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기타 등등

2016. 6. 16. 00:38 from ETOCETORA

대학교 1학년 때 선배 결혼식으로 목포에 갔다가 함께 결혼식 참석하러 갔던 고교지역동문 언니랑 해남까지 걸어가는 걸 해보기로 했다. 이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그전에도 주말에 어딘가 나간다는 걸 우연히 보고는 덩달아 따라나섰다가 도봉산을 통굽신고 올라가는 짓을 하게끔 했던 사람인데, 결혼식 끝나자마자 갑자기 해남땅끝마을까지 걸어가보겠다고 하니 난 또 그게 재밌어 보여서 또 따라가게된 거였다.

 

목포 해안도로를 지나서 영산강하구둑이었나 뭐 이상한 방조제 같은 것도 지나고 그렇게 밤새, 오래 걷기위한 아무런 준비(신발,가방,물,간식...?)도 없이 오히려 결혼식이라고 세미정장 정도로 차려입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렇게 대책없이 국도를 걷다가 한참 깜깜해졌을 시간쯤에는 차타고 지나가던 지역주민 아저씨가 우리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숙박업소를 잡아줘서 거기서 좀 자다가 다시 걷고 하면서 진짜 끝까지 걸어서 가긴 했다.

 

2월에 은총이 낳고 거의 처음인것 같지만 한 3일정도 나혼자 여행갈 시간을 갖기로 해서 그래서 어디로 갈까 하다가 해남 유선관에 가보기로 했다.

대학원 다닐 때 어떤 선배가 대학 때 했던 기억나는 일 중에 하나 '전라도 음식 기행'하러 간거였다고

난 정말 그런 컨셉의 여행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러니깐 음식이 거기서 거기지 특별히 더 맛있을게 뭐 있을까 싶어서

굳이 음식을 위한 여행이란 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듣고보니 근사해서 나도 한번 해봐야지 생각은 했던 중이었다.

유선관에 가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은 벌교에 가서 꼬막을 먹고 다음날은 하동에 가서 재첩국을 먹어야지

이런 간략한 계획으로 내려갔었다.

 

 

유선관 들어가는 길은 가본사람은 알겠지만 매표소에서부터 절 입구 앞의 여관까지가 거의 걸어서 40분정도는 걸리는데

매표소라고 해도 유선관 예약된 사람은 그냥 지나갈 수 있다. 거기 담당자가 여관 예약명단을 갖고 있어서.

 

매표소 지나 산속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던 시간이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에는 이미 호랑이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호랑이라도, 아니면 멧돼지라도, 아니면 무슨 구미호이라도 튀어나올것 같은 깊은 산에 들어온 분위기라서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불안한 마음과 이왕 산에 온김에 몸도 마음도 힐링돼야 한다는 강박심리와 이 모든 걸로 분주한 내 마음 자체가 우습기도 한 그런 복잡한 심경이 수십차례 마음을 휘저어놓았다. 그래서 절에서 나오는 사람들 만나는 게 그렇게 반가울수 없기도 했고.

 

유선관은,, 다른 친구들은 여관이 그냥 여관이지 뭐 했지만

난 우리나라 여관 혹은 여인숙 문화가 어땠는지는 책이나 영화에서밖에 모르니깐

거기서 밥도 먹고 하룻밤도 자고 하면서 어떤건지 한번 겪어보고 싶어서 갔던 거였다.

저녁밥 먹고 나면 정말 할일이 없는데, 밤에 절에라도 가야지 미리 맘먹었는데 밤에는 절 출입이 안되는 듯했다.

주변에 완전 산이라서 어디 산책할데도 없고.

한옥의 허술한 문고리로 문 잠글수 있나 숟가락이라도 끼워놔야되나 걱정스러웠는데, 여닫이 문이 열려나가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문고리가 있어서 일단 문고리를 걸고 나면 방문을 심하게 흔들거나 아니면 발로 방문을 걷어차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는한 밖에서 문을 조용히 여는 건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화장실이 집밖에 따로 있어서 밤에 나가다보면 이 오래된 여관, 깊은 산속에는 정말 귀신이 살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무서운데, 그래선지 화장실에보면 가져다쓰라고 '요강'도 있었다 대박.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절 구경하고 밥 먹고 나와서 벌교에 가서 맛없는 꼬막 정식을 먹었다.

꼬막을 왜 이상한 꼬치나, 탕수육 같은 걸로 만드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꼬막을 저런 이상한 조리법으로 포장해야지만 먹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안먹는게 나을거 같다.

꼬막은 그대로 살짝 데쳐서 먹거나 무침을 하거나 하는게 가장 맛있는거 같다.

육즙이 다빠져나가는 조리법은 무슨 고무씹는 것도 아니고

누가 벌교지역꼬막중앙회에 꼬막의 정체성을 잊지말라고 투서라도 넣어줘야 될거 같다.

이건 정말 아니라고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하동 넘어가는데,

부산 살 때부터 타보고 싶던 목포행 열차, 이제는 순천까지 밖에 운행하지 않는 다는 그 열차에는

아마도 '내일로 패스'로 주말,, 부산으로 놀러 가는 걸로 추정되는 혹은 부산에서 놀러왔다가 돌아가는 걸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았다.

전라도하고 경상도가 이렇게 가까운데 왜 억양이 이렇게 다를까 싶었는데 열차타고 지나가는 중에보니 역과 역 사이의 지형이 꽤 험했다. 그리고 순천에서부터 갑자기 경상도 억양이 들리는 것도 신기하긴 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사실 잘 못느끼는데..

 

밤에 하동시내, 아니 읍내를 돌아다니다 변두리지역에서 겨우 재첩국 하는 식당 찾아서 한그릇 먹고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또 재첩국 먹으려고 터미널 주변 읍내 중심가를 돌아다녀보는데

정말,,, 재첩국 먹기가 너무 어려웠다.

특정 시간 이후에, 어느정도의 인원수를 채운채로 식당을 가야지 먹을 수 있는 듯한 식당이 많았고

주변에 어디서 먹을수 있느냐 물어봐도 시내에 파는데가 있긴하느냐고 되묻는 경우도 있고

즉, 정작 하동에서는 재첩국을 그다지 많이 먹지 않는 거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보기로, 한국에 재첩은 이미 씨가 말랐고

전부 어디 중국에서 수입해 오는 걸로 가공식품 만들어서 끓여서 파는게 아닌가..

그러니깐 하동사람들도 진작에 재첩따위 가짜라고 안 믿고 안먹어서 시내에도 가게가 없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옛날에 엄마가 하동에서 사온 재첩국 먹으며 좋아했던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동가서 재첩국 먹는 것 비추다 정말. 음식을 믿을수도 없고 음식 찾는 것도 힘들다.

 

 

목적으로 했던 음식은 유선관에서의 평이한 전라도식 밑반찬 집밥같은 식단 2회 빼고는 별로였지만

해남,벌교,하동까지 갔던 여정은 꽤 좋은 느낌이었다.

다음에는 벌교에 있던 보성여관에서도 한번 묵어봐야지.

 

 

 

 

 

원래는 이렇게만 써야지 생각하면서 돌아다녔는데

얼마전에 흑산도 학부모 윤간사건을 접하고 나니 이렇게 간략한 여행기로 접으면 안될 거 같다.

사실 내가 다닌것처럼 저러고 다니는 건 정말 위험한 거다.

 

밤에 여자애들 둘이 거기가어디라고 국도변을 따라걷는 짓을 하며

모르는 아저씨가 재워준다고 차에 타라고 타서는 아무리 숙박업소 잡아줬다해도

지역 인신매매범 중개업소라도 되면 어쩌려고 거기서 맘놓고 잠을 잤으며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절까지 40분이나 산속길을 걸어들어가면서는

호랑이나 귀신을 생각하며 무서워할 게 아니라 사람만날 걸 무서워했어야 하는 거다.

예약자 명단으로 나 혼자 여관가고 있는 걸 아는 매표소 쪽 사람 중 누군가가

자동차로 미리 와서 혼자 산길 걷고 있는 여자한테 무슨짓이라도 할 수 있는 거였고

밤에 여관에서 잘 때도 옆방에 누군가 묵고 있는 기척이 있으니 안심할게 아니라

거기 여관이나 매표소 사람들 모두 나혼자 묵고 있는거 다 알고 있는데

문고리에 숟가락 채우고 방에 요강들여놓고 미리 파출소번호 확보해두고

그러고 잤어야 하는게 맞다.

 

 

전에 2010년쯤인가 여름에 대천해수욕장 인근에 1주일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땐

그냥 일반 가정집인데 휴가기간엔 피서객들한테 별장처럼 빌려주기도 하는 집에서

혼자 숙식을 하며 낮에는 근무를 했었다.

그때 그집에 창문을 잠글 수 있게 돼 있지 않아서 첨엔 완전 식겁했는데

며칠 지내다 보니 미리 얘기들은대로 아무일도 없어서 그냥 저냥 지냈는데

 

그렇게 창문도 안 잠그고 문도 안 잠그고

누가 마을에 들면 누가 들었는지 마을 사람 전부다 알고

그런게 시골사람들 평소 생활하는 모습일수는 있지만

 

무슨 문제가 일단 터지면 항상 크게 문제가 터지니깐 조심을 하는게 맞는 거 같다.

 

 

지역에서 원래 해오던 가닥이 있고 살아오면서 생긴 헤게모니도 있고 해서, 잘못을 해도 잘못한 줄도 모르는

파렴치함이나 무분별함은

도시사람들의 익명성에서 나오는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끼..가 그런 내용이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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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