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조미21

2013. 12. 8. 01:08 from yS 2010▷2013

필기모의고사에서 병변을 보여주기 위해 환자 사진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 얼굴이 나올경우 거의 대부분 눈이 가려져있다.

시험자료로 사용되는 환자사진이 어떤 경로로 게재되는지, 환자본인에게 허락은 받는지

그런 윤리적인 면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뭐, 눈만 가리면 그래도 크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근데 가끔 눈이 안 가려져 있는 환자 사진이 나올 때가 있다.

예를들어 염색체이상의 경우 얼굴을 봤을 때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야 하니깐.

 

시험증례가 아니라 교과서에서도 이미 눈 안가린 환자가 나오긴 했는데

교과서의 사진은 인권이고 뭐고 별 개의치 않고 질병치료와 의학연구라는

'대의'가 우선시 되던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을 것이므로

혹시나 당시에 당사자에게 허락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은 아마도 오래전에 이미 세상을 달리했을 것이므로 뭐 괜찮겠지, 막연히 안심하고 있다.

 

그에 비해 시험 증례에 나오는 환자사진은 정말,,

대체 어디서 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시대의 인물들임에 틀림없어보이는데

 

 

이번 모의고사 때는 아나필락시스 맥관부종으로 눈을 안가려도 누군지 결코 알아볼 수 없는 분이 나왔고

저번 모의고사 때는 트리조미 21 신생아가 나왔다.

 

맥관부종이야 그렇다치더라도 트리조미 21문항이 이뤄지려면 특징적인 외모가 중요하긴 한데

그 사진 속 아기가 워낙 신생아라서 그런지

내가 보기엔 당시 우리집에서 울고 있던 6주된 우리 아기랑도 언뜻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그냥 보통신생아 얼굴로 밖에 안 보인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던거다.

사실 신생아들 얼굴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래서 그 문항으로 시험을 본 학생들은

그 아기얼굴에서 의사의 소양으로 직관적으로 찾아내야 할 트리조미21외모의 특징을 봤다기보다는

'아, 아기얼굴을 보여준걸 보니 외모에 뭔가 이상이 있긴 있다는 의미네'라는 사실만 인식했을거다.

그리고 고작 그런인식을 주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기는 시험을 본 학생들 모두에게 

흠(欠)으로서의 자기얼굴을 팔린거다.

 

 

 

 

TS실습때 증례로 받은 환자가

(당시엔 아직 염색체검사결과는 나오지 않긴했지만)

병력기록상

임신 중에 초음파로 확인된 심장질환이 트리조미21을 의심할만한 드문질환이며

출생시 외모도 트리조미21로 의심된다고

돼 있는 생후 4주된 아기였다.

 

심장수술을 해도 괜찮을 시기를 기다리면서 중환자실에서 care중이었는데

그나마도 수술할 무렵에는 이미 생후4주나 된 'old baby' 였기 때문에

(분만실로부터 이송돼 온 후 내내 치료받으며 지냈을) 신생아중환자실에는 더이상 있을수 없었고

일반 중환자실, 성인들이 쓰는 그 큰 침대 위에 혼자 덩그라니 누워서

이것저것 온갖 line을 달고 있는 상태였다. 

 

 

난 잘 모르겠다.

심장기형때문에 출산하자마자 이렇게 중환자실이란 공간으로 멀어져 간 아기에 대해

엄마는 대체 얼마나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

더구나 수술이 무사히 끝난다 해도 유전적인 문제가 이미 결정돼 있는 아기인 것이다.

 

나로말할것같으면

아침에 출산한 직후 아기를 안아보고 점심 때 수유실에 내려가서 다시 아기를 안았는데

안고 있으면서도 내가 과연 이 아기를 낳은건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으며

그렇게 2주간 조리를 하고나서 집으로 돌아간 후

직접 아기를 돌보며 고생하고서야 아기에 대한 실질적인 애착이 조금씩 생겨났다.

 

이 아기의 엄마는

하루에 두번쯤 있을 중환자실 보호자 면회시간에 맞춰서 30분 정도 아기를 보고 나가는게 고작일텐데

아기에 대한 애착이 과연 얼마정도가 될 수 있을지 난 정말로 모르겠다.

어쩌면 아기를 직접 키울지 어떨지에 대한 결정도 아직 안내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면회시간에도 아예 보러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비난할 수도 없는게,,

출산후 한달이나 되는 시간동안 아기와 떨어져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가고 있을것인가..

 

 

 

 

어떤 임산부가 임신중의 기형아 스크리닝 검사 후 블로그에 올린글에

아기가 만약 다운이라면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것 같다고

그런 아기를 키울 자신이 없다고 써 놓은걸 임신 중일 때 봤었는데

그건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철도 없고 인간미없게 보일거 같아 대놓고 말을 할 수가 없었을 뿐이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날 좋아한다는 이유로 날 미워했던) 나보다 여섯살 어린 여자로부터

나이들어서 애 낳으면 다운 ... 이런 얘기까지 들었던 상태에서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증명하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노산으로 인한 출산문제에 대한 걱정은

딱히 저렇게 악랄한 혀를 가진 사람의 입을 통하지 않더라도

당장 성별싸움난 인터넷게시판만 들어가봐도 되새기고 의지를 다지게 되는 일 아닌가.

아무리 다른 외국에서는 트리조미21로 인한 장애를 극복하고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다해도

2013년 대한민국의 인식은 아직 요정도다.

 

 

그래서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면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우라나라에서 트리조미21은 합법적인 낙태사유는 아니지만

고위험군에 대한 양수검사라든가 융모막 검사를 하고 문제가 있다면 결국 어떻게든 낙태를 하겠지.

이때문에 대부분이 임신 기간 내내 정기적으로 산전검사를 받는 요즘은

예전과달리 고위험군 보다는 오히려 고위험군이 아니어서 스크리닝 검사만 받은 임산부들이

트리조미 21인 아기를 실제 출산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증례환자아기의 엄마도 나이가 많은 산모가 아니었고 아기의 이상도 임신 3분기에 와서나 확인됐을테니깐.

그리고 이때부터 준비되지 못한 엄마, 부모의 갈등이 시작되는 걸거다.

물론 모든걸 극복하고 잘 키워내는 부모도 있지만

이상이 있는 아기는 어쨌든, 유기비율도 높고, 학대비율도 높다.

 

 

 

 

내가 낳은 아기를 통해 나를 증명,, 운운이나 하는 수준의 나는

'증례문제에 출처불명의 신생아 얼굴을 그대로 내는게 껄끄럽습니다'

'부모에게 허락은 받고 사진 찍은 건가요'

'아무리 허락했다 해도 이렇다할 의미도 없이 아기를 이렇게 대하는거 괜찮은건가요'

이런 정도의 말밖에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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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