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2013. 9. 18. 14:08 from yS 2010▷2013

 

대학원 합격하고 일 그만 둘 준비를 하면서

직장에서 주는 복지포인트로 자전거를 한대 구입했었다.

시내가 거의 평지로 돼 있어서 자전거를 타기 좋은 환경이라 그런지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산 이 자전거를 근 3년 참 유용하게 타고 다녔다.

등하교 길에 병원쪽으로 다니기도 했지만

봄 가을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는 택지쪽으로 풀을 밟고 다니기도 했고

하천 옆으로 나있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자전거산책을 하기도 했었다.

주말이나 강습이 있을 때 테니스를 치러 갈 때도 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사실 부산까지 자전거로 한번 가봐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건 결국 해보지 못하게 됐다.

 

 

작년 10월

평소 잘 안다니는 길 쪽의 병원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실습을 하다가

우연히 한번 자전거를 안 챙기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그 후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임신도 하고 해서 자전거를 가져올 수가 없었고

4학년 개강을 하고 부터는

자전거를 잠궈둔 열쇠만 버리지도 치우지도 않고 계속 책상위에 둔채로 다니면서

'자전거 주차 관리하는 분이 알아서 자전거 치웠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에서 굴러다니던 열쇠는 아기낳고 저번달에 방정리를 하면서 그제서야 버린거 같다.

 

어제 우연히 그 잘 다니지 않는 길 쪽으로 지나게 됐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내가 자전거를 두고간지가 얼마나 됐나 헤아려 보니

무려 10개월이 넘었다.

그리고 내눈앞에 10개월간 길바닥에 낡은 티가 역력한 그 자전거가 딱 나타났다.

그렇게 오랜기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자전거가 방치돼 있는데

어떻게 아무도 치우지도 않고 내버려져 있을 수가 있는 걸까

그것도 여러사람들이 자기가 맡은부분의 일을 해나가고 있어서 병원 곳곳 관리가 잘돼고 있을텐데..

싶었지만

행여 그 자전거를 탐낸 사람이 있었다해도 거치대에 묶여 있어서 가져가지 못했을 것이고

그나마도 자전거의 처음과 자전거와의 함께를 머리에 담고 있는 나한테나 한때 소중한 자전거였지

이런 싸구려 자전거가 열쇠없이 버려져 있었다 한들 대체 누가 가져가겠는가

 

10개월간 자전거 거치대에 묶인채로 비바람에 시달려서인지

금속부분은 거의 녹으로 덮혀 있었고, 천으로 덮힌 부분의 색은 바래 있었다.

가방을 넣어다니던 바구니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버린 쓰레기가 가득 들어 있었고

그래서 원래 자전거 주인이 아닌 사람 눈에는 

그냥 낡고 녹슬어서 내다버린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자전거.

 

당장 거치대에서부터라도 일단 떼어내고 싶었지만

어떻게 일이 안되는대로 맞아떨어졌는지 지난 9개월간 매일 눈도장 찍던 자전거 열쇠를

최근 얼마전에야 버린건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자전거가 팽개쳐져 있는 걸 보니 좀 속상하긴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작년 10월에 내가 자전거를 두고 집에 갈 때부터

자전거는 버려진 거였다.

아무리 이것저것 고치고 챙겨가며 탔다고는해도

타고다닌지 3년 다돼 가서 색도 점점 바래가고 있었고, 녹도 조금 슬기 시작했던 것도 같다.

본전 생각나서 오래 타야 할만큼 비싸게 산 것도 아니고

어차피 없어질 포인트로 싸게 산 자전거

이제 버려도 될 법하니깐, 슬슬 마음이 떠나가니깐

그날 병원에 내버려두고 집에 갔고 다음날 서둘러 챙기지 않았던 거겠지.

그래서 결국 그렇게 버려진 자전거라면 그냥 그 자리에서 삭아 없어져버리든가 할 것이지

대체 왜 버릴 때보다 더 낡은 모습으로까지 남아서 여전히 그자리에 묶여 있는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감정생활에서도 서로 버리고 버려지고 하는 와중에

여전히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감정은 자기가 알아서 추스려야지

상대방들은 어차피 대개 남의 감정 살펴주지않을 뿐더러

게다가 그런건 이미 마음이 떠난 상대방들이 어찌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니

치정어린 마음에 뉴스에 나올만한 짓을 하는 어리석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가면 버린것도 버려진것도 알아서 잊고 털고 회복하는게 사람들인데

이 자전거는 그냥 하염없이 낡아만 가고 있으니

그냥 그게 속상했다.

 

가까이 가서 자전거 핸들을 잡아봤지만

서정주의 신부에서처럼 그제서야 폭삭 재로 주저앉아버리는 그런 독하고 매운느낌도 없으니

자전거가 날 기다리며 원망하고 있었을거라는 그런 애니미즘스런 걱정은 하지말자.

애도 아니고 '버려진 자전거의 저주' 같은 거 신경쓰지 말자고 ㅋ

 

 

 

어제 자전거 보고 기분이 안 좋아져서 구구절절 뭔가 많이 써놓긴 했지만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면

자전거를 공공장소에 버려두면 남들이 알아서 치워줄 줄 알았는데 

실수로 열쇠를 묶어둔 바람에 불법투기에 실패하고

10개월이나 지나서야 회복된 시민의식으로 대형쓰레기 제대로 버릴 방도를 궁리하게 됐다는 거.

 

 

예전에 어떤 아저씨가 10년넘게 타고다니며 가족들의 추억이 서린 자동차를 결국 폐차시키게 됐을때

폐차전날 자동차 안에서 오래 앉아 있기도 하고

(그러면서 남들에겐 차마 창피해서 그랬다고 못할 '대화'라는 것도 했겠지. 범블비도 아닌 고물자동차한테)

폐차당일에는 가족들까지 폐차될 차에 태우고 가서는 폐차장까지 자동차를 마중했다는 둥

그런 궁상스런 짓을 했다는 기록을 어떤 인터넷 기사를 통해 남겼던데

 

난 그런 주책맞은 사람은 아니니깐

일단 이렇게 낡아빠지고 녹슨 자전거가 잔뜩 쌓여있던 동네 자전거 가게에 가서

이 자전거를 어떻게 처리해야되는지, 잠긴 자전거 열쇠를 어떻게 뜯어 가져올지 등을 물어보고

그리고 이 낡은 자전거가 폐기돼야 하는대로 잘 폐기되게끔 그렇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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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