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스

2014. 4. 9. 03:07 from aS 2014
연애시대의 은호는 가슴에 손을대고 심장이뛰는걸 확인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그랬던거같은데


사실 어릴때부터 맥박확인하는걸 무서워했다. 그게 우습게도 은호랑은 반대로 살아있는 증거같아서였던듯.. 고댓적 사람들의 여러 기록을 봐도 맥박에 정신이나 영혼같은 생명의 단서로서의 의미를 부여한걸 보면 맥박과 생명과의 연관성은 누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직관적인 사실임에는 틀림없는거같다

진맥이 어쩌구 하는 핑계로 나랑 스킨싑을 하고싶어하는 사람이 쎄고쌨는데 맥박뛰는걸 무서워해서 어쩌냐싶을수있지만 맥박을 만지다보면 피가 터져나올거 같기도하고 뭐난 그랬다. 삼부구후맥이라느니 촌관척이 어쨌느니 28 막이 어쩌구 이상한게 많지만 부침지삭만 살피면 된다고 한 동무공의 의견이 제일 합리적이지 맥에서 뭐 특별한걸 원해선 안될거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랬는데 최근 한달간만큼 맥박에 집중해본적이 없어서 세상의 맥ㅇㅣ 부침지삭으로만 요약되지도 않고 28 개로도 요약되지 않고 훨씬더 장황하고 다양해서 이졔는 어찌할바를 모를지경이다. 이렇게 다양한 감각을 고작 4개 고작28개 로 요약가능한다는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바늘을 찔러서 피를 잘 빼내려면 혈관에 진짜진짜 집중해야하니깐 이 지경에 이른거라고


보통 채혈을 할때는 베인을 이용하는데, 중환의 경우 아떼리 산소상태가 중요하다보니 기본채혈에 아떼리채혈이 껴있는경우가 많고 그래서 애초에 베인만을 찌를일은 드물었다. 그냥 아떼리 한번 잡아서 채혈 끝내는게 서로 편하니깐 아떼리를 필수적으로 찔러야 했는데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혈관을찌르는 베인샘플에 비해 박동으로 확인하고 찌르는 아떼리 샘플이 굉장히 부담스러웧다. 박동을 확인하고 가장 높은 박동을 향해 45도정도로 찌르라는데, 손가락이라는 뭉툭한 것으로 확인한 맥박을 바늘이라는 가느스름 한걸 로 찌른다는게 어딘지 어불성설이라 실제로 제대로 되지도 않는게 대다수였다. 베인이라도 몇번찔러보고 아떼리 잡으라면 좀 할거같겠구만 혈관 뚫리는 느낌도 잘 모르는 샘플초짜에게 중환들 아떼리채혈을 시키다니 정말 너무하잖아

병원가면 수액넣고 약물넣고 하려고 정맥 라인을 잡는데, 중환의경우 이외에도 아떼리라인.. 그러니깐 에이라인이란걸 잡아서 채혈이 잦은 중환들의 샘플과 아떼리 맥박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하게된다. 처음에 샘플 못할때는 이 라인 달고있는 환자가 정말 소중해서 행여나 라인 빠질까봐 혈압커프에 아무렇게 감아 가려놓은 것도 시간날때마다 챙기고 바늘 들어간 부위에 혈액 배어나올까봐 소독하는것도 더 챙기고 그랬었다. 내 밤을, 내 잠을 지켜주는 생명줄, 에이라인.

그러던게 아떼리채혈이 좀 익숙해지니깐, 슬슬 라인샘플할때의 번거로운과정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바늘로 찌르면 금방끝날샘플인데 싶기도하고 한편으론 피앗을 알게됐다고 해야하나. 그러니깐 바늘로 혈관을 찔렀을 때 바늘에 혈액이 맺힌걸 확인하는순간 뭔가모를 쾌감이 느껴졌으니 그게 슬슬 채혈이 익숙해져가는 과정의 즐거움이었을거다. 초등학교 때 교무실 앞 화단에 피어있던, 빨아먹으면 단맛이 찔끔 배어나오던 꽃을 몰래 따먹을때 같은 느낌인데 피가 맺혀서 나 여기있다고 볼록볼록 뛰는걸 보게되는게 완전 좋은거야

채혈부위도 처음엔 환자의 압박대를 풀 여유도 없어서 상완동맥 주로찌르다가 채혈 익숙해지면서 요골동맥찌르고, 요즘은 압박대 풀 필요도없이 측부순환 유지되는 족배동맥도 자신있어졌다

아떼리 채혈이 슬슬 돼가면서 에이라인 잡는것도 한두번씩 하게됐고 꽂기만하면 성공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시도해볼 자신감은 있으니 이만하면 내과인턴 고생한 보람은 있는건가


일하다 틈틈히 당직실에서 뒹굴거릴때는 아기들이 자기발만지고 손만지고 노는것처럼 내 손목 만져보고 발등 만져보고하면서 (놀고)있는데
그래 나도 요즘은 맥박이 뛰는걸 만지고있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찌르면 톡하고 터져나올거같은 이 편한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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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