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링그월

2015. 1. 26. 02:22 from ETOCETORA

은총이의 발달은 현재 말하기에  한창 집중 돼 있다.

얼마전에 아모,드.. 아몬드 같은 세음절 단어를 말하니깐 어른들이 다 흥분해 가지고

신이나서 다시 한번만 해보라고 자꾸 시키고

뭐 그렇다.

 

 

12개월 무렵 수박에 맛을 들여서 슈바 슈바 수박을 찾길래

말이 좀 빠르려나 생각했는데

막상 1살 반이 된 지금 딱히 말하는 단어수가 엄청 늘거나 하진 않았고

슈바슈바를 빨리 말하게 된 것만 봐도 알수있듯이 그저 서바이벌 회화 느낌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필요한 것 위주로 해서 단어를 구성해 나가고 있고

그나마도 그 단어들을 경제적으로 활용, 최소한의 발음만 하고 있다.

 

이럴테면 토끼는 로 퉁치고, 애플 사과는 라고 하면 알아들어줘야하고, 뽀로로는 로 끝이다. 

양은 영어동요에서 바바라고 울었으니깐 곧죽어도 바바고

고양이는 야옹하고 우니까 .. 가 고양이다.

곰돌이가 까꿍,, 부~ 하고 튀어나오는 영상을 자주 보더니 곰돌이는 항상 ~다.

그나마 가장 좋아하는 멍멍이는 감사하게도 멍멍이라고 제대로 불러주고 있다.

우유는 어찌된게 ..이라고 하면 우유로 알아먹어야되고

물은 빨대로 후후 마시니깐 후후 하면 물갖다줘야된다.

..는 치즈일수도 있고 같이,가치,, 뭔가를 하자는 뜻일수도 있다.

옷이나 안전벨트 등을 푸는 건 푸.. 풀..이라고 하고,

.. 라고 하면 비타민일 수도 있고 비키라..는 동사일 수도 있는데

동사로 쓰일때는 상황에 따라 나가라, 일어서라 등등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으므로

활용도는 정말 높다.

 

까까, 과자도 굉장히 빨리 말한 단어중에 하난데

이 단어가 어쩌다보니 때떄로 변한걸 보니 

혀짧은 아기발음으로 하는 우스개소리들이 구체적으로 이해가 된다.

말하자면 ㄱ발음이 아기에겐 좀 어려운 발음인 셈이다.

까까라는 발음을 듣고 자기딴에는 비슷하게  발음을 해냈는데 최선이 때떄인거다.

하지만 정확히 한국어의 쌍디귿은 아니었고,

ㄱ이 발음되는 목구멍과 좀더 가까운 위치에서 쌍디귿 발음이 났으니,

그나마 시계 똑딱똑딱거리는 소리낼때의 혀위치에 혀를 두고 때라는 발음을 하면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다.

혹은 중국어 권설음 발음을 낼때의 위치에 혀를 두고 때라는 발음을 해도 비슷하다.

어쨌든 한국어에는 없는 음소로 굉장히 사랑스러운 소리가 난다.

그 위치가 ㄱ발음의 혀위치보다는 앞쪽이고 쌍디귿 발음의 혀 위치보다는 뒤쪽이니

잘하면 ㄱ으로 갈수도 있는 거였는데,

주위 어른들이 전부 은총이 장단에 맞춰 '때때줄까? 때때먹어'이러고 있으니

요즘은 그냥 평범한 쌍디귿에 가까운 경박한 때떄로 발음이 거의 변해버렸다.

 

아기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발음이 시옷계통 발음이라는 얘기는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시옷발음일 때는 비슷한 위치에 혀과 놓이게 되는 디귿발음으로 대치된다고.

근데 막상 아기를 키워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기역발음도 꽤 어려운 발음이었던 거다.

입술 가까이에서 나는 발음일수록 쉽고 목구멍쪽으로 들어가는 발음일수록 어려운 발음인건

어찌보면 당연한 거긴 하다.

 

이런 사실들을 놓고 보면 과일 '사과'발음은 굉장히 어려운 거라서

은총이가 사과를 택도없이 '화'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이런 이상한 단어사용이 설마 이렇게 고착돼버리는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사실 쪼금은 든다.

(네이버에 몇개월 아기라고 검색할 때 아기 발달이 자동검색어로 뜨는걸 보면 알수 있듯이 첫아기를 보는 대부분 엄마들은 아기의 발달이 제대로되고 있는지 다들 걱정을 많이 한다. 내가 유난스러운 건 결코 아닐것이다. )

 

뱉어내는 단어는 이렇게 이상하고, 또 굉장히 한정돼 있음에도

어른들의 대화나 자기에게 하는 말은 참 잘 알아듣는데,

그건 아기들의 뇌에서 듣고 이해하는 언어영역이 더 일찍 발달하기 때문일것이다.

어떤 경우냐면, 은총이는 새를 짹짹이,,,째채라고 부르는데

노래듣다가  ♬새들이 훨훨 나는 산꼭대기 올라요 ♬ 라는 부분이 나오면 꼭 '째채..'라고 되뇌이며

자기가 지금 짹짹이 얘기 하는 걸 알고 있다고 티를 내는 거다.

이렇게 듣고 이해는 하는데, 말로 표현하는 회로는 제대로 발달돼 있지 않은 아기의 상태는

표현언어실어증 상태인 사람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같다.

근데 막상 아기는 이런 어중간한 상태에서도 참 잘 생활해가고 있으니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가소성이라는 건 대체 얼마만큼이나 대단한 것일까.

우리가 질병이나 사고로 잃게되는 능력은 어느만큼이나 다른걸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일까.

 

 

은총이가 언어발달을 이뤄가고 있는 시점에서 또 신경쓰이는 점은 바로 억양이다.

가족들이 전부 경상도 말을 쓰고 있는데, 사회환경은 서울말을 쓰는 지역이니

말하자면 두개억양을 계속 듣고 지내는 셈인데

이런 경우 은총이가 결국 나와 다른 억양을 가진 사람이 돼버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것이다.

 

올해 두달간 같이 방을 쓴 룸메이트인턴이 우연찮게 이런경우였다.

분명 서울말을 쓰는 친구였는데, 부모님과 통화하는걸 보자니 또 너무나 경상도 말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이에대해 그 친구에게 두 억양에 어떤 차이가 느껴지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그냥 그 두 말이 다른 걸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렇게나 확연히 다른데 어떻게 모른다는 택도 없는 소릴하는거지? 싶었지만

이게 같은 언어의 지역억양차이가 아니라 

애초에 다른 언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또 그리 황당할 건 아닐수도 있다.

어떤 영화에선가..

이쿠츠? 라고 일본어로 나이를 묻는 어른에게 중국어로 치쑤에이.. 라고 대답하는 아기처럼..

어릴 때는 모국어로 다 받아들인 두언어를

나이가 좀 더 들어가면서 의식적으로 다른 것으로 구분해 나가게 되듯이

그 친구가 말하는 억양차이가 없게 느껴진다는 것도

애초에 구조상 큰 차이가 없으니

딱히 의식적으로 구분해보지 않는 이상은 그냥 별 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은총이는 결국 이 친구처럼 바이링그월이 될것이다.

 

 

그놈목소리에서 강동원 목소리에 대해 프로파일러가 서울말을 익힌 경상도 억양이라고 분석하는데

물론 참치군은 실제로 경상도 남잔데(베프가 중학교 동창이라고 떠벌떠벌 하면서 '그렇게 생겨서 태어나준것만도 감사'하다고 찬양하는 우리들 앞에서 '참치군 촌스럽게 생겼다고 생각한다'는 둥 망언을 하며 참치군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척 허세부리던게 항상 기억이 난다)

그게 원래 그정도까지 분석이 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석이 가능하다면

내 룸메이트의 억양은 그래도 아마 서울말과 경상도 말의 중간을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새들 끼리도 지역마다 방언이 있다고 하는데

중간쯤에 산 애들은 정말 중간정도의 방언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말로 들어서는 그다지 민감하게 눈치챌 수 없지만

음성 프로파일러들이 전문적으로 접근하면

짹짹이들의 방언처럼, 중간에서 저울을 타고 있는 정도 수준으로 티가 나지 않을까.. 이런거지. 

 

 

 

 

경상도 말을 쓰든 서울말을 쓰든 말만 잘하면되지

이런게 뭐가 중요할까 싶겠지만

엄마는 아기의 작은 몸짓 언어에서도 앞으로 어찌될지 여러가지를 상상하게 된다고.

이런게 부모마음 아닌가 ㅎㅎ

 

 

 

 

 

 

 

'ETOCETOR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돌투척사건에 대해  (0) 2015.10.19
English  (0) 2015.05.09
없는게 메리트  (0) 2014.10.05
노가리II  (0) 2014.10.05
케미돋네  (0) 2014.03.09
Posted by Navi. :