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나

2013. 10. 14. 10:40 from yS 2010▷2013

 

볼품없이 마른채 태지로 덮혀 있던 팔다리, 몸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가장 작은 사이즈 양말은 벌써 작아졌고 그 다음 사이즈 양말도 곧 못신을 거 같다

고사리처럼 오그라든 채 꼭 쥐고 있던 손은 이제 통통한 불가사리처럼 펴져 있다.

바야흐로 신생아에서 아기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육아라는 과정이 너무나 낯설고 힘들었다.

밤에 배고파 깨서 울어대는 애가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졌다.

낮에 몸을 비틀어대면서 칭얼대며 어떻게든 어른 하나를 자기 옆에 보초 세워두는 아기가

마치 예전에 인턴할 때 들고 있던 호출기처럼 무서웠다

그당시와 마찬가지로, 쉴틈이 생겨도 마음으론 쉬어지지가 않았다.

얘가 언제 또 울까.. 이게 언제 또 울릴까 하는 긴장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아기보는 게 전혀 수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득 정신차려보면 애가 조금씩 달라져 있고 커 있는게 신기하다.

그리고 애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그전의 모습이 사라져 가는것, 그걸 내가 대충 흘려보내는게

아쉽다

육체적으론 힘들지라도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혼자 여유부릴만한 짬이 생기면 그 시간에는 공부를 해야 하니깐

몸도 조급하고 마음도 조급하고

그래서 우리 아기의 많은 순간을 놓치게 되는게 슬프다.

 

아기 낳기전까지는

내년에 바로 수련을 받게 되면 아기를 떼 놓고 나오는 문제만 마음 아플 줄 알았는데

근데 그렇게 아기를 떼 놓고 나오는 것 뿐 아니라

아기를 직접 키우는 동안에도 그 많은 순간을 열심히 함께 해줄수 없어서 맘아파질 줄은 몰랐다.

아기들이 그렇게 많은 변화의 순간을 지나가면서 커갈줄을 몰랐던 거다.

난 아기들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깐

 

 

우리아기를 보면서 세상의 다른 아기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다 대개 슬픈쪽으로.

아기들이 울 때는 배가고픈지, 기저귀가 괜찮은지, 덥지는 않은지 를 살피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기저귀의 경우..

생후 한달이 지날 무렵부터, 준비해둔 천기저귀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천기저귀가 아직 덜 부드러워져서 그런지 소변 흡수가 썩 잘되지 않았던 거다.

아기가 오줌을 누면 이게 바로 흡수가 되지 않고 엉덩이 쪽으로 흘러가서 흡수되는 바람에

바로 누워서 소변을 본 후에는 엉덩이와 허리쪽으로 소변이 자꾸 닿게 되고

그래서 그 더운 여름날에 아기는 소변을 볼 때마다 엉덩이와 허리가 쓰라렸을 건데

둔한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바로 눕히기만 하면 등센서가 작동하는 건지 칭얼대네'라고 짜증을 내다가

며칠이나 지난 다음에야 소변이 닿는게 쓰라려서 그랬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손도 못 뻗고 몸도 못 트는데 엉덩이와 허리가 얼마나 쓰라렸을까..그래서 그렇게 울고 보챘던 건데

이사실을 발견못했으면 '애가 예민'해서 라든가 '엄마 괴롭히려고' 라는 등 말도안되는 소리를 해댔겠지.

아무튼 이렇게 아기가 우는 이유를 알아냈으면 '알아서 다행이다'라고 안심하면 그걸로 충분한데,

'오줌 흡수가 잘 안돼서 쓰라려서 우는 거라는 걸 엄마가 알아채지 못해 우는 다른 아기들이 또 있을텐데'

이런 아무 쓸모없고 오지랖 넘치는 소모적인 걱정을 하면서

우리 아기가 우는 이유를 알아낸 다행감을 왠일인지 항상 슬픈 감정으로 마무리 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나처럼 둔한 엄마들보다 세심한 엄마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아기들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별로없다.

이제 아기들을 키우는데 생기는 어려움에 대해 검색하다 보면

끝없이 우는 아기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부모가 아기를 (무려)집어던졌다는 등의 글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렇게 아기를 던지는 건 '학대' 수준이 아니라 '살인미수'다.

학대는,아기들이 불편한 걸 눈치채지 못하고 눈치채는 노력을 안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학대라고 해야 한다.

배가고프거나, 기저귀가 눅눅하거나, 얼굴이 가렵거나 덥거나 등등..

아기들한테는 바로 그 불편함이 자기의 모든 감각이며 모든 세상이 될테니깐.

아기를 돌본다는 건 아기들이 뭐가 불편한지 계속 지켜봐주고 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일 텐데

대부분 '애가 보챈다'라든가 '손을 탔다'라든가 '계속 운다'라든가 등의

'예민한 아기' 탓에 양육자 역시 예민해졌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건 미숙한 양육자인 나같은 사람, 나같은 엄마들 편들어주는 위로에 지나지 않고

실상 아무 해결도 못해주는 쓸모없는 말이다.

누구 말마따나 '엄마하나 믿고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잘못할게 뭐가 있겠으며 예민할게 뭐가 있을까

그냥 그런게 아기인거고 그런 아기를 보살피는게 육아인거지

 

현재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도 같지만

이 고생도 어느정도 균형을 이룬거 같고

지금으로선 좀더 우리아기를 사랑해주고 싶다. 사랑한다는 티를 많이 내고 싶다.

육아를 고생이라고만 여긴 나머지

해줘야 하는 최소의 것만 하고 어떻게든 아기 피해서 쉴 생각만 하고 그렇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참 이상한 건

아기 보는게 힘들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러니깐 보채는 아기와의 전투(?) 때마다 아기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

귀여운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을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시험보러 갔을 때라든가, 요즘 낮에 공부하러 밖에 나가있는 동안 이라든가

그럴 때는 시시때때로 아기모습이 아른 거린다는 거다.

아기가 엄청 집중을 하며 고작 젖을 빠는 그 표정이라든가

요즘 한창 웃으면서 옹알이 하는 모습이라든가 그 목소리라든가

그게 생각이 나서 얼른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어지곤 하는 걸 보면

 

아기가 요물은 요물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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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