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엠의 아트

2014. 6. 14. 06:41 from aS 2014

 

다들 EM 어쩌냐고, 한번은 거쳐야 하는데 힘들거 같다고 수선스럽게 말하지만

사실 EM 턴은 좋았다.

 

4년차 선생님도 힘들어하는 우리들 앞에서 '징징대지 말라'는 뜻으로 이미 

인턴으로서 이렇게 직접 환자를 보고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는 과가 EM 이 유일하다고 말했지만

잉여인력으로 의료전달과정에 발생하는 온갖 잡일을 커버한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던 EM턴

평일 낮시간대에 놀수 있는 거의 유일한 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EM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힘들었던 환자를 다시 볼 일 없다는 것.

이건 EM에서 오래 일한 간호사님이랑도 서로 맘이 통했던 점이긴 한데

 

병동에 있다보면 환자와의 관계라는 게 참 힘들다.

처음 만났을 때 샘플 실패라도 하면 그때부턴 환자도 내가 싫고 나도 환자가 싫고 서로 부담스러운데도 손 바꿔줄 사람도 없이 만남은 계속 이어지고

어떻게 운때가 맞아떨어져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좋아하는 환자나 보호자가 있어도 그 사람 나름대로 계속 뭔가 기대치를 채워야 된다는 부담감이 항상 있어서 찾아갈 때마다 마음은 버겁다. 오늘은 어떤 멘트를 날려야 할까....

가게에 몇번 다니다 보면 고객이라고 이래저래 아는 척, 친한척 하면 그 가게 다시 안간다는 둥 그런 말을 할리데이 블로그에서 본거 같은데 그렇게 꾸준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대한 부담스러움이 병동일을 힘들게 만드는 거 같다고.

 

근데 EM은 아무리 환자가 진상짓을 해도, 아무리 내가 샘플 실패한 환자라 해도, 볼때마다 괜히 화색이 돌며 날 반기는 환자가 있다 해도 하루 이틀안에는 각자 가야할 곳으로들 가 버리니깐

그게 참 좋았다고

 

물론 진통제 맞으러 하루에 네번씩이나 응급실을 찾은지 수년째 되는 특수한... 환자도 있기는 했다.

 

 

 

제일 처음 내과턴때 1,2년차가 주 타겟인 강의를 함께 듣던 중 어떤 교수님이

IM 의 아트에 대해 얘기하셨다.

서젼들이 수술이라는 어떤 특수하고 고유한 걸 가지고 있다면

그에 대비해서 내과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일까 라며

메디칼 레코드라고...

환자의 과거 병력 현재 상태 앞으로의 치료 플랜 등에 대해

모든 내용을 논리적이고 간결하게 기록해내서

한눈에 환자에 대해 파악할 수 있게끔 하는 거라고

뭐 그런 얘길 하셨는데

의무기록이 내과만의 것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아무튼 IM 에서 차팅을 좀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을 그전부터 하긴 했었다.

 

그래서 IM 의 아트가 메디칼 레코드라면 EM의 아트는 뭘까 생각했는데

EM의 아트는 신속한 환자분류.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가 가야할 곳으로 얼른 가게끔 해주는 것일거다.

응급실에 가면 있는 triage라는 분류소

분류소는 의료적 응급인지 혹은 의료적으론 비응급이지만 환자가 급한 것일 뿐인지를 결정하는 곳이지만

triage로 이미지화되는 EM 의 아트는 결국 어떤 파트로 환자로 보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일거라고.

때문에 EM 턴은

환자와의 관계유지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일기일회, 한번의 만남에 모든걸 쏟아내고 서로 아름답게 스쳐지날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환자떠넘기기가 주업무인 EM 의 아트는 당연히 다른 과랑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환자를 내보내려는 EM입장에서는 일단 어느과로 가야할지가 결정되면 얼른 보내려고 하고

환자를 받는 각과의 입장에서는 EM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해놓고 부르는게 옳지 않냐고 생각할거고

그래서 EM에서 환자를 보는 시간이 짧아지면 받는 과의 입장에서는 환자던지기가 되는 거고

EM에서 환자를 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신속한 환자분류라는 EM고유의 역할이 더뎌질수 밖에 없다.

 

입원환자를 특정과에서 다른 과로 전과시킬 때,

사실 환자의 주 상태에 맞춰서 얼른 전과 시키는게 맞겠지만

전과를 간 과 입장에서는 환자수가 늘면 전공의 업무가 결국 느는 거라서

그래서 완전 백프로 떠넘길만한 이유가 확연하지 않으면 쉽게 전과를 못시키고

자기과에서 제대로 못 보는 문제까지 계속 떠안은채 힘겹게 환자를 보는 경우가 꽤 있긴 하다.

마찬가지로 EM에서 분류된 환자가 각과로 가는 과정역시

이렇게 병동에서 환자 전과시키는 거랑 크게 다를 건 없는데

문제는 이 과정이 EM에서는 완전 일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EM과 다른 과와의 마찰이 계속 생길 수 밖에 없고

그걸 EM 전공의가 매번 다루기는 힘드니깐

그래서 그 일을 인턴들이 한다. '노티'라는 이름으로

 

병원 입사할 때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쿠션언어사용하기, 즉 빙빙 돌려말하기 에 대해서도 교육을 하던데

EM에서 인턴의 역할은 일종의 '쿠션'역할이랄까.

EM 과 다른과 사이, 환자 떠넘기기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어차피 종국에는 환자가 특정과로 가야 한다손 치더라도

받는 전공의 입장에서는 왠지 화가나고, 누구한테든 기분나쁜 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걸 받아주는 역할이 EM인턴 몫이다.

EM이 힘든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이 쿠션역할, 해당과에 환자 노티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EM턴 인계장에 보면 어떤 과에 노티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라는 내용들이 줄줄이 적혀 있고

인턴들 끼리도 A과는 노티하기 굉장히 부담스러운 과, B선생님은 노티하기 정말 까다로운 사람 등등

그런 고충이 있긴 하지만

노티전에 환자에 대해 챙기고 해결해야 할 것들을 인계장에 적힌대로만 해두면 대부분의 과의 경우 적당히 환자를 보낼수가 있다.

그에반해 대부분의 인턴들이 힘들어하는 과가 IM 인데

대략 내과적 문제가 위주인걸로 확인이 됐다고 해도

IM은 까탈스럽게 내과적 평가를 원한다고 해야 하나...

환자 파악 잘 못하고 환자 신속하게 못 보는 낮은 연차 IM 전공의들이

완전 진상을 떠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기가 해야 하는 환자 evaluation, IM의 아트를,, EM한테 EM'인턴'한테 요구한다고 할까

받은 환자를 윗연차에 보고하면서 깨져야될걸 미리 노티를 하는 인턴을 마구 때리면서 화풀이를 하는 느낌.

 

그럴때 왠만하면

"네네 당신말이 맞고 난 모르는것 투성이네요 죄송합니다, 두번이고 세번이고 환자 다시 보고 내과에서 원하는대로 옵션 채워서 다시 노티할께요"

이렇게 쿠션역할 해주면 되는데

이것도 몇번 하다보면 내가 왜 이런 쿠션역할을 해야 하며

대체 내가 왜 자꾸 미안해 해야 하며

내가 왜 내과 전공의가 해야 하는 환자 평가를 해줘야 하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쿠션이기를 거부하고  때린 내과 전공의 손이 더 아프게 아예 돌덩이처럼 버팅긴일도 자주 있었다.

 

통상적으로 전공의가 노티를 하는 EM턴을 깨는게 뭐 별일이겠냐 싶겠지만

이건 엄연히 EM이라는 과와 다른 특정과 사이의 문제인데

그걸 인턴이 'noti'했으니깐 막말하고 멋대로 깨도 되고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물론 그자리에서 EM의 아트에 대해 운운하며 IM의 아트는 IM에서 해결하는게 맞지 않냐고 해봤자

'내가 예전에 EM턴할 때 굽신거리며 맞았으니 이제 인턴을 마구 깨고 때리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타성에 젖은 전공의는 무슨말인지 못알아듣고

'말이 안통한다'라며 자기 분에 못이겨한다.

말이 안통한다...라는거

그래 내가 안통할 말을 하는게 맞긴 하다.

어쨌든 환자를 받는 과의 전공의는 어떻게든 환자를 안 받고 싶고, 어떻게든 자기일을 줄이고 싶고

어떻게든 자기 힘든데 대한 스트레스를 풀고 싶고

그게 본질인데 대체 무슨 되지도 않을 소리를 갖다붙였는지.

 

이렇게 힘든 환자 노티과정들을 반복하다보니 참 웃긴점이 뭐냐면..

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 신분일 때는

어떻게든 자기 환자수 안늘렸으면 하고, 자기에게 환자 붙여주러오는 EM턴이나 EM에 대해 욕을 하면서도

막상 전문의가 된 후에는 분명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환자를 많이 보려고 할거라는 거다.

그래서

나중에 전문의가 돼서 로컬나가면

인턴이 구구절절 환자 상태에 대해 정리안해줘도 당장 당신이 보겠다고 하지 않겠냐고

그 말을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그래도 그런말은 뭔가 요즘.. 의사의 자존심 문제인거 같아서, 대놓고 앞에서 말할순 없었어.

아무리 쿠션 노릇 안하고 돌덩이 처럼 굴어도 면전에서 지킬건 지켜줬다고.

 

 

 

 

어쨌든 EM턴은 벌써 옛날에 지나갔다.

난 조금 파이터 기질이 있는지 노티과정의 분란이 힘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정신적인 환기가 됐던 거 같다.

그에비해 지금 외과턴 내과턴을 돌면서는 그렇게 환기를 하고 자시고 할 아무런 자극도 없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

 

 

 

 

 

 

영상에 한채영 스타일을 보면 한채영의 아트는 아무리 좋게봐줄라해도 저런 '귀염 발랄'은 아닌거 같다

노래제목은 대체 왜 응급실인거야,, 재희 저대로 응급실 가는 건가

가봤자 비응급으로 분류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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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