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센트, 액세서리

2014. 6. 24. 16:18 from aS 2014

 

 

지금 turn 은 검사를 위해 단기입원하는 환자들이 많은 파트로

인턴의 주우우우우웅 요 업무는 첫번째가 동의서 받기

....

정말 동의서...

미치도록 많다.

동의서 서명때문에 지난 한달간  내 이름도 거의 수천번은 적은거 같아.

 

 

환자들 입장에서는 동의서 받는다고 인턴이 병실로 찾아가면

자신에 대한 개별적인 시술 정보까지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누가 시술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시술이 진행되는지 등등을 다 물어봐서

인턴을 참 곤란하게 하는데,

이 동의서라는게 얼마나 형식적인 서류인지를 정말로 모르시는 걸까..

그럴 때 가끔은 그 분 옆 병상에 누워계신 다른 환자분이

'에이 그거, 환자 죽어도 병원 책임없다는 내용이잖아, 그냥 싸인해줘' 이렇게 말해주시는데

그럴땐 참 감사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딱 그건데

차마 그렇게 말할수는 없고 빙빙 돌려가며 어버버하고 있던 중이니깐.

 

옛날에는 이런 동의서라는걸 거의 제대로 안 받았던 거 같은데

세월이 갈수록 병원과 환자가 서로에게 날을 세울일이 많다보니

방어차원에서 시술 하나 할 때마다 동의서 받는 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듯.

조금이라도 침습적인 시술을 할 때면

출혈이든 알러지 반응이든 천공이든 감염, 염증, 심장마비, 호흡곤란..

또 뭐가 있나,, 이런것들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할 수 없으니깐

그래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시술 받는데 동의하겠습니다 라는게

동의서 서명의 요점.

 

또 이런 내용을 꼼꼼하게 들으시는 환자분들 입장에서는

아니, 그래서 내가 이런 위험에 처할수도 있는 시술을 받아야 한단 말이야? 라고 물으시면서

뭐 동의서 받아내는 거 외에 다른 할 수 있는 없는 일이 없는 인턴의 발목을 잡는다.

30분안에 스무개의 동의서를 받아야 되니깐 얼른 서명만 받고 나와야지 라고

단단히 마음먹고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는 인턴 입장에서 이거 정말 곤란하다.

어차피 시술받으려고 입원하신 거 아니냐고 빨리 서명 좀 해주시라고 말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지만

그런 매몰차고 불친절한 행동은 절대 노노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는 말들을 주절주절해서,

아 그래도 다들 잘 검사 받으신다고 안심시킨 다음에 겨우 동의서를 챙겨갖고 나올수 있는데

 

이에 대해 우리 파트 라운딩 가이딩 해야되는 교수님께서 한말씀 하셨다.

 

텍스트를 봤을 때, 거기에 어떤 뉘앙스는 없지만

그래도 그 텍스트로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뭔가 감정을 실어서 텍스트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고/

동의서 받는 과정도 마찬가지라고.

동의서에 적힌 내용자체는 물론 어떤 fact지만

그 팩트를 이용해 환자가 시술을 받게끔 혹은 받지 않게끔 하는 건

결국 설득을 하는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내가 원하는 말을 마지막에 하면 그 말이 바로 전체 전달 내용으로 기억된다고.

'이러저러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성공율이 95프로나 됩니다'

뭐 이런식..

근데 난 이렇게 서명을 받는, 설득(?)의 과정이 마치 광고처럼 굉장히 의도적이어서

그 과정에서 환자가 의료인의 말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가 없다.

게다가 그런 말장난의 결과물은 고작해야 동의서 하나로

실질적인 어떤 치료의 과정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종이 쪼가리인데

그걸 위해 환자 개인에겐 굉장히 결정적인 인생의 어떤 순간일지도 모를 시간을

(겉으론 참 건강해 보이는데, 이런저런 cancer 같은걸 이미 진단 받은 환자들을 보면 더 그러해.)

이 쓸데없는 대화로 소진시켜야 되나 싶기도 해서

기분이 좀 그렇다.

그나마도 한달이나 계속 하다보니깐 이젠 일에 불과해졌지만

 

그래도 공공연하게

'병원에서 동의서라는 거 어차피 시술받으러 입원한거 서명 해주세요 그거.. 100프로 안전하지 않은거라고 시술 안받을 것도 아니면서 동의서 따위로 트집잡지 말고 좀 더 실제로 손해를 보고 위험해질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져주시라구요.'

라고 누군가 목소리 큰사람이 여기저기 떠들어주면 좋겠다

 

 

텍스트에는 어떤 억양이나 뉘앙스가 없다는 말은 참 맞는말이라서

아니뭐.. 실제로 fact가 아닌 어떤 걸 글로 쓴다 하더라도

아무런 억양이 느껴지지 않게끔만 글을 쓰면

실은 완전 주관적인 내용조차도 객관적인 어떤 사실인거처럼 보이기도 하는거 같다.

근데 가끔 가다 보면 참 억양없이 보여야 할 어떤 곳에 난데없이 대놓고 센 억양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너무나 의도가 느껴지는 문자들이 보일 때가 있다고

 

 

 

 

ㅡ이알턴때 소아과 2년차 선생님의 뭔가 의도를 드러낸 저 이알노트를 보고 혼자 웃어댔음.

 

 

 병동콜 받고 샘플하러 갔을 때 간호사님이 샘플순서에 자기 의도를 밀어넣은 걸 보니깐 귀여웠음.

 

 

 

ㅡ굉장히 딱딱하고 재미없게 쓰여진 어떤 출판사 국시요약집에 뜬금없이 저런 말이 있어서 누군가는 책 저자를 꼭 기억해줘야 한다고 마음먹었음.

 

 

 

 

그럴때면 그런 촌스러운 대놓고 드러내기가 참 귀여워서

웃음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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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