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2015. 12. 19. 18:33 from ETOCETORA

 

 

 

 

1988년은

서울출장가는 아빠한테 만화잡지 보물섬 광고에서 본 내키만한 호돌이인형을 사달라고 해뒀으나

아빠가 전혀 신경도 안쓰고 안사갖고 와선 엉뚱한 변명이나 해서

섭섭한 맘에 최소 며칠간은 삐뚤어지게 굴었던 해일 것이다.

올림픽이 열렸다곤 하나 그건 '서울' 올림픽이었고 어쨌든 어린이한테는 올림픽같은건 사실 별로 중요한 사건은 아니었다.

 

대학1학년 때부터 같은 동아리를 하면서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는 집이 경기도 어딘가였고 

대학교를 서울로 오면서는 쌍문동에 있는 경기학사에서 지냈었다.

걔가 누군가에게 사는 곳을 말할 때, '쌍문동이요' 라고 말하는 모습은

일일드라마속 서울아줌마들이 전화받으면서 '네, 효자동입니다' 라는식으로 동이름을 말하던 모습들과 겹쳐지면서

한편으론 '경상도 사람들은 쌍시옷 발음을 못해'라는 편견에 대한 반발심으로

꼭 '쌍'문동이라고 살짝 되뇌이곤 했다. 걔가 '쌍문동이요'라고 말할 때마다 .

 

전에 풀모 돌 때 처음 오리엔테이션 받느라고 풀모 2년차 선생님 쫓아다니면서 헥헥대고 있는데,

문득 사는 곳을 묻더니, 자기는 원래 '쌍문동에 살았다'며 '고길동네 집이 있던 동네'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그때는 둘리배경이 쌍문동인줄도 모르고 그래서 둘리의 빙하가 저~기 한강이 아니라 아마도 중랑천으로 떠내려왔을 거라는

(말도안되는) 사실도 전혀 모르는 때였지만

그런 내용을 덧붙여서 자기신상을 얘기하는걸 듣고있자니 갑자기 그 사람 자체가 너무 재밌어 보여서

그래서 그후로는 이것저것 편하게 물어보면서 잘 지냈다

...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이런 필살기 같은 자기소개가 있으면 참 좋을 거 같다.

 

 

 

1988...

80년대라니 참 많이도 우려먹었을 구린 시절이라고

정말 이 시리즈는 더는 안볼거라고 진작 생각했지만

포털 뉴스를 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드라마 스토리에 노출되고..

그래서 네이버캐스트로 어찌어찌 주요장면만 계속 봐오다가

어느날 우연찮게 당직이 여유롭던 날에 결국 티빙 결제하고 그때부터 다보고 있다.

 

90년대 응답시리즈랑은 달리 80년대는 분명 life style이 달랐다는 것에 포인트를 맞춰서

정이 넘치던 이웃사촌 얘기가 나오니깐 그건 그대로 좋은 거 같다.

근데 이웃끼리 오손도손 잘 지내던 얘기를 보다보면.. 참 ,, 좋은 의미로,,,인지 뭐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짐.

 

나도 어릴 때 골목을 끼고 살았고 골목안에 애들끼리 서로 언제부터 알았는지 모르게 자연스레 친구로들 지냈었는데

그게 4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사라졌다.

물론 그당시 아파트는 아파트 단지도 자그마했기 때문에

거기서는 거기나름대로 또 쉽게 어울리는 또래가 금세 생기긴 했으니

골목길 시절만은 못하지만 요즘의 아파트 단지안에서 어린이들이 간신히 얻는 공간과 인맥의 지분과는 비교안되게 좋았긴하지

하지만 대학생이 돼서 서울로 오고,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그때부터 남일에 간섭하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는게 나의 스타일이고 내 나이대의 자연스런 행동인 줄 알았는데

나만 변한게 아니라 남들도 다들 그렇게 변해가더니

어느샌가 돌이킬 수 없는 모두의 삶의 방식이 돼 있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드라마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한지붕 세가족같은 별스럽지 않은 어떤 장면들을 보다보면

그냥 이대로 더이상 멀리가지 않고 멈춰 버리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아무튼 드라마를 볼 때는 과도한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드라마에 기빨리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모이는 드갤에 가보면

계속 러브라인에만 정신이 팔려서 다음주에는 분명히 뽀뽀한다, 스킨쉽을 보여달라..고

로맨스 소설이나 야설같은데 나온 뻔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내용을 재현,

그래..  재현하는 걸 줄기차게 요구하며

주인공의 감정선은 이러저러하다며

내 감정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마당에 드라마 캐릭터 감정까지 한땀한땀 따라가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분명 자기가 캐치하고 싶은 감정선 한땀한땀만큼 더 촘.촘.히. 기를 뺏길것이다.

나도 드라마 보면서 이런짓 많이 해봐서 알지만 그런 건 별로 좋지 않다.

당장 저번주 이번주 가족위주의 조용한 에피소드가 나오면서 러브라인이 종적을 감추니

드갤에는 분노와 원성으로 도배가 되며 도배하는 노력만큼 에너지가 팍팍 소진되고 있겠지만

난 이번에 러브라인타며 기빨리기보단 시대상을 음미하며 '인생 멈추고 싶어지네'라고 오히려 초연해져서

객관적으로 드갤모니터링이나 하며 여유로울수 있으니 참 좋다.

 

 

 

OST가..

1997때는 정말 막만들어서 그냥 OST 갖다쓰더만

1994 때는 좀 되겠다 싶은 드라마니깐 다들 편곡 잘해서 제대로 좀 올라가보자 애를 쓴 티가 났는데

1988때는 어쨌든 숟가락만 올리면 음원차트에 오르는건 당연지사라 그런지

그냥 원곡그대로 거의 다시 부른 느낌.. 오히려 원곡이 더 나은 곡이 대부분 같다.

 

 

 

 

재밌는게 변진섭 씨 노래 중에 '새들처럼'이란 노래.이곡도 아마 88년도에 나왔을텐데,,,

가사를 보면 회색빌딩 속을 벗어나고파 뭐 이런 내용으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 따뜻한 80년대가 8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회색이였구나 싶어서 조금 아이러니하다.

어느 시대에나 외로운 영혼들은 있어서 그런거겠거니 싶기도 하지만

사실 도시경관에 신경쓰지 않고 개발개발을 열심히 하던 그시절의 도시 색깔은

옛날 사회주의 나라들처럼 진짜 회색빛이긴했고

그에비해 현재의 한국 거리는 그때와 비교도 못할만큼 다채롭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방구석에 들어앉아서 80년대 배경 드라마에 목매고 있어 ㅋ

 

80년대는 거리는 회색빛이어도 대다수 사람들 마음은 해바라기 색깔인 시절이었나보다.

그렇게들 생각하는 거겠지 다들.

 

 

 

 

♬ 불빛없는 거릴 걸으며 헤매이는 너에게 꽃한송이 주고 싶어 들녘

 

이 노래가사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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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