋다.

 

 

 

OST가..

1997때는 정말 막만들어서 그냥 OST 갖다쓰더만

1994 때는 좀 되겠다 싶은 드라마니깐 다들 편곡 잘해서 제대로 좀 올라가보자 애를 쓴 티가 났는데

1988때는 어쨌든 숟가락만 올리면 음원차트에 오르는건 당연지사라 그런지

그냥 원곡그대로 거의 다시 부른 느낌.. 오히려 원곡이 더 나은 곡이 대부분 같다.

 

 

 

 

재밌는게 변진섭 씨 노래 중에 '새들처럼'이란 노래.이곡도 아마 88년도에 나왔을텐데,,,

가사를 보면 회색빌딩 속을 벗어나고파 뭐 이런 내용으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 따뜻한 80년대가 8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회색이였구나 싶어서 조금 아이러니하다.

어느 시대에나 외로운 영혼들은 있어서 그런거겠거니 싶기도 하지만

사실 도시경관에 신경쓰지 않고 개발개발을 열심히 하던 그시절의 도시 색깔은

옛날 사회주의 나라들처럼 진짜 회색빛이긴했고

그에비해 현재의 한국 거리는 그때와 비교도 못할만큼 다채롭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방구석에 들어앉아서 80년대 배경 드라마에 목매고 있어 ㅋ

 

80년대는 거리는 회색빛이어도 대다수 사람들 마음은 해바라기 색깔인 시절이었나보다.

그렇게들 생각하는 거겠지 다들.

 

 

 

 

♬ 불빛없는 거릴 걸으며 헤매이는 너에게 꽃한송이 주고 싶어 들녘

 

이 노래가사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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