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종

2014. 3. 8. 13:57 from aS 2014
구역질과함께 토해낸 식도정맥 혈액때문에 숨쉴때마다입에선 피비린내가 나고, 손바닥발바닥은 무좀균으로 덮힌것처럼 허옇게 떠서 갈라져있고 온갖 주사바늘 자국에 피멍투성이인 피부는 지혈하려 당겨붙이는 테이프 장력도 못이길만큼늘어져있고 부어있는 손발에서는 피부 틈틈으로 간질액이 배어나와 시트를 누렇고 축축하게 적신다
수십년전 아기였을 이 환자들을 들여다보고 밤새재우고 보살폈을 엄마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검체 채혈때문에 환자몸에 바늘을 찔러대며 피를 쥐어짜낼때마다 이런생각이든다

꼭 채혈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기 의지로 자기몸에 이뤄지는 행위를 중단시킬수없는 모든사람들때문에 하늘에서 보고있을 옛날 엄마들의 가슴은 찢어지게 아플것임에 틀림없다

사실 우리는 모두 불시에 닥치는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둘필요가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죽은거나 다름없는 상황에 이르게되는것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둬야한다 소생술을 원하는지 아닌지 연명치료를 하게될지 어떨지.. 내가 더이상 의사표현을 하기 힘들어지기 전까지 그런부분을 준비 하지 않으면 내몸은 얄팍한 인명존중의 명분아래 산채로 썩어가게될수도있다 . 중환자실에 있다보니 정말 운 좋아보이는 사람중 하나가, 비록 몸인 아프지만 '나 그냥 집에가서 죽을래요' 라고 말하고 병원밖으로 도망쳐나갈수있는 환자. 그 사람은 병원에서 콧줄로 식사하고 목에 구멍을 뚫거나 입에 관을 넣은채 호흡하고 이상한전선을 주렁주렁 달고 심장리듬 모니터 당하다가 어느순간 뭐하나라도 이상해지면 무시무시한 가슴 압박을 당한후에야 시신상태로나마 병원을 나갈수있게될 사람들과는 달리
익숙한곳 익숙한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 자연스레 곡기를 끊고 스스로의 힘으로 마지막숨을 쉰후에 죽음을 맞이할거다

잠수종과나비의 락킹신드롬 환자같은상태는 아니더라도 중환자실의 많은 환자는 중환자실의 각종 거친 시술과 혼란스런 분위기속에서 점점 의사표현ㄴ무시해도되는 물체화 돼가는데 간혹 입모양으로나마 뭔가 말하려해도 잠수종환자 처럼 참을성있게 환자의 힘겨운 의사표현을 듣고 기다려줄만한 여유가있는 인력이 없다

전에 어떤환자는 상태가 호전된게 아님에도 여기 중화자실보다 시설 등 여러면에서 부족한 지역 의료원으로 전원을 갔는데 그건 이곳에 있으면 환자상태가 악화될때마다 그것을 교정하기위한 고가의 치료가 들어가면서 결국 연명치료를 하게되니깐 결국 가족입장에서는 환자를 거의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전원을 결정한걸거다. 그래선지 지역의료원으로 가면서 환자의 부인인 할머니는 마치 남편이 이미 죽기라도 한것처럼 통곡을 하며 따라오셨다. 하지만 내생각엔 그 결정이 잔인하게만 보이진 않았는데 그건 전원간 병원에선 중환자실과 달리 좀더 환자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질거고, 노환이라는 자연스런 설명보다는 질환이라는 다소 오만한 입장에 더 가까이 서있어서 환자 상태변화에 따라 무수한 검사로 환자의 지친몸을 들볶아댈 (흡혈담당인턴포함)대학병원 의료진의 마수에서도 벗어난거니까.
그래서 훨씬더 행복한 임종을 맞으실테니깐 울지마세요 부디


다시 옛날엄마로 돌아가서
할머니는 우리아버지가 단명할 운이라는 얘길 들으시곤 그렇지 않게 하려고 아버지가 아직 어릴때 이름도 바꿔 친척집에 양자로 보내셨었다. 아버지는 결국 오십대중반에 돌아가셨는데 그게 할머니의 노력으로 명보다 오래산건지 아니면 역시 명대로 평균수명에 한참 모자란단명인지는 알수없다. 분명한건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기 훨씬훨씬 이전에 할머니는 이미 고인이되셨으니 당신아드님이 오래살기바란 당신의 바람은 당신 사후까지 이어지다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에야 모자의 인연과함께 그 오래된 바람역시 바람처럼 흩어졌을거라는거다


고통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은총이 생각을 하는데, 아기은총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우리모두가 없어지고나서 우리아기가 외로워지거나 말도안되는 고통에 갇히게되거나 그럴까봐 너무나 무섭다. 우리 아기옆에 언제나 함께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고, 건강하게살다가 편안히 숨을 거둘수있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합리적인 엄마인 나는 이큐높은 은총이, 타인을 배려하고 친화력높아서 사랑많이 받는 은총이로 키우도록 노력해야지. 그리고 죽음이나 거의죽음에 대해서도 준비시켜야지. 또 비합리적이지만 우리아기 잘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중환자실 같은데 갇히는일 결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착하게살아야지

무엇보다 우선 나부터도 무서워서 동기인턴이랑 가슴에 문신부터 얼른 새기러가자고 했다. 근데 시간이 없네 도무지 시간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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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