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breech

2013. 7. 8. 00:22 from ETOCETORA

 

출산의 공포를 극복한 건 27살 때였다.

예과 2학년 발생학 시간에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알게된 출산의 과정은

생살이 뜯겨나간다는 그런 肉화된 공포라서

대다수 사람들이 쇠를 긁는 소리를 못 견뎌하는 것처럼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서

도저히 내가 겪어낼 자신이 없는 혐오스러운 공포였다.

 

그러다가 27살 때 이것저것 몸쓰는 걸 배우면서 사람몸에 대해 신뢰를 하게 되었고

그리고 출산을 '하고싶다'라고까지 생각하게 된거였다.

제왕절개수술이 보편적인 어떤 수술이 된 게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통증을 제어하기 위해 마취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빅토리아 여왕의 분만을 돕기위해서였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통증이란 것도 신이 내린, 인간이 겪고 극복해야 할 어떤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단지 '통증'을 잊기 위해 마취제를 쓴다는 건 종교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었을 거다.

아무튼 빅토리아 여왕이후로 이렇게 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통증을 컨트롤하는 것이

별개로 이뤄지면서

통증이란 건, 굳이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안 겪어서 좋은 것이 돼 갔을 거다.

그리고 그렇게 마취된 상태에서 사람의 몸은 잠시 인간의 정신적, 영적 지배를 벗어난 肉체로서 

떠 있게 되는 거지.

내가 출산과정을 육화된 공포로만 느낀 건,

그 과정에 임부가 여전히 호흡하며 몸을 이완하고 모체와 태아가 힘겨루기를 하고 또 그 과정에 조화를 이뤄내서 분만이 이뤄지고 통증 끝에 통증을 잊게 하는 물질 역시 분비되는 등등의 과정이 이뤄진다는 걸

거의 인지 못해서였던 거였다.   

 

 

실습중에 자연분만을 참관한 적은 없는데

그건 OG전공의 수가 너무 적어서 환자의 동의를 구하는 등의 조율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만은, 제왕절개같은 '수술'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이걸 출산과정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런 수술이 만약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임부들이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까 생각한다면

딱히 수술을 통해 분만하는 걸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난 그냥...

수술을 통해 분만하는 걸 보면서도 매번 감동을 했고 그럼에도 난 꼭 자연분만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른 동기들은, 여자동기들은...

수술을 통해 분만이 수월하게 이뤄지는 걸 직접 보고 나니깐

'난 수술로 애 낳을거야'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분만 진통을 겪는게 무서워서일까

내가 27살 이전까지 느꼈던 출산에 대한 육화된 공포와 비슷한 공포를 갖고 있어서일까..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수술로 분만해야 할 의학적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굳이 수술로 분만하는 걸 선택하는 건

출산을 굉장히 기계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서가 아닐까 싶었고

그런 생각은 내가 27살 때 느꼈던 사람 몸에 대한 신뢰와 굉장히 배치되는 것 같아서

좀 씁쓸하기도 했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에일리언시리즈의 시초를 낳게 되는 여자가 

수술기계를 통해 제왕절개수술로 후딱 분만을 해치워버리는 장면처럼

출산을 그렇게 이해하는 게 그냥... 그냥 싫었다.

 

 

애가 거꾸로 있다는 걸 알게된 건 30주 때 쯤이었는데

난 설마 그래도 얘가 끝까지 거꾸로 있을줄은 몰랐다.

때가 되면 돌아서 정상위로 변할 줄 알았는데

매일매일 심하부를 만져보면 머리가 너무나 완고하게 그자리에 버티고 있어서

그래서 어떻게든 돌려보려고

뭐 알려진 이상한 운동을 하는대신, 하루에 두번씩 방을 열심히 닦았다 ㅡㅡ

내가 공부한다고 너무 앉아있거나 해서 얘가 이렇게 자세를 잡았나보다 싶어서

그래서 방도 닦고 몸도 많이 움직이고 이것저것 노력을 했는데

34주째에도 안돌아왔고

담당 선생님으로 부터 결국 수술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집으로 오는길에 어찌나 서럽던지

그냥 뭐,, 27살 때 출산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게 나한텐 아무소용이 없는 거구나 싶었고

그동안 당연히 자연분만 할 줄알고 일주에 한번씩 가서 듣던 출산 교육같은 거

다 필요없는 거였는데 대체 왜 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괜히 울적해지고 한편으론 완고하게 버티고 앉은 애가 밉기조차 했는데

근데 생각해 보니 수술을 피하고 싶은 이유의 거의 대부분이 나자신을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그제서야 마음을 비우고 그냥 수술 해야되면 하지뭐.. 라고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가 한국에선 거의 하지 않는 외회전술에 대해서 알게 됐다.

 

36주에도 여전히 거꾸로 있어서 

38주쯤에 수술 해야 하니 그무렵으로 해서 원하는 수술 날짜를 정해오라고 담당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래 뭐,,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시술이라면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해서

어제 서울에 가서

 

돌리고 왔다

 

 

frank breech상태라서,

그냥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기에는, 그런자세에선 도무지 돌아갈 방향이나 틈이 없어보였는데

실제로 애를 돌리는 시술을 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자세 자체가 큰 문제는 안되는 거였나보다.

 

지금도 애가 다시 돌아가면 어떡하나 이미 다시 돌아가버렸으면 어떡하나 조금 불안하긴 한데

괜히 이런걸로 불안해하진 말자

거꾸로 있는게 크게 아기 안전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거꾸로 있는 아이를 출산하는데 있어서 발생할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수술.. 이란 옵션도 있는데

대체 왜 이런걸로 끙끙앓고 고민한 건지

그리고 애가 거꾸로 있는게 큰 문제가 아닌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정상위로 돌릴 수 있는 시술을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아기가 착하게도 쉽게 돌아와줬다는 점

그걸로 감사한다.

 

한달 넘게 지속된 맘고생 몸고생 끝에 겨우 정상위로 자리잡은 녀석...

이제부터는 열심히 걷고 운동도 해서 자연분만 성공하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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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